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도서출판 창비, 192p, 12,800원

 수의사의 운명은 얄궂다. 동물을 살리는 현장에만 있지 않는다. 가축 전염병땐 살처분 현장을 피하기 어려웠다. ‘검사관’이란 이름으로 도축장 근무땐 매일매일 ‘살생’을 결재하는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동물을 좋아해서 선택한 수의사로서의 고뇌를 떨칠 수 없었다.

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인 최종욱이 어느날 털어놓은 번민의 일단이다.

 최 수의사는 그 복잡한 심사를 걷는 것으로 털어냈다. 해서 그에게 걷기란 치유고 힐링이다. 그렇게 시작된 걷기가 정례행사가 돼 산으로, 들로 이어졌다. 혼자가 아닌 “함께 걷자”는 길벗이 있어 더 견고하게 굳어진 여정이었다. 그렇게 떠난 수 많은 길 위에도 동물들이 있었다.

 최종욱 수의사가 그 동물을 만나서 소통·교감한 기록 ‘길 위의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창비>가 최근 출판됐다.

생태 감수성이 충만한 수의사의 기록으로 길 위에서 만난 ‘벗’들에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사계절 생태 순례로 편집돼 일년 동안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의 면모가 일목요연하다.

 봄에 길을 떠나면 만날 수 있는 새들이 있다. 왜가리, 백로가 대표적이다. 앞의 것은 텃새이고 뒤에 것은 철새다. 철새는 소위 ‘외국 물 먹은’ 새들인데, 꾀꼬리·백로·제비 등은 이 계절에 특히 반가운 손님이다.

콘크리트로 축조된 농수로에 빠져 탈출못하는 유혈목이(꽃뱀)와 쇠살모사도 외면하지 못하는 게 수의사다. 그는 나무 막대기로 이들을 꺼내 들판으로 돌려 보냈다.

 담양천 한복판에서 만난 해오라기. 푸르고 도도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태를 최 수의사 만큼 칭송해줄 안목은 없다.

 최근 기승이었던 유례 없는 폭염에도 수의사는 길에 나선다. ‘머리가 벗겨질 것 같다’는 하소연은 인간의 나약함일 뿐, 한해살이 곤충들은 삶의 전부인 한계절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다. 해서 이 계절엔 어디가나 거미 천국이다. 알공장서 일제히 부화돼 쏟아져 나왔다는 설명이다.

‘드래곤 플라이’ 라는 별칭의 잠자리, 그리고 나비까지. 내년엔 볼 수 없을 생명의 사체를 자연의 일부로 되돌려보내는 것 역시 그이라서 가능한 애정이다.

 연가시의 숙주라는 사마귀가 무섭기만 한가? 수의사의 설명은 다르다. “초가을 밤, 절대 없어서는 안될 맹렬한 곤충 사냥꾼이자 자연의 조절자”로 칭송한다.

 가을 밤은 멧돼지들의 세상이다.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의 곡조를 ‘헤비메탈’급 매미와 비교해 ‘발라드’로 재해석해준 것 역시 그의 작품이다.

 동네 어귀 전봇대에 앉아있는 제비들을 음표로 읽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제비들이 무리지어 있는 건 강남으로 떠날 때라는 신호라고 알려준다.

 까치 까치 흔하디 흔한 이 새보다, 까마귀에게서 더 고귀한 풍모를 엿보는 혜안도 돋보인다. 꼬리가 말린 채 죽어있는 뱀은 누군가에 희생당한 것이라며 차량 사고보다 더 많은 혐오 사고를 경계하기도 한다,

 겨울에 떠난 길에선 어떤 동물을 만날 수 있을까?

 모두 생명의 빛을 잃은 회색빛 세상에서 유독 푸르디 푸른 연둣빛 초롱을 발견한다. 어미가 만들어놓은 보금자리 속에 잠들어 있을 애벌레의 평안을 볼 줄 아는 게 수의사다.

 눈길로 동물들의 알리바이를 추적하기도 한다. 전날 밤 이곳을 다녀간 흔적들이다. 너구리·산토끼·까치…. 발자국의 주인을 금방 알아차린다. 절박하게 먹이사냥 나온 것인지, 가볍게 산책한 것인지조차 감별한다.

 똥으로 녀석들의 몸 상태도 체크한다. 소화 안된 씨앗이 들어있는 똥을 보며 꿩의 안부를 걱정한다. 나무 그루터기서 발견한 너구리들의 똥으로 그들의 서열을 정리한다, 더 위에 싼 놈이 힘이 세다는 징표다.

 이렇듯 길 위에서 만난 동물들이 보내는 메시지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배우고 읽히면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할 지혜의 일단이다.

 가진 것 없지만 영혼이 자유롭고,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배부른 속박보다 배고픈 자유를 택한 생명들에 대한 헌사를 책으로 만나보길….

 최 수의사는 이 많은 동물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늘 동행했던 벗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했다. 마치 공동저자 같은 뿌듯함이 넘칠 법한 길벗, 그는 바로 본 기자다.
<길 위의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창비/12,800원>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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