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사업, 보증금 전액을 공사비에 써?
광주시vs상인회, 40년된 난제 수면으로

▲ 최근 충금지하도상가 상인들이 `공개입찰’을 추진한 광주시와 `임대보증금 미반환’ 문제로 분쟁 중이다. 충금지하도 상가 일대에 상인들이 내건 현수막.
 40여년 전인 1980년, 광주시가 민자를 유치해 민방위 대피시설을 지은 뒤 이를 상가로 임차, 관리해온 충금지하상가가 최근 임대차 재계약 문제로 상인들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충금지하상가 건설 당시, 광주시가 유치했던 민간자본이 임차인들로부터 받은 보증금을 공사비로 써버리고 현재 반환할 능력이 안돼 빚어진 일이다.

사실 이같은 문제는 준공 후 몇년만에 예견돼 임차인들이 공유재산 관리자인 광주시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미봉책으로 일관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광주시가 써온 방식은 ‘수의계약 연장’으로, 보증금 반환 상황 자체를 회피해 왔다. 하지만 올 들어 광주시가 공유재산법을 근거로, ‘수의계약 불가-경쟁 입찰’을 천명하면서 더이상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상인들은 당장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고 나섰고, 광주시는 건설 후 20년 동안 무상사용권을 행사했던 민간자본과 해결할 문제라며 일단 비켜서 있다. 급기야 상인들이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광주시는 “답변이 나올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해 임대계약 갱신 절차가 중단돼 있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본보가 40여년 동안 충금지하상가에서 벌어졌던 사태를 추적했다. 이와 관련 상인들은 지금까지 진행과정을 정리한 기록이 명확한 반면, 광주시는 ‘오래된 일이고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이유 등으로 사실관계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본보는 상인들이 권익위에 제출한 진정서를 토대로 충금지하상가 보증금 갈등의 전말을 들여다봤다.

 본보는 크게 4가지에 주목했다.

 △민자유치의 적절성 (자기 자본 투자 일체 없었던 업자에게 20년 무상 사용권) △시공사인 국제건설의 투자 포기, 승인 논란(임대차보증금 반환 책임자 실종?) △보증금 적립급 계산 오류(20년간 24% 금리가 가능한가?) △상인들이 제시한 해법의 타당성(향후 30년 더 수의계약 연장) 등이다.
 
▲민자 유치 협약 적절성 (“자기 자본 투자 안한 업자에게 20년 무상 사용권 줬다”)

 1980년 광주시는 민자 유치로 민방위 대피시설과 상가를 겸하는 ‘충금지하도상가’를 준공한다. 당시 광주시가 유치한 민간자본은 중견기업 국제종합건설(주)이었다. 국제건설은 (주)광주지하상가와 공동투자자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상인회측 진정서에 따르면 (주)광주지하상가는 사업 직전인 1979년 4월 자본금 2000만 원으로 설립됐다. 이후 1980년 2월, 광주시는 국제종합건설(주)과 신설 (주)광주지하상가를 공동 파트너로 하는 ‘지하도(상가겸용)시설공사비 투자 협약서’를 체결, 사업이 본격화됐다.

 충금지하도상가상인회는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준공 후 국제건설이 투자 포기서를 제출하고, 광주시가 이를 수용하면서 보증금 반환 책임을 자본금 2000만 원짜리 신설회사가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상인회는 “국제건설이 ‘몸통’, (주)광주지하상가가 ‘깃털’”이라고 주장한다. “국제건설이 조기에 투자금을 회수한 뒤 빠지고, 사후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들러리’를 세웠다”는 주장이다. 지하도공사엔 당시 돈으로 30억여원이 투입됐는데, “민간자본은 자기 돈을 한푼도 쓰지 않았다”는 게 상인회측 주장의 논거다.

당시 광주시가 준 보조금 4000만 원에, 상인들이 낸 임차보증금 32억8000만 원 전액을 공사비로 해 준공했다는 것이다. 상인들에 따르면, 당시 130여개 점포에서 평당 1800만 원 상당의 보증금을 내 총액이 32억 원에 달했다.

 상인들 주장대로라면 자기 돈은 한푼도 쓰지 않고 공사를 끝낸 민간 자본에게 광주시는 20년 동안 무상사용권을 제공했다. 민자유치 협약에 따른 것인데, 1980년 준공후 시설은 기부채납돼 광주시 재산이 됐고, 대신 업자에겐 20년 무상 수익권이 보장됐다. 수익권은 자기 돈을 투자한 사업자에게 자금을 회수할 시간을 반대급부로 보장한 개념인데, 이 경우 사업자는 투자없이 특혜까지 보장받았다는 게 상인들 주장이다.

나중에 상인들에게 반환해야 할 보증금 전체를 공사비로 쓰게 놔뒀다는 점에 대해서도 상인들은 “광주시의 관리 부실”이라고 지적한다.
 
▲시공사 국제건설 투자 포기 승인 논란(“임차보증금 반환 책임자 실종”)

 더 큰 문제는 시공사 중 핵심인 국제건설의 투자 포기를 광주시가 승인했다는 점이다. 충금지하도상가(상가겸용) 준공후인 1980년 공동투자자의 주축인 국제건설이 투자포기서를 제출했는데, 광주시가 이를 승인해줬다.

