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소리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스스로 생을 달리한 사람이 21만 명이 넘는다. 이는 강릉시 인구에 해당된다. 2015년에만 1만2513명이 세상을 등졌다. 질병과 가난 속에 죽음을 택하는 노인들, 성적이나 장래를 비관하는 청소년들, 혼자 사는 중년 등 자살자들은 늘어간다.

 한국인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이 28.7명으로 회원국 중 1위다. 2위인 일본(18.7명)보다 10명이나 많다. 한국은 2003년 이후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자살생각’을 넘어 ‘살자’로 가는 길을 찾자.
 
 ▶자살 원인은 추론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사는 이유가 다양하듯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에 ‘자살’ 원인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유서를 남긴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다. 유서의 내용이 모든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관심을 가지면 주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시도하였지만 살아남은 사람에게 묻거나, 자살생각을 갖는 사람에게 물어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여론조사기관 12개가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인 ‘공공의창’은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사,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조사를 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최근 자살을 조사하였다.
 
 ▶자살위기자는 이 동네에 많이 산다

 공공의창은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조사와 지리정보, 2006~2015년 실제 자살자 통계, 4500명 대상 설문조사를 사용해 ‘자살위기자’ 지도를 읍·면·동별로 표기하였다.

 자살위기자는 전국 4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추출했다. 설문 문항 중 “ ‘나는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어’라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십니까”에 공감한다고 답한 28.8%(다소 공감 22.3%+매우 공감 6.5%)와 “최근 1년 사이에 자살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란 질문에 “생각해봤다”고 답한 15.5%(종종 생각함 11.3%+자주 생각함 4.2%)를 ‘자살위기자’로 분류했다. 두 문항 중에서는 ‘자살충동’에 가중치를 부여했다.

 이렇게 추출한 자살위기자의 지역별 비율과 2006~2015년 실제 자살자의 지역별 분포를 비교해 보니 상관율은 84.1%이었다. 자살위기자가 많은 지역에서 실제로도 자살자가 많이 나올 개연성이 높다는 뜻이다.

 자살위기자들은 지역별로 연령·세대구성 등은 달랐지만 주택 면적이나 점유형태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20평 이하’의 집에서 ‘월세’로 사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서울에서 자살위기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강남구 가동은 중산층 거주지역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피스텔과 고시원이 밀집해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60%를 넘었다. 자살은 가난하고, 몸과 마음이 병들어서, 사회적 관계가 취약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복지대책을 체계적으로 세우면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
 
 ▶가난, 질병, 외로움으로 죽는다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김도윤 부센터장 등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한 지방대도시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 169건의 자료와 유가족 면담, 지역 특성 등을 분석하였다. 자살자 평균 나이는 45.2살로 20∼50대가 전체의 68.1%이고 남성이 여성보다 2.27배 더 많았다. 이들은 다세대주택에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았다. 33.7%가 1인 가구였고, 절반 이상이 원룸 등 다세대주택(50.3%)이나 고시텔·여관 등(6.6%)에 살았다.

 또한, 도시개발에 밀려 슬럼화된 구도심, 도시 외곽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도시 난개발에 따른 유흥가와 신축 원룸 혼합 지역 등에서 많이 발생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혼자 외롭게 살다가 죽음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를 폐지해야

 20평 이하 집에서 월세로 사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빈곤’이 거의 모든 자살의 기저요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살아가기가 너무 퍽퍽하다. 숨만 쉬고 있어도 돈이 들어가고, 아무리 생활비를 아껴도 집세가 발생되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쪼들리면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기 쉽다. 선진국에서는 전체 주택의 약 30%를 공공임대로 공급하는데, 우리나라는 공공주택의 비율이 매우 낮다.

 주거급여 수급자에게 주거비를 지원하는 것 이외에는 가난한 ‘세입자’에 대한 주거대책이 거의 없다. 가구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43%이하면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부양의무자(흔히 자녀나 부모)가 있고 부양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국가는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부양비를 지급하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 부양의무자가 있지만 실제로 부양비를 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내몰린다. 형식은 자살이지만, 사회적 타살에 가까운 사례가 적지 않다.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서둘러 폐지해야 한다. 정부는 2018년 10월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기로 했는데, 하루라도 빨리 시행해야 집세와 관리비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자살시도자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자살생각을 한 사람 중 일부는 직접 시도한다. 이들 중 일부는 응급조치를 받아서 목숨을 구하지만, 다시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생명을 살렸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면 문제는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빈곤, 질병, 외로움 때문에 시도하는데, 목숨을 살렸더라도 문제는 그대로 있기에 반복해서 시도한다.

 통계에 따르면, 자살시도 건수는 사망자의 20~40배이기에 자살시도자에 대한 의료·복지·법적 서비스를 제대로 갖추면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응급실에 실려 온 자살시도자를 지원하는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가 전국에 42개 있지만 아직은 시범사업에 그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자살예방 전담부서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지금 당장 작업팀을 만들어서 개선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모든 자살시도자는 거주지 시·군·구 희망복지지원단과 연계하여 사례관리를 시작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이나 긴급복지 수급자를 선정할 때, 소득과 재산기준 등이 있지만, 에이즈환자나 한센병자 등에게는 특례를 적용하여 지원하듯이 죽음의 문턱에 간 사람들에게는 일정기간동안 특례를 적용하여 일단은 생존대책을 세우고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질 낮은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도시빈민밀집지역에는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등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시설이 있지만, 원룸과 고시원 밀집지역에는 이러한 시설이 많지 않다. 주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작은 공간(예, 청소년문화의집, 사회복지관)을 늘리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주택단지를 조성할 때는 어린이놀이터와 노인정과 같은 교류공간을 의무적으로 만들듯이 헬스장, 카페, 작은도서관 등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읍·면·동 행복센터 등 공공시설에도 주민들이 부담감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 공간 이용시간대를 평일 낮시간에서 주말 밤시간까지 늘리고, 온·오프라인 소통을 함께 하여 삶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자살’을 거꾸로 보면 ‘살자’이다. 모든 사람이 삶의 기쁨을 누려 ‘자살생각’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참고=중앙자살예방센터 http://www.spckorea.or.kr

이용교 ewelfare@hanmail.net
<광주대학교 교수, 복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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