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보는 남자, 삶의 끈 놓으려는 여자

▲ ‘수상한 흥신소2’.
 무대라는 공간에선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자극하는 공연을 보며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삶에서 얻지 못한 즐거움과 만족을 얻기도 합니다. ‘무대 읽기’는 광주란 무대에서 벌어지는 공연, 특히 연극에 대한 ‘리뷰’입니다. 연극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연극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은 이의 눈으로 본 무대의 매력을 솔직하게 전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공간인 무대와 이를 채우는 이들의 이야기도 소개해 보려 합니다.
<편집자주>

 연극은 사양산업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이 연극이라는 장르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광주에 있는 ‘기분좋은극장’을 운영하는 강용복도 그 중의 한 명이다. 그는 극단 ‘논다’의 대표이기도 하다. ‘기분좋은극장’은 광주에 두 곳이 있다. 상무지구에 하나, 충장로에 하나. 지난 3월11일에 광주연극제가 끝나고 딱히 무대를 올리는 곳이 없는 차에 상무지구에 있는 ‘기분좋은극장’에서는 연극이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찾아갔다.

 무대에 오른 연극 제목은 ‘수상한 흥신소2’. ‘기분좋은극장’이라는 이름도 호기심을 유발했는데 연극 제목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흥신소인데 수상하단다. 어떻게 수상한 것일까? 뭔가 미스테리한 극일까? 일종의 사건 수사물일까? 뭘 하는 흥신소길래 수상한 것일까? 관객 대부분은 연인이었다. 개인적으론 휴일인데 영화관에 안 가고 연극 보러 온 사람들이 괜히 고마웠다.

 연극이 시작되기 앞서 무대를 살펴보니 오른편은 헌책방인 듯했다. 큰 ‘책방’이라는 글자와 함께 책 몇 권, 소파가 보였다. 왼쪽엔 나무 의자가 있다. 덜렁 놓여 있는 저 의자는 누구를 위한 공간이고 어떤 부분에서 사용되는 걸까“
 
▲달달한데 눈물이 나는

 막 올릴 시간이 되자 출입문이 닫히고 배우 한 명이 나와서 기본 ‘에티켓’을 전달한다. “핸드폰 죽여라.(응“ 사실 이렇게 과격한 단어는 안 썼다.)” “자리 이동 안 된다.” “먹지 말라” 등등.

 이제 연극을 시작하는 줄 알았더니 ‘아주 재미있는’ 이벤트를 한다. ‘그 이벤트’는 극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흥미로웠다.

 ‘수상한 흥신소’라는 게 뭘까? 연극을 보러 가며 가졌던 궁금증은 곧 풀린다.

 수상한 흥신소는 남자 주인공(이하 남주)인 상우와 관련이 있다. 헌책방 주인이기도 한 상우는 영혼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상우가 어떻게 그런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는지 딱히 설명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수상한 흥신소1’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수사물도 미스테리극도 아닌 ‘수상한 흥신소2’는 달달하기 짝이 없다. 전체적인 극의 흐름은 영혼을 보는 능력을 가진 상우가 삶의 끈을 놓으려고 하는 여자 지연(여자 주인공)과 얽히면서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로맨스다. 무대를 보면서 궁금해 했던 왼편 나무 의자는 바로 상우와 지연의 공간이었다. 단지(?) 영혼을 볼 뿐인 상우와 만나서 지연은 왜, 어떻게 자살계획을 포기하는가.

 달달하기 짝이 없는 극을 보면서도 손수건이 젖도록 울게 되는 지점이었다. 다행히 나만 울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심지어 남자관객들도 운다. 연극을 보면서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관객들이 사랑스럽다.
 
▲정극과 코미디 장르를 오가는 배우들

 ‘수상한 흥신소2’에는 총 4명의 배우가 나온다. 그 중 남주와 여자주인공(이하 여주)은 각기 맡은 역할만 하지만 다른 한 명의 남자배우와 여자배우는 일명 ‘멀티맨’이라고 불리는 배우들이다.

 그들은 극 상황에 맞추어서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낸다.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고 서글프게. 멀티녀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멀티남의 열연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극 연기도, 코미디도 잘한다. 진정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아주 좋은 의미로 딴따라, 광대라는 단어가 연상됐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으면 느닷없이 멀티남이 나를 웃긴다. 죽도록 웃긴다. 그러다 또 울린다.

 연극은 보통 제 4의 벽이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관객들도 이 제 4의 벽이란 약속 하에 극을 지켜본다. 그런데 ‘수상한 흥신소2’는 간혹 이 벽을 허물고 배우들이 관객과 소통한다. 우리나라에 옛부터 있어 왔던 마당극을 차용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거 연극이야. 실제가 아니야”라고 관객을 종종 환기시킨다. 그러면서도 극에 집중하게 만든다.

 ‘수상한 흥신소2’는 아주 신선한 연극은 아니었다. 관객들도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클리셰들이 나온다. 가끔은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즐겁다.

 공연을 보는 내내 즐거운데, 꽉 들어맞게 짜여진 극본의 힘도 있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의 힘이 크다.

 ‘수상한 흥신소2’는 강용복이 이끄는 극단 ‘논다’의 작품이 아니다. 강용복은 연극을 보고 관객들이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섰으면 하는 바람으로 극장 이름을 ‘기분좋은극장’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서울 대학로에서 제작되어 유명세를 타거나 재미있다고 검증된 작품들을 광주에 가져온다.
 
▲상업극 아닌 대중극, 기분좋은극장의 바람

 한편, 강용복은 자신이나 극장에 상업극 전용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세간의 시선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상업극이라는 이름 대신 대중극이라고 해 주길 바랐다. 셰익스피어 시절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과연 어떤 위치였겠냐고 반문했다. “대중극이지 않았겠나. 그 때도 ‘로미오와 줄리엣’이 고전이었겠냐”고. 재미있는 대중극을 통해서 연극 관람 인구를 증폭시키고자 하는 그의 계획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수상한 흥신소2’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두 가지 것을 떠올렸다. 하나는 젬마 말리의 ‘잉여인간 안나’라는 소설의 결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최근 개봉한 영화 ‘위대한 쇼맨’에 나오는 바넘의 말이었다. 실존 인물인 바넘은 이런 말을 했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진정한 예술이다.”

 ‘기분좋은극장’을 나서는 모든 관객들이 행복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의 시선엔 대부분 기분이 좋아 보였고, 커플들 틈에서 혼자 연극을 보았던 필자도 기분이 좋았다.

 ‘수상한 흥신소2’를 보고 나면 ‘잉여 인간 안나’를 읽고 났을 때처럼 엄마 생각이 난다. 연극을 본 뒤 오랜만에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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