이로 인해 ‘지하도(상가겸용)시설 공사비 투자협약서’ 및 ‘관리지침’에 명기된 모든 의무가 ‘들러리’ 격인 (주)광주지하상가로 승계된다. 투자자의 의무 중 가장 핵심인 임대보증금 반환 책임도 물론 포함됐다.

진정서에선 이 대목을 “이로 인해 몸통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고 깃털만 남아” “광주시의 무능한 행정은 관리감독하지 않고 방관 승인하고 좌시했다”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상인들은 ‘몸통’인 국제종합건설이 실제 공사비 30억 원보다 더 많은 32억 원(광주시 보조금+임대 보증금 포함)을 회수한 뒤 빠지고, 상가운영관리권과 임대보증금 반환 책임을 ‘깃털’에게 떠넘기는 이중의 특혜를 누렸다고 지적한다.

상인들이 ‘깃털’로 지목한 (주)광주지하상가는 광주시가 지원한 사업보조금(4000만 원)보다 작은 자본금 2000만 원 짜리 회사에 불과했다. 민자유치의 본질이 왜곡된 이같은 사태에도 불구하고 광주시의 관리감독은 없었다는 게 상인들의 성토다.

충금지하상가 입구.

▲보증금 적립급 계산 오류(“20년간 24% 금리가 가능한가?”)

 임대보증금 반환을 위한 사업자와 광주시의 조치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80년 8월, 광주시는 사업자에게 ‘도로점용 무상사용 허가’를 내주면서 임대보증금 반환 목적의 예치를 지시했다.

시금고인 광주은행 경양로지점까지 명시한 광주시는 ‘20년간 정기예금 증명서’를 요구했다. 이 때 사업자는 5000만 원을 예금하고, 이를 ‘20년간 연 24% 복리’로 추산한 금액을 잔액 증명해 광주시에 제출했다. ‘5000만 원이 20년 뒤엔 32억 원이 된다’는 계산이었는데, 광주시는 이를 증명서로 받고 점용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사업자가 제시한 예치증명서는 ‘20년 24% 복리’ 고정이 아니었다. 3년마다 갱신 연장, 20년 변동금리였던 것. 광주시는 이같은 사정을 따져보지 않고 승인해줘 임차보증금 미반환 사태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게 상인들 주장이다.

 “20년 년 24% 고정금리가 세계 어느 나라에 있나“ 3년 만기 24% 복리, 20년 재연장 예치 적립은 변동금리라 언제든 이자율이 변하는게 당연한데, 이를 점용허가 조건으로 받아 승인한 무능한 행정.” 진정서 중 한 대목이다.
 
▲상인회 제시 해법의 타당성(향후 30년 더 수의계약 연장)

 여러가지 문제 제기가 이어지던 1986년, 광주시 중재로 상인들이 지하상가 관리에 참여하게 됐다. 이후 1987년 (주)광주지하상가 대표까지 사퇴하면서 관리소장이 총괄 운영하는 구조로 현재까지 운영돼 왔다.

준공 후 20년이 된 2000년, 민간업자에 대한 사용수익권이 종료되면서 관리권이 광주시로 넘어왔다. 이때 광주시와 상인들은 ‘임대보증금 반환 잠정 연기-임차인들에 대한 재계약 우선권’에 합의해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던 차 광주시는 올해 충금지하상가 공개 입찰을 들고 나왔다. “최근 대전에서 지하상가 수의계약이 공유재산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감사에서 지적됐다”면서 “충금지하도상가 역시 수의계약을 맺어왔지만, 이는 현행법상 맞지 않고 다른 공유재산 계약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충금지하상가 건설공사 현장 모습(1971년).<사진출처=광주시 시청각자료실>

 상인들은 “미반환 임대보증금 반환”을 주장하지만, 본심은 “수의계약 연장”에 있다. 진정서 마지막 부분 ‘충금지하도상가 임차인의 미반환보증금에 대한 제안’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2048년 12월까지 수의계약 연장”을 제시한 뒤,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임차인들은 미반환 보증금 전액을 포기하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다.

올해 6월15일 열린 상인들 모임에서 이같은 안이 구체화됐고, 현재 영업인 88명(점포) 중 2명(점포)을 제외한 86명이 동의해 포기서를 작성했다.

 문제는 광주시가 이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느냐“ 여부다. 올해 공개입찰을 천명한 계기가 된 ‘감사 지적’과 ‘형평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인들 요구가 수용되면 1980년 이후 총 70년간 영업권을 보장하게 되는 셈으로, 이는 사실상 소유권 인정과 마찬가지가 된다. 제도적인 문제 외에 사회적 합의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같은 사태가 광주시의 부실 행정에서 비롯됐다는 지적 역시 피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상인들 주장을 마냥 외면하기도 어렵다는 게 문제다.

곤경에 처한 광주시는 일단 상인들 진정서를 검토중인 권익위 처분에 기대는 모양새다. 사실상 권익위가 제시된 처분이 해법이 될 가능성이 큰 셈인데, 그 전까지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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