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삶·관용의 확장 보여줘…이것이 `정치’
난민·환경·동물권 등 사회적 난제 주장·논의

 지난 7월25일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Berlin) 거리는 테크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로 흥이 나 있었다. 데모를 주최한 단체는 ‘Zug der Liebe’. 직역하면 ‘사랑의 행진’이라는 뜻이다. 1만 명이 넘게 참여한 이 행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를 보여주는 표지판을 들거나 몇몇은 독특한 옷을 입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15개의 트럭의 뒤를 따라가며 리듬에 몸을 맞추고 있었다. 몇몇은 동성애를 상징하는 깃발과 목걸이 그리고 난민들 환영 등 팻말을 들고 음악을 즐기면서 걷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테마를 내세웠기 때문에, 이 행진은 시위 보다는 축제에 가까워 보였고 길에서 크게 울리는 일렉트로닉 음악과 사람들의 신이 난 태도는 마치 클럽에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시위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추구하는 방향이 뚜렷하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사랑의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단순히 ‘놀기 위해’ 모인 것 같았고, 시위 또한 그저 재미를 위해 조직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사랑의 행진’을 조직한 옌스 호만(Jens Hohmann)은 이 행진이 단순한 러브 퍼레이드(Loveparade)가 아닌, 함께 사는 삶과 관용의 확장을 보여주기 위한 시위(eine Demonstration fuer mehr Miteinander und Toleranz) 임을 강조하며, 보다 더 많은 동감, 이웃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회적 참여(Mehr Mitgefuehl, mehr Naechstenliebe uns soziales Engagement)를 단체의 모토로 내세운다. 그는 왜 그들이 길에 나가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길거리에 나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이성적이고 인간적인 해결 방법을 찾으면 우리 모두는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도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 않은 문제에는 돈이 듭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는 공동의 행복, 우리의 자유와 사랑,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해 길 거리로 나서기에는 너무나 피곤합니다. 우리는 회의적인 태도로 방관하고 고립되며 자기중심적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세대가 단지 쾌락을 추구하고, 비정치적이며 소비에 맛 들려 재미만을 추구하는 무리가 아님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관용과 이웃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내와 동감은 우리 시대에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래는 모두가 함께 해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행진’이 뭉뚱그린 ‘사랑’은 유럽의 난민 문제를 비롯한 환경 문제, 동물권 문제, 차별의 문제 등의 사회적 난제를 가리킨다. 그들은 이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고 ‘이야기’ 나누기 위한 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모호한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사회적 참여의 목소리를 내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 점에서 ‘사랑의 행진’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담론의 공간을 형성하려는 노력은 독일의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 (Hannah Arrendt)가 정의한 ‘정치’의 본질과 맞닿는다. 아렌트는 ‘정치’를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공통의 주제에 대해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고 합의하며 행동하는 과정을 ‘정치’라고 개념 지었다.

 흔히 ‘정치’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특정한 기구 혹은 시민 사회 조직의 운동으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나의 의구심처럼, 이와 같은 이해는 일상과 정치 혹은 개인적 삶과 공동의 삶 사이에 존재하는 벽 그리고 둘 사이의 괴리감을 깊게 만든다. 정치는 ‘사랑의 행진’과 아렌트의 주장에서 볼 수 있듯이, 내 옆 사람, 나와 같은 생각 혹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쳐 이야기하고 설득할 수 있는, 소통하는 공간에서 출발한다. 테크노 음악의 리듬을 타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흐름에서부터 사람들은 길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Zug der Liebe’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원문은 http://zugderliebe.org/에서 참고 바랍니다.)

전영선<독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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