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생활, 꼭 죽을 것만 같았는데 좋은 소식 감사”
오철석 할아버지 “재판 결과 한일 역사문제 해결로 이어지길”

▲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김재림·양금덕 할머니(가운데 왼쪽부터)와 오철석 할아버지(오른쪽)가 2차 소송 1심 판결 후 광주법원 앞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진행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왼쪽의 현수막은 일본 ‘나고야 소송지원회’ 1호 회원인 히라야마 료헤이 씨가 준비해 온 것으로 ‘미쓰비시근로정신대 원고 승소’라는 뜻이다.
약 3년6개월을 기다린 끝에 얻어낸 ‘승소’.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원고인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재림(1930년생) 할머니는 눈물만 흘렸다.

11일 광주지방법원을 찾아 직접 1심 선고를 들은 김 할머니는 “여러분들의 고생으로 이런 좋은 소식을 들었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90을 바라보는 고령이 된 할머니는 건강 상태가 나빠져 요양원에서 생활 중이다.

날씨도 무척 더워 당초 이날 법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할머니는 기어코 길을 나섰다.

법원을 향하는 길에 “너무 울고 싶다”는 말만 되뇌었다고.

그토록 기다린 판결 결과를 듣고 법원을 나선 김 할머니는 “병원(요양원) 생활을 너무나 오래하다 보니까 꼭 죽을 것만 같고, 이런 소리(승소 판결)만 들어도 너무나 반갑고 좋다”고 말했다.

“오늘날 와서 이런 좋은 일이 있을지 누가 알았겠냐”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감정이 복받친 듯 할머니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시골에서 자라 강제로 끌려가면서 고향 돌아보며 울기만 하고 끌려갔는데. 이런 설움을 이제와 뭐라고 말씀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할 말도, 생각도 잊어버리고 죄송합니다.”

김 할머니는 1944년 5월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14살 어린 나이에 일본 미쓰비시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했다.

같은 시기 미쓰비시로 끌려간 2차 소송의 다른 원고 심선애(1930년생)·양영수(1929년생)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이날 현장을 찾지 못했다. 양 할머니는 대구의 양로원에서, 심 할머니는 광주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 할머니와 같이 일본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다 1944년 12월7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사망한 고 오길애 씨 유족 오철석(1936년) 할아버지는 이날 판결에 대해 “누나(고 오길애 씨)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지만 이것은 한일 간 매우 중요한 문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미쓰비시에 항거하는 재판을 도와준 일본 시민단체(나고야 소송지원회)와 할머니를 도와온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그 정신을 살려 이 재판 결과가 한일 양국, 강제동원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들 모두 승복해 가깝고도 먼 한일관계를 더욱더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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