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40m 1~1.6m 굴착 시설물 설치 흔적·자연 퇴적층 뿐
“더 깊이 들어가는 건 무의미, 담장 쪽 폭 넓혀 조사키로”

▲ 5·18기념재단이 10일 옛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추정지 발굴 현장에서 브리핑을 갖고 그동안 조사 내용과 이후 조사 계획을 밝혔다.
옛 광주교도소(북구 문흥동) 5·18민중항쟁 암매장 추정지 1구간 발굴조사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아직까지 암매장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특히 예상치 못한 지하 매설물이 잇따라 발견된 가운데, 5·18기념재단(이하 5·18재단)은 교도소 담장 방향으로 조사 폭을 확대하기로 했다.

5·18기념재단은 10일 옛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추정지 발굴 현장에서 브리핑을 갖고 그동안 조사 내용과 이후 조사 계획을 밝혔다.

5·18재단은 지난 4일부터 교도소 북쪽 담장 밖 지역 표토 정리작업을 시작으로 본격 발굴 조사에 들어갔다.

총 117m구간을 40m씩 나눠 총 3단계로 조사를 진행 중인데 6일부터 이날까지 첫 40m 구간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됐다.

조사를 담당한 대한문화재연구원은 40m를 10m 단위로 나눠 시작점부터 1피트(Pit), 2피트, 3피트, 4피트로 구분해 각 피트별로 ‘쌩땅’이라고 하는 기반토가 있는 깊이까지 굴착했다.

1피트의 경우 1.4~1.5m, 2~3피트는 1~1.5m, 4피는 1.5~1.6m 깊이로 굴착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시신을 묻기 위해 팠던 구덩이의 흔적이 있는지를 살폈지만 4개 피트 모두에서 유의미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1피트의 경우 약 1m 지점까지 배수관 매설, 철책 조성 등으로 인한 퇴적토가 발견됐다. 1.4m 지점에서 작은 흔적이 발견됐지만 확인 결과 암매장과는 관련이 없는 자연적으로 생겨난 구덩이였다.

2피트와 3피트는 조사 도중 합쳐졌다.

현장 책임자인 대한문화재연구원 정일 실장은 “당초 피트 중간 중간에 뚝을 설치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여러 개의 배관이 나오면서 조사가 난감해졌다”며 “배관 제거 용이함이나 각 피트의 층위 자체 동일하다는 점을 고려해 2~3피트 중간의 뚝을 허물었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서도 인위적으로 흙을 건드린 흔적이 있었지만 역시 암매장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4피트 역시 배수관, 철책 조성 등으로 인한 퇴적토가 발견됐을뿐 특별한 사항이 확인되지 않았다.

실질적 발굴 조사는 이날로 5일째를 맞았다.

첫 40m 구간은 당초 5·18 희생자들이 암매장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판단된 곳이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5·18재단은 “전반적으로 1구간 내에서는 최대 1.4m 깊이까지 배관 및 통신 시설, 철책 조성 등으로 인한 토양 변화가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2~3피트의 황갈색(암갈색) 점질 기반토 내에서 구덩이 일부가 확인되나 자연퇴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1구간에서는 암매장과 직접 관련된 구덩이 흔적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정리했다.

이에 정 실장은 “1구간 4개 피트는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이 지역이 암매장지일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이날 오전 암매장 발굴 조사와 관련해 자문단과 5월 단체과 회의를 가진 5·18재단은 “2~3구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표토층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되 1구간에 대해서 가스관이 매설된 담장 쪽으로 폭을 넓혀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도소)담장 3미터 지점에 가마니로 2구씩의 시체를 덮어 같은 장소에 연결하여 묻었다”는 제3공수여단 부대원의 검찰 진술이 있었던 만큼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최대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다.

5·18재단 김양래 상임이사는 “13일부터 1구간은 교도소 담장에서 2m 떨어진 곳부터 가스관 매설지역 사이 약 2.5m 구간을 추가 발굴 조사할 계획이다”며 “2~3구간 조사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5·18 이후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광주사태 진상조사’에는 광주교도소에서 27명(보안대 자료에는 28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고 기록됐다. 하지만 실제 수습된 시신은 11구에 불과해 5·18기념재단과 5·18단체들은 16~17구의 시신이 버려졌거나 암매장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5·18재단은 “전남대학교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3명을 포함해 12구의 시체를 매장한 사실이 있다. 관을 사용하지 않았고, 가마니로 시신 2구씩 덮고 묻었다”는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 주둔한 제3공수여단의 김모 중령의 검찰 진술 내용을 토대로 발굴 조사를 진행 중이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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