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 할머니 “영화 내내 눈물”
“끌려간 소년·소녀들, 폭격 장면에
아픔의 날 떠올라”

▲ 지난 24일 CGV광주터미널점에서 열린 영화 ‘군함도’ 특별 시사회에 참석한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영화 상영을 앞둔 소감을 밝히고 있다.
 “모든 것이 100% 생각이 나요. 이런 영화 보리라고 꿈도 못 꿨는디.”

 지난 24일 CGV광주터미널점에서 열린 특별 시사회를 통해 영화 ‘군함도’를 보고 나온 양금덕 할머니의 눈가엔 아직도 눈물의 흔적이 선명했다.

 “영화 어떠셨어요?” 질문에 할머니는 “아이사 눈물로 콧물로…”라고 답했다.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 당사자인 양 할머니는 1944년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갔었다.

 나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다.

 “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부모님 도장을 몰래 찍어 간 일본이었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배고픔과 중노동이었다.

 영화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하시마섬으로 끌려가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린 조선인들의 ‘탈출기’를 풀어낸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에 영화에서도 해저 1000m 밑에 내려가 30도가 넘는 고열에서 석탄 채취에 노동을 착취당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양 할머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70여 년 전 본인이 실제 겪었던 고통의 나날들이었다.

 특히, 영화 속 군함도로 끌려간 청소년들의 모습은 13살의 나이로 일본에 끌려간 양 할머니에겐 `현실’ 그 자체였다.

 어린 나이에 마스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나, 페인트가 눈에 들어가며 비행기 페인트 칠을 했던 나날들. 양 할머니는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오른쪽 눈이 불편하다.

 가장 아팠던 장면은 군함도가 미군 폭격기의 공격을 당하는 장면.

 “(군함도가)폭격 당하는 장면을 보는데 너무 아팠습니다. 나고야에서 지진나서 쓰러졌다 겨우 살아나고, 도야마에서 폭탄 터지고. 실제로 내가 겪은 일들과 비슷한 장면을 보니 너무 와닿고 아프네요.”

 일본에 끌려간 1944년 12월7일 발생한 동남해 대지진으로 당시 양 할머니와 끌려갔던 많은 조선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실제 내가 일본사람 밑에서 겪었던 지진, 폭격당했던 것과 비슷한 광경을 (영화로)보면서 너무나 고마워요. 내 생전에 못볼 영화를. 내가 경험한 일이 참 가슴 속에는 그냥 어떻게 끓는지 몰라요.”

 여운이 가시지 않은 할머니는 강조했다.

 “참말로 너무나 좋은 영화를 잘 봤습니다. 우리 만 인간이 다 봐야 될 영화네요. 열 일을 제쳐놓고 빚을 내서라도 봐야 해요.”

 이제 90세를 바라보는 나이.

 영화를 보고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할머니가 말하는 바람은 분명했다.

 “저랑 같이 나이자신 분들은 옛날에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셨으니까 잘 알 것이고. 우리 젊은이들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힘 써주는 거 그 희망 하나 안고 살아갑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생한 거 잊지 말고 항상. 우리 역사를 되찾는 것이 끝까지 우리나라를 강하게 지켜나가는 것임을 다 같이 명심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 하나뿐이에요.”

 양 할머니는 일본의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1차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원고다.

 양 할머니를 비롯해 5명이 제기한 이 1차 소송은 1·2심 승소에 이어 현재 대법원(사건번호: 대법원 2015 다 45420)에 계류 중이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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