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안 와’. 고정순 글·그림
(웅진주니어 : 2018)

 아이가 태어나고 한동안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누가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방에서 들리는 말-‘엄마는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것에 내 자신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소위 모성이 부족한가 싶었다. 아이 키우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자주 불쑥 들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고 학교를 들어갈 즈음 2년 여간 출퇴근하며 일 할 때는 늘 부족한 것 뿐이었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아이를 포함해 가족과의 관계(소통)도 부족하고 집안일도 부족했다. 업무가 주는 성취감은 그 부족함을 메우지 못했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결국 일을 그만 두었다. 잠깐이지만 직장맘의 심정을 이해한 때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사회가 강요한 ‘완벽한 엄마와 직장인의 모습’ 모두를 이루려고 지나치게 안간힘을 썼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일하는 엄마’ ‘집에 있는 엄마’의 구분이 점점 희미해 질 정도로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하고 다양해 졌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하는 방식이 아니어도 엄마들이 해야 하는 일거리는 차고 넘친다.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여성의 역할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힘겹고 미안한 구석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맡겨진 일을 잘 해내고 싶고 (가족이든 업무든) 관계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 마음은 늘 아쉽고 미안하다.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 ‘엄마 왜 안 와’는 제목과 같은 아이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아이의 목소리에는 불안, 그리움, 초조함과 궁금증까지 온갖 감정이 담겨 있다. 책 표지엔 하루 종일 재미나게 놀았는지, 아이의 목에는 보자기 망토가 둘러있고 좌우로는 친구들이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엄마가 오는 쪽을 쳐다보고 있는 뒷모습은, 보는 이까지 짠해져 작은 손을 잡고 함께 기다려 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한다.
 
 “엄마 달리기 잘하는 거 알지? 걱정 말고 기다려. 엄마는 커다란 공룡 배 속에서도 씩씩하거든……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어두운 밤길을 달려 용감하게 너에게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지? 언제나 나를 기다려 준 네게로 무사히 돌아올 거야.” (본문 중)
 
 그림책은 아이의 질문에 엄마의 재치 있는 그러나 진심 담긴 대답들로 가득하다. 그저 미안하다는 변명이 아니라 엄마 나름의 이유로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아이에게 달려가고 있는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듯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안심된다. 아이와 함께 삶을 살아내는 이유가 미안함으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어서, 부족하다고 허덕이지 않아서, 담담하게 사랑으로 또 보람으로 엄마 나름의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말이다.

 짧지만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책 ‘엄마 왜 안 와’는 여러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과 간략하지만 많은 이의 경험을 담고 있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장 한 장이 내 이야기 같아서 인지,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에 안타깝고 달려가는 엄마가 애달프다. ‘엄마 빨리 와’ 라며 기다리는 아이의 말은 한 번밖에 반복되지 않지만 계속 메아리치는 듯하다. 사회활동을 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장면들, 당연히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고 있지만 불안함은 떨치지 못한 아이의 심정, 그림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주변에 함께 동동거렸을 아빠나 가족, 유치원 선생님의 표정 등등. 아직 아이 키우기에 불안하고 부족한 우리 사회의 한 면을 보는 것 같아 맘 한끝이 아리다.

 사회 제도나 통념도 변화해야 하고 개인의 책임을 넘어 한 마을(공동체)이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나아가야겠지만, 우선 지금은 서로 참 애쓰고 있다고 괜찮다고 토닥이고 싶게 하는 그림책이다. 책 마지막에 실린 ‘하루를 부지런히 살아내고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지금을 사는 엄마들에게 그리고 기다리는 아이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작가의 따뜻한 말에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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