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측 “대소변 등 민감한 내용 많아…기록 안해”
환자 측 “격리공간 등 사각지대의 경우 설치해야”
“대소변 등 환자에게 민감한 부분이 기록될 수 있다”는 게 병원 측이 CCTV를 가동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환자 가족들은 이번 사건과 같이 또 다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CCTV 기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해당 사건 피해자 가족인 이경률 전 광주시 인권담당관은 20일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광주시립제1요양병원 폭행 의혹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 씨는 “환자와 환자 가족은 ‘을’일 수밖에 없다”며 “치매환자를 의사에게 맡겨놓고 의료진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을이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가 무자비하게 폭행당했다면 적어도 연락해서 보호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줘야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면서 “CCTV 기록마저 없어 가족들이 환자의 상태를 알 길이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권 침해 문제가 있어 현행 법 구조상 어렵게 돼 있지만, 앞으로는 환자 인권을 위해 CCTV 기록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사건은 지난 7일 일어났다. 광주시립제1요양병원 이사장 박 모 씨는 흥분 상태였던 치매환자 이모 씨(87)를 1.2평 남짓한 밀폐된 ‘보호실’에 격리한다.
격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눈 주변과 허벅지 등에 멍이 들게 됐고, 이에 대해 피해자 측은 ‘가격으로 인한 폭행’, 병원 측은 ‘격리 과정에서 생긴 가벼운 타박’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에 CCTV는 있었지만,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병원 측은 “요양병원 특성상 환자들 대소변 등 민감한 부분이 기록되는 등 인권 침해 우려가 있어 모니터 용으로만 쓰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남대병원이 수탁 운영하고 있는 광주시립제2요양병원은 CCTV를 기록하고 있어, 1요양병원의 입장과 달랐다. 제2요양병원 관계자는 본보와 통화에서 “환자들을 위해 CCTV를 기록하고 있고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병원에 따라 CCTV 기록 여부가 갈리는 건, 제도적 미비 때문이다. 요양병원에 대해선 ‘CCTV 설치 의무’가 없는 것. 따라서 일각에선 “어린이집의 경우처럼 요양병원에 대해서도 CCTV 설치와 기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환자와 병원 종사자들의 사생활 침해, 감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한편 광주복지공감플러스 강연숙 사무처장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제보전화 한 통을 받았다”며 광주시립제1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가족의 사연을 전했다.
강 사무처장에 따르면 제보자는 “똑같은 피해를 우리도 겪었다”며 “환자의 눈 주변에 멍이 들고 자꾸 몸에 멍이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병원 측은 환자들끼리 몸싸움으로만 딱잘라 규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환자에게 피해가 갈까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 가족 입장에선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증언한 것이다.
시민단체들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대체 보호실이라는 명분 아래 밀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라며 “학대 은폐의 장소로 운용되지는 않는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복지단체 관계자는 “환자와 병원 종사자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도 분명 중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을일 수밖에 없는 환자의 인권을 위해 CCTV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병원 내 모든 공간에 대한 CCTV 기록이 어렵더라도 이번 경우와 같이 환자를 ‘격리’하는 공간은 언제든 인권사각지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공간의 경우에는 설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