따뜻한 세상으로 이끄는 견인차, 사랑
웃음으로 풀어낸 무거운 주제 질 높여

▲ 연극 사랑하고있나요_극단청춘 제공
 9월26일부터 28일까지 예술극장 ‘통’에서는 ‘사랑하고 있나요?’라는 연극이 올라갔다.

 이 연극은 광주 극단 ‘청춘’과 대구 극단 ‘고도’가 합작으로 만든 무대였다. 극단 ‘청춘’과 ‘고도’는 2015년부터 광주와 대구의 지역교류의 일환으로 교류를 시작하여, 연극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양쪽 극단의 작가와 배우, 연출가가 합심하여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는 식이다.

 지난해에는 광주를 중심으로 공연했지만 올해에는 대구에서도 같은 형식으로 공연을 올린다고 한다.

 ‘사랑하고 있나요?’에 출연한 배우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러 가던 길에 교통사고가 난 여자 역에 김은미(윤서 역), 새신랑이 될 뻔한 남자 역에 김민성(도진 역), 암과 치매에 걸려 고통 받는 환자 역에 강현구(환자 역), 병원 청소부 역에 차진이(청소부 역), 그리고 간호사와 의사 역에 임현지였다.

 광주·전남 지역 사람들에게는 낯선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쓰는 배우들 덕에 배우 중 몇 명이 극단 ‘고도’ 출신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연출은 광주 극단 ‘청춘’의 오설균 대표가 맡았다.

 
▲광주극단 청춘·대구극단 고도 합작
 
 연극은 윤서와 도진이 만나고 사랑을 느끼는 짧은 장면들로 시작한다. 이 짧은 장면들 사이에 암전이 너무나 빈번해서 어쩔 수 없는 암전인지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을 결정하고 식을 올리러 가는 순간에 교통사고가 난다. 조명이 들어오자 새 신랑 도진이 머리를 다쳤는지 말을 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환자가 되어 있었다. 손가락이 심하게 구부러져서 컵을 쥐는 것 같은 일상생활도 힘들어진 환자다.

 연극 제목에 사랑이 들어가고 젊은 남녀가 나오니, 이성간의 사랑이라고만 추측했는데 불구가 된 연인(남편이라고 해야 할까?)을 끝까지 간호하며 희생하는 여자 이야기가 죽 이어지니 단순히 이성간의 사랑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게 되었다.

 거기다 병원에는 괴짜 환자가 한 명 있다. 암에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다. 이 할아버지는 툭하면 자살을 시도하는데 죽을 때까지 숨을 참는 식이다. 그러다가 죽기 일보 직전에 숨을 쉰다.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일하는 청소부 아주머니 때문에 방해를 받아서다.

 이 암 환자가 죽으려고 하는 이유는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지금 사는 것도 산다고 할 수 없는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하며 희생을 하는 것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인데, 어느 순간에는 자기 마누라가 젊은 남자랑 바람이 나서 도망갔고, 아이들도 자기를 버렸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마누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슬퍼한다.

 이 암에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 툭하면 도진의 병실에 찾아와서 늘어놓는 장광설이 이 연극의 흐름을 바꾼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죽음의 문제다.
 
▲꿈… 순식간에 뒤바뀐 현실
 
 그렇지 않아도 젊고 예쁜 윤서가 불구가 된 자신 때문에 삶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못 견뎌하는 도진에게 이 노인은 지금 죽는 것(자살)이 가족과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인지, 아니면 끝까지 죽음과 투쟁하고 살아가는 일이 모두에게 진정한 행복인지 묻는다.

 윤서의 보살핌 없이는 생명의 끈을 연장하기 힘들지만 또한 윤서를 사랑하는 마음에 윤서와 생명의 끈을 동시에 놓아버리고 싶은 도진과, 그런 도진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끝까지 도진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윤서. 또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간호에 지쳐가는 윤서를 보여주는 장면들에 삽입된 노인의 이야기는 도진과 윤서뿐 아니라 관객들의 마음까지 혼란스럽게 하고 울린 것 같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관객석의 분위기 속에 가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극은 윤서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이미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과 종양 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정점으로 치닫는다. 윤서는 아기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이렇게 막장 분위기를 형성하면 어떻게 끝을 맺으려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불구가 된 연인 병간호하는 것만도 인생에 고뇌가 따로 없는데, 아기가 생기고, 아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병까지 생기다니 말이다. 그런데 연극 말미에 이 모든 것이 도진의 꿈이었음이 밝혀진다.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한 것은 도진이 아니고 윤서였다. 한순간에 도진과 윤서의 입장이 바뀌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청소부 아주머니는 암 환자의 부인이었다. 기억을 잃고 자신을 못 알아보는 남편을 위해 병원에 청소부로 취직하고, 남편이 어이없는 자살 소동을 벌일 때마다 기차 화물통 삶아먹은 것 같은 목소리로 남편의 자살을 방해했던 것이다. 노인은 한 순간 기억이 돌아왔을 때 부인을 알아보곤 감사와 사랑을 전한 후 세상을 떠난다. 윤서는 임신한 몸으로 힘든 병 치료를 견뎌내고 도진은 그 곁을 지킨다.
 
▲진지한 주제 속 웃음 포인트
 
 연극은 무거운 주제를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풀어내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한 흔적들이 보였다. 상업극이 주로 사용하는 가벼운 코미디적 요소와는 다른 줄기로 관객에게 웃음을 주면서 극을 이끌어서 관객들은 진지한 주제에 집중하다가도 웃음을 주는 포인트에서는 밝은 웃음으로 답했다.

 특히 도진 역을 맡은 배우는 불구가 된 환자의 모습을 리얼하게 연기하고, 자신의 삶이 사랑하는 이에게 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내면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하여 연극의 질을 높였다.

 완성도가 매우 높은 연극이진 않았지만 이 연극에서 받은 가장 좋은 인상은 목적의식이었다. 이 연극은 따뜻한 인간 세상을 지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견인차 역할로 사람들 간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제목을 ‘사랑하고 있나요?’로 지은 게 아닐까? 광주 극단과 대구 극단 간의 사랑, 광주 연극인들과 대구 연극인들의 사랑, 광주와 대구 간의 사랑이 온 대한민국에 퍼져 따뜻하고 인간적인 세상이 오기를 나도 바란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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