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디센터·래미학교 텃논프로젝트 주목
청소년들께 ‘꿈꾸는 벼 헤는 밤’ 선사

▲ 광주청소년삶디센터에서 모내기가 한창인 모습.<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제공>
 #1. 광주 충장로 한복판에 난데없는 논두렁이 등장했다. 쇼핑하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논이다. 그것도 ‘토종벼’가 사는 논이다. 스무 평 남짓 작은 규모지만, 쇼핑센터로 뒤덮인 상점가 사이에서 홀로 푸르른 벼논의 모습은 대번에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논주인은 청소년들이다. 모내기부터 수확까지 책임지는 청소년들은, 올 한 해 농부가 됐다. 삶디센터 텃논프로젝트 ‘삶디텃논’ 이야기다.

 #2. 화정동 광주광역시청소년문화의집에는 지금은 쓰지 않는 버려진 낡은 분수대가 하나 있다. 자리만 차지하던 분수대는 작년부터 새 생명을 얻었다. 물이 흐르던 자리는 흙이 차지했다. 거기엔 벼가 심어졌다. 분수대엔 이내 개구리들이 찾아오고, 소금쟁이·물방개·실지렁이·깔따구같은 생명이 생동하는 생태학습장이 됐다. 역시 주인은 청소년들이다. 래미학교 학생들이 진행한 텃논프로젝트 이야기다.
 
▲광주 곳곳 ‘청소년 텃논프로젝트’

 4월부터 볍씨를 싹틔우고 모를 키워 모판으로 옮겨심은 뒤 6월이면 모내기를 한다. 물을 채우고 보살피다 가을이 되면 벼를 베고 수확한다. 이 모든 작업을 청소년들이 직접 실행한다.

 래미학교엔 낡은 분수대가 훌륭한 벼논이 됐고, 광주시청소년삶디자인센터엔 충장로 번화가 한복판에 열 평 남짓한 벼논이 생겼다. 문흥초등학교, 용봉중학교, 충효분교에서도 학교 내외 작은 공간에 논을 만들어 텃논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대인시장에서 ‘맑똥작은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는 도시청년농부 김영대 씨는 지난해부터 광주 곳곳에서 청소년들과 텃논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50만 시민이 사는 ‘메가시티 광주’에서, 밖이 아닌 도시 중심에서 논을 마주하는 것. 청소년들의 일상인 ‘학교 안’에서 농부가 돼보는 경험. ‘꿈꾸는 벼 헤는 밤’을 주제로 하는 맑똥작은정미소의 텃논프로젝트는 이러한 경험들을 목표로 한다.

 김영대 씨는 프로젝트의 취지에 대해 “논을 일상으로 가져온다는 개념이에요. 그러면 논과 벼, 농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상상력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래미학교 분수대의 텃논.
 
▲한새봉 토종벼, 청소년과 만나다

 텃논프로젝트의 시작은 북구 일곡동 한새봉농업생태공원이었다. 주중에 바쁘게 사는 도시인들이 주말에 짬을 내 농부가 될 수 있도록 개개인에게 열 평 남짓 작은 공간을 내줬던 것.

 한새봉 텃논프로젝트는 청소년 교육과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프로젝트 안에서 청소년 농부들은 다양한 경험을 한다.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힘든 과정을 겪어본다. 참새들이 와서 벼를 쪼아먹어버리는 안타까움도 느낀다. 농사에서, 세상에서 ‘물’이 왜 중요한 지 느껴보기도 한다.

 추수 후 농부는 벼를 건조시킨다. 약 2주간 서서히 자연의 바람과 햇볕을 쬐며 다시 씨앗이 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이 휴면기를 김 씨는 ‘꿈꾸는 시간’이라고 봤다. 벼에게도 사람에게도 필요한 휴식. 다시 새생명을 싹틔우는 이 과정을 가까이서 보는 게 ‘교육’이라는 설명이다.

 김영대 씨는 “벼도 기계로 작업했을 땐 꿈꿀 시간이 없어요. 마치 우리 청소년들이 팍팍한 목표를 위해 쳇바퀴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요. 벼들이 꿈을 꾸는 모습을 지켜보고 청소년들은 꿈꾸는 벼 옆에 같이 누워 밤하늘을 보며 우주를 느껴보는 것, 텃논프로젝트 주제 ‘꿈꾸는 벼 헤는 밤’의 의미가 그것입니다”고 말했다.

벼 베기 후 볏짚 건조 장면.
 
▲지속가능한 농사, 지속가능한 사회

 학교에서 진행되는 텃논프로젝트의 가장 큰 장점은 그 효과가 참가자들에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교 한켠에 마련된 논은 하나의 큰 구경거리다. 하나의 큰 전시장이다. 실제 참여는 10~20명, 많게는 한 학급 정도 되지만 그 파급력은 전시효과로 인해 전교생으로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토종벼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벼꽃들, 물이 찰랑찰랑한 논으로 찾아오는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하는 ‘도시생물다양성조사’도 이뤄진다. 농촌의 ‘두레’를 상징하는 다양한 깃발들을 활용해보는 등 문화프로그램들도 가능하다. 도심 속 농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빗물저금통 등 물을 다뤄보는 경험은 ‘물순환’의 개념을 정립하는 생태교육이 될 수도 있다.

 김 씨는 “도시생물다양성의 확장은 학교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숲과 강과 바다의 끊겨져버린 연계점을 학교가 징검다리 방식으로 이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에서는 생물다양성 교육이 현장성 있게 진행될 수 있으면 좋겠죠”라고 말했다.

 또 “천수답에서 척박한 환경을 적응해온 토종벼는 큰 돈 없이 농사짓는 ‘지속가능한 농사’를 가능하게 하는 답이 될 수 있어요. 이를 통해 농부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다면 한 두명이라도 함께 노력해보고 싶어요. 많은 청소년들이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확장이 됐으면 합니다”고 밝혔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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