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책방’ 박선엽 씨의 행복한 하루

▲ 광양시 광영동에서 `개구리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박선엽 씨.
 광주 충장로에 있는 삼복서점에 앳된 얼굴을 한 여고생이 뛰어 들어온다. 학생은 책이 쌓인 구석지로 가서 참고서 하나를 꺼내 갓 태어난 아이 얼굴을 쓰다듬듯 책장을 넘긴다. 고흥군 한 작은 마을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참고서 하나 사기 힘들어 눈물반찬에 밥을 먹던 시절. 그녀는 허기진 마음을 삼복서점에서 달랬다.

 삼복서점에서 한 장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차곡차곡 책방주인의 꿈을 키운 주인공 박선엽(52)씨의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광영동 한 골목에 있는 ‘개구리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책들이 빼곡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수많은 책들 사이로 놓인 나무 테이블과 길 다란 의자 두 개. 나무 테이블 위에는 녹차가 은은한 향을 풍기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 씨는 “여자는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책은 정말 귀했다”면서 “삼복서점에 가면 한 권을 전부 다 읽어야 그 자리를 떴다”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로 행복하다”며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느냐”고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박 씨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에 하나였던 삼복서점의 추억. 그는 책들이 쌓여있는 구석진 곳에 쭈그려 앉아 책 한 권을 다 읽기 전까지 집에도 가지 않았단다.

 어릴 적부터 책이 내는 특유의 향기가 좋았고 책 속에 담긴 삶의 깊이를 느끼는 맛이 좋았다. 구겨진 치마를 탈탈 털고 책 한권 뚝딱 마음에 채우고 나면 어느새 하늘에는 어둠이 깔려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책을 읽던 박선엽 씨에게 반가운 물건이 하나 생겼다. 그건 바로 ‘작은 의자’ 였다. 불편하게 책을 읽는 여고생을 위해 서점 직원이 작은 배려를 해준 것. 박 씨는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 수십 년이 흐른 후 삼복서점을 다시 찾았지만 그 분을 만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언젠가 한 번은 꼭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어느덧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으로 남을 개구리 책방과 함께 한지 15년. 책방을 열고 한 8년 동안은 그저 딸아이 피아노 학원 값이나 벌자고 생각했지만 책방 인기가 좋아 땅도 사고 집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책방을 찾는 사람도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박 씨는 “책을 가장 가까이 해야 할 청소년들과 젊은 사람들이 책을 멀리 한다”며 “특히 요즘 20대같은 경우에는 취업걱정에다 자격지심으로 많이 고민하는데 그럴 땐 더더욱 책을 읽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이야기들이 우리 세포에 물들면서 긍정으로 희망으로 바뀐다는 것이 박 씨의 말이다. 책을 읽는 모습만큼 예쁜 모습이 없다고 말하는 그. 개구리 책방에 방문해 책을 읽으면 10권이든 100권이든 대여료를 받지 않는다.

 딱히 우울할 것도 힘든 일도 없는데 우울하다면, 친구와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롭다면 오전 11시부터 밤11시까지 활짝 열린 개구리 책방으로 발길을 돌리자. 책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당신의 마음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로움이 따뜻함으로 변해 있을 테니까.



광양신문=정아람 기자 webmaster@gy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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