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과 아래하, 하늘 속 물(水)과 구름(云)-3

▲ 장도22, 23 육서통 상하(上下).
중국 한자 상하 풀이는 뭔가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하(上下)는 아래와 위를 말하는데, 이렇게 ‘자명하게’ 알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허신(許愼 58∼147)은 《설문해자》(100)에서 상(二)과 하(二 뒤집은 꼴)를 이렇게 정리한다. 미리 말하지만 그는 갑골과 금문을 몰랐고, 그래서 더더욱 그는 자신의 조상, 중국 ‘신석기 세계관’을 알지 못했다. 간혹 갑골과 금문을 알아야 할 수 있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가 갑골과 금문을 알아서라기보다는 아주 우연히, 그가 《설문해자》를 쓸 때까지도 남아 있던, 갑골과 금문에 담긴 뜻, 그 뜻이 그때가지 살아 있는 글자를 풀이할 때 하는 말로 볼 수 있다.

상(二)
二, 高也(고야). 此古文?(차고문상), 指事也(지사야). 凡二之屬皆?二(범이지속개종이). ?(상), 篆文上(전문상).
상(?)은 ‘높다’는 말이다. 이 글자는 상(?)의 옛글자이고, 지사자다. 상(二)에 드는 글자는 모두 상(二)의 뜻을 따른다. 상(?)은 상(上)의 전서이다.

하(二← 이 글자 거꾸로)
二(← 이 글자 거꾸로), 底也(저야). ?反二爲二(← 이 글자 거꾸로)(종반이위이). ?(하), 篆文下(전문하).
하(?)는 ‘낮다’는 말이다. 상(二)을 거꾸로 하여 하(二← 이 글자 거꾸로)로 하고 이것을 따른다. 하(?)는 하(下)의 전서이다.

위 상하(二二← 이 글자 거꾸로) 풀이는 단옥재가 그전에 나왔던 《설문해자》 주를 정정한 것이다. 허신의 《설문해자》는 청나라 때에도 그 원전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설문해자》 전체 맥락과 허신의 신(辛), 시(示), 진(辰), 제(帝), 방(旁), 음(音) 풀이를 염두에 두면서 바로잡은 것이다. 그리고 위 원문과 풀이에서 전문(篆文)과 전서(篆書)는 진나라 소전(小篆)으로 보면 된다.

아주 짧은 풀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상하(上下) 개념으로 허신의 풀이를 보면 뭔가 이상하다. 상(二)은 높고 하(二← 이 글자 거꾸로)는 낮다고 한다. 이 풀이 말고 더는 없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뜻, ‘위아래’하고는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일까. 《설문해자》에 주석을 단 청나라 학자 단옥재(段玉裁 1735∼1815)는 허신의 상(二)자 풀이에 주석을 달면서, 여러 책에서, 특히 허신의 《설문해자》 주석 책에서 사람들이 상하(上下) 옛글자를 ‘二二(← 이 글자 거꾸로)’로 보지 않고 ‘??’로 썼다 하면서 상하(上下)의 옛글자를 ‘二二(← 이 글자 거꾸로)’로 바로잡는다. (사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왜 그들은 헷갈려 했고, 잘못 알고 있었을까!) 그런 다음 지사자(指事字) 개념을 확실히 한다. 아래 단옥재의 《설문해자주》 ‘二’부 주는 옮긴이마다 달리 옮기고, 잘못 번역한 곳도 많은 것 같다. 이 점 헤아려서 다른 번역본과 견주어 읽어 보면 좋겠다.

象刑字實有其物(상형자실유기물).
상형자는 그 사물이 실제로 있는 것을 그대로 그려낸 글자다.
日月是也(일월시야).
일(日)자와 월(月)자가 바로 그런 글자다.
指事者不泥其物而言其事(지사자불니기물이언기사).
반면에 지사자는 실제 사물과는 상관없이 어떤 일(또는 형편)을 말하는 것이다.
??是也(상하시야).
상(?)자와 하(?)자가 바로 그런 글자다.
天地爲形(천지위형).
만약에 하늘과 땅의 모습을 말로 설명한다면(그려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天在上地在下(천재상지재하),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다 할 수 있고,
地在上天在下(지재상천재하).
땅 위에 있고, 하늘 아래 있다 할 수 있다.
則皆爲事(즉개위사)
다시 말해 이 두 글자는 어떤 사실(형편이나 처지 또는 상황이나 위치)을 말하는 것이다.

