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경찰청 5·18 보고서
“보안사 ‘전남도경 상황일자’ 조작 판단”

▲ 88년 5·18청문회를 앞두고 군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남도경 상황일지’의 표지. 경찰의 ‘경’을 한자로 쓰면서 ‘경계할 경(警)’이 아닌 ‘공경할 경(敬)’으로 썼다.<전남지방경찰청 제공>
“도경찰국 상황일지라고 한문으로 표지를 작성했는데, ‘경’자를 보면 아래 ‘말씀 언(言)’이 빠져있다. 경찰관이라면 ‘경(경계할 경, 警)’이라고 쓰지 이렇게 ‘경(공경할 경, 敬)’으로 쓰지 않는다. 이 문건은 당시 경찰 타자기에 없는 활자체라는 생각이 들며 아무리 봐도 80년도에 만들어진 문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80년 5·18민중항쟁 당시 도청 앞 집단 발포 이전 총기 피탈 관련 기록을 담은 보안사의 ‘전남도경 상황일지’에 대한 5·18 당시 근무경찰관들의 증언이다.

11일 전남지방경찰청이 공개한 ‘5·18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 보고서를 보면, 전두환 신군부가 5·18 당시 무기 피탈 상황을 왜곡했음을 알 수 있다.

경찰은 당시 근무 경찰관, 관련자들의 증언과 관련 자료 등을 종합, ‘실질적인 무기탈취 시점’을 1980년 5월21일 12시59분경으로 제시했다.

당시 광주시내 경찰무기는 5월19일 소산이 완료됐고, 5월20일 야간 광주세무서에서 칼빈 소총 17정이 피탈됐지만 실탄이 없어 ‘무장’으로 보기 어려웠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관 ‘경(警)’을 ‘공경할 경(敬)’으로, 의문점 한 두가지 아냐”

최초 경찰관서 무기 피탈이 일어난 것은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발포가 일어난 이후인 5월21일 13시30분경 나주서 남평지서라고 경찰은 밝혔다.

또 ‘5월21일 13시 전까지’는 시민군의 총기 발사는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국방부과거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보고서에 인용된 ‘전남도경 상황일지’는 5월21일 08시 나주 반남지서와 같은 날 09시 나주 남평지서에서 무기가 피탈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경찰은 이 ‘전남도경 상황일지’ 자체가 조작된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이 보유하고 있지 않던 ‘경찰 장갑차’ 4대가 피탈됐다는 허위 사실이 기재돼 있는데다 생산기관, 년도 미기재, 표지와 본문 내용 상이 등 허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 근거다.

‘전남도경 상황일지’에 기재된 무기피탈 시점과 관련해 한 경찰관은 “지리적으로 나주 끝에 있는 반남지서가 8시에 피탈 당하고, 광주에서 가장 가까운 남평지서가 9시에 피탈됐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특히, 경찰의 ‘경’을 한자로 쓰면서 ‘경계할 경(警)’이 아닌 ‘공경할 경(敬)’을 사용한 것도 “경찰이 작성한 문건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했다.

실제 ‘전남도경’이란 용어 자체도 다른 기관이 경찰을 부를 때 쓰던 명칭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관은 “당시에는 경찰서에 타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타이핑 문서도 흔하지 않았고, 활자체도 이렇게 진하게 나오지 않을뿐더러 글자체도 이렇게 세련되지 않았다”며 ‘전남도경 상황일지’의 의심스러운 대목을 설명하기도 했다.

▲“88년 청문회 앞두고 자위권 행사 정당화 위해 군에서 작성 추정”

이를 토대로 전남경찰청은 “시민의 무기탈취가 집단발포 이전에 이뤄짐으로써 시민에 대한 군의 발포행위가 ‘자위권 행사 차원의 정당한 행위’라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왜곡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군의 발포는 5월20일 야간 광주역 부근에서 이미 이뤄졌고, 그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시민들의 발포로 군의 자위권적인 발포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자위권 차원의 발포라는 전두환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경찰은 관련자 증언 등을 통해 ‘전남도경 상황일지’가 1988년 5·18청문회를 앞둔 시점에서 군 내부에 설치된 ‘511 분석반’에서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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