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의 ‘에코의 초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다. ‘에코의 초상’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새의 위치’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고, ‘새의 위치’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인 ‘우리는 가볍게 사랑하자. 기분이 좋아서 나는 너한테 오늘도 지고, 내일도 져야지.’가 담긴 시이기 때문이다.

 바닥을 치던 시집의 판매율이 근 5년 간 조금씩 올랐다고 한다. 아마 인기 많은 드라마의 값비싼 책장에 꽂힌 시집의 모습과 장난스럽게 소비된 문장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혹은 문학을 소개하는 팟캐스트의 등장과 그것을 자주 듣는 애청자의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수년간 고요하고 끈질기게 시를 읽어온 어떤 사람의 영향일 수도 있고, 조용한 동네 어귀에 하나씩 등장한 작은 서점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꾸준히 올랐다는 시집 판매율이 합쳐봐야 얼마 되지 않을 거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오늘 책 읽을 거야, 라는 문장에서 ‘책’은 더 이상 시집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집 하나를 팔면 시인에게 800원 가량이 돌아간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지도 몇 년이 흘렀으니 이제는 조금 올랐을 것이다. 아주 조금.

 나도 시집은 가끔 읽는다. 예전에는 자주 읽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끔만 읽게 되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줄줄 읊는 시도 몇 편 있었다. 내가 줄줄 읊던 시 중 하나를 친구에게 알려준 적도 있었다. 친구도 그 시가 마음에 든다며 나를 따라 좔좔 읊었다. 내가 줄줄, 하면 친구는 좔좔, 하고 읊었다. 그 때는 길에서 시를 읊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지금은 어쩐지 쑥스럽다.) 그 친구와 만날 때면 그 시를 기억하고 있는지 연습 삼아 서로 확인해주기도 했다. 잘못 기억하고 있는 단어와 문장을 고쳐주면서.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아마 ‘가장 좋아하는 시’의 자리를 이제 다른 시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에는 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아주 작은 것에도 마음은 흔들리고 스쳐지나가는 짧은 문장에도 심장이 철렁할 때가 있다. 그런 문장을 발견할 때면 몇 번이고 그 문장을 다시 읽고, 곱씹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빨리 뛸 때도 있다. 너무 좋아서 이걸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밥을 먹다가도 그 문장이 뭐였더라, 생각하고 똥을 싸다가도 그 문장이 뭐였더라, 하다보면 저절로 외워진다. 그러면 밤에 잠들기 전, 그 문장이 뭐였더라, 했을 때 불을 켜지 않고도 알 수 있게 되므로 부러 불을 켜서, 책을 펴들고, 그 문장을 찾아내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내게 찾아온 그런 문장들의 대부분은 시집 안에 있었다.

 맞은편에 전파사와 떡집이 있는 골목, 열 평 남짓한 이 서점 안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있자면 오고 가는 사람들의 앞모습 보다는 옆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책을 보는 사람의 모습이 어떨 때는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발걸음과 행동이 방해가 될까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옮겨 다니며 책을 훑어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내 어깨를 가만히 두드리며 찾는 책을 묻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시집을 모아둔 코너에 한동안 멈춰 있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이 오래오래 서점에 머물기를 바라며 오디오의 볼륨을 가만히 낮춘다.
김보라 <책방 러브앤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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