허신은 상하(上下)를 ‘높고 낮음’으로 풀이했는데, 단옥재는 ‘위아래’ 개념으로 본다. 허신이 상하(二二←뒤집을 것)를 ‘지사자’라 분명히 밝히자 단옥재가 이것을 알기 쉽게 풀이하면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지사자라 밝힌 것은 상하(上下) 이 두 글자뿐이다) 하지만 높고 낮음이나 위아래나 지사(指事)인 것은 분명한데, 왜 단옥재는 높고 낮음보다는 위아래 개념을 중심으로 푼 것일까. 이것은 단옥재 당시 상하(上下)가 높고 낮음보다는 주로 위아래로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20 양사오문화(仰韶文化) 채색토기. 중국 황하 중류 신석기 농경문화. 기원전 5000년-3000년.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이 그릇의 무늬를 아직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미술사학계가 신석기 빗살무늬토기 무늬를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듯 그들 또한 `수수께끼’라 하고 `추상적인 패턴(abstract pattern)’이라 한다. 나는 이 그릇 무늬 또한 세계 신석기인이 그런 것처럼 파란 하늘을 경계로 아래에 삼각형 구름(云)을 그렸다고 본다. 흥미로운 것은 하늘 속 구름에 갑골 비우(雨)자를 그렸다는 점이다. 갑골편을 보면, 비우(雨)자를 주로 ㉱로 쓴다. ㉱ 갑골에서 윗부분은 갑골 아래하 ㉰에서 온 것인데, 즉 파란 하늘과 구름을 뜻한다. 그릇의 하늘 속 구름 또한 삼각형인데, 그 안에 비우(雨)자 갑골에서 파란 하늘과 구름 부분을 그려 넣었다. 이 구름이 아래 삼각형 구름으로 나와 비가 내리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비우(雨)자로 본다면 중국 한자의 기원은 지금보다 1500년 더 아래로 내려가 최소 기원전 3000년까지 내려잡아야 한다. 사실 이런 디자인은 글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도22 중국 신석기 유적 그릇 문자. 이것이 문자인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부호는 주로 그릇 아가리 쪽에서 볼 수 있는데,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그릇의 주인, 사기장의 서명, 씨족 표시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기호라기보다는 문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이겠다. 우선 도20의 우(雨)자를 들 수 있다.


◀도22 중국 신석기 유적 그릇 문자.  이것이 문자인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부호는 주로 그릇 아가리 쪽에서 볼 수 있는데,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그릇의 주인, 사기장의 서명, 씨족 표시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기호라기보다는 문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이겠다. 우선 도20의 우(雨)자를 들 수 있다.


강채유적(姜寨遺蹟)
중국 양사오문화(仰韶文化 Yangshao culture) 가운데 하나. 중국 섬서성 서안 임동구. 기원전 4600년∼3600년.

빤포오유적(半坡遺蹟)
중국 양사오문화(仰韶文化 Yangshao culture) 가운데 하나. 기원전 4800년∼4300년.

마자야오문화(馬家?文化 Majiayao culture)
중국 간쑤성(甘肅省). 기원전 3300년∼2000년. 신석기 후기 문화.

얼리터우문화(二里頭文化 Erlitou culture)
중국 황허 유역 청동기시대 문화. 기원전 2000년∼1500년.

중국 신석기인에게 상하는 기호(symbol)였을까

일차적인 착오 내지 잘못은 허신에게 있다. 그는 갑골과 금문을 몰랐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신석기 세계관을 몰랐기 때문에 상하 글자의 본뜻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높고 낮음으로 봤고, 지사자라 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중국 신석기말 신석기인이 위상과 아래하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더 구체로 ‘하늘과 하늘 속 물(水)’ ‘하늘과 하늘 아래 구름’으로 보았다면(도14, 15 참조), 과연 이 두 글자는 중국 신석기인에게 추상적인 기호(symbol) 지사자였을까. 지금 우리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그런 추상적인 상상이지만, 전에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무늬를 말하면서 나는 당시 암사동 신석기인에게 ‘하늘 속 물(水)’은 추상이 아니라 ‘구상’이고, 그들에게는 ‘실제’이고 현실이라 했다.

갑골 위상(二)과 아래하(二 뒤집은꼴) 또한 허신이 살았던 동한이나 단옥재가 살았던 청나라 세계관으로 보면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대학 1학년 학생들에게 상(二)에서 아래 긴 가로획이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 같냐고 물었더니, 상당수 학생들이 땅이라 했다) 이렇게 보는 것은 또 다른 ‘전도’라 할 수 있다. 허신이 ‘주역’의 세계관으로 한자를 정리하면서 한 번 전도가 일어났다. 주역의 세계관으로 한자를 정리했을 때 한자에 깃들어 있는 세계관, 특히 신석기 세계관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전도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그래서 미술사에서는 전도가 일어나기 전 그 ‘기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이 기원을 찾았을 때 그동안 풀지 못했던 것이 순식간에 풀리기도 한다. 뚜렷하게 풀지는 않더라도 거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도무지 풀 수 없었던 것도 자연히 풀릴 때가 있다.

육서통 상하와 신석기 세계관

도22, 23 상하 육서통을 보자. 청나라 때 현판 글씨를 모아놓은 글자 가운데 상하(上下) 두 글자인데, 허신 이후 사라져 버린 신석기 세계관이 다시 살아났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책 제?장에서 서울 암사동 신석기인이 파란 하늘 너머의 공간을 ‘하늘 속 물(水)’이 있는 곳으로 보았다 했다. 이 물(水)이 있으려면 그 물을 담아놓는 거대한 물그릇이 있어야 한다. 그 그릇이 구체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나라 때 현판 글씨를 쓴 사람은 영락없이 물그릇으로 상(二)을 표현했다. 그리고 동그란 점은 그 물그릇에 담긴 물(水)로 보면 된다. 수분 내지 물기를 동그란 점으로 표현한 것은 세계 신석기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패턴이다(도?-이것은 나중에 참조). 그리고 육서통 아래하(下)는 파란 하늘 아래 걸려 있는 구름(云)을 표현했다. 이 육서통 하(下)는 갑골 구름운(云)과 거의 같다(도?-이것은 나중에 참조). 이렇듯 육서통 글자는 갑골과 금만만 보고서는 알 수 없는, 특히 사라져 버린 신석기 세계관을 복원하는 데 아주 중요한 글자라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글자를 찾아볼 때 갑골과 금문을 먼저 보고, 반드시 육서통을 찾아본다. 그래야만 그 글자의 본뜻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기초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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