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보라는 격려와 위로
가타야마 켄 글.그림 황진희 옮김 (나는별 : 2018)

 가르치는 일이든 키우는 일이든, 누군가와 혹은 무엇과 관계를 맺는 일은 고정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싶다. 다 알겠는데 어느새 새로운 관점으로 다른 모양으로 상대와 만나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울때는 더욱 그렇다.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심지어 아이가 성인이 된 다음에도, 자꾸 묻고 안내를 하고 ‘이러면 좋겠다’ 라며 방향을 제시하곤 한다.

 아이는 자기의 맘에 들지 않고 생각이 달라도 대개 ‘알았다’고 한다. 그러면 부모인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또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고 아이에게 계속 뭔가를 말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가 같은 생각을 하거나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 간극을 발견하면 배신감을 느끼고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헬리콥터맘’이니 하는 신조어도 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먼저 인생을 살았다고 정답을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말과 안내와 정보 덕분에 길을 찾지 못하는 게 요즘 우리 아이들의 처지라는 생각이 든다.


 가타야카 켄의 그림책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단다’는 이런 우리에게 가만히 서 있어보라고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된다는 격려와 위로다. 아이에게 맘껏 놀 수 있는 나무가 되어주면 그만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그렇듯, 그저 그 곳에 있으면서 터를 마련해 줄 뿐이다.

 공원에 놀러 나간 아이는 함께 간 아빠에게 ‘나무가 되어 달라’고 한다. 곧 아빠는 나무가 되고 아이는 나무위로 올라가 놀고 싶어 한다. 만만치 않은 ‘나무오르기’여서 힘겨운 아이는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하지만, 나무가 된 아빠는 ‘말이 없다’.

 한 장 한 장 그림책을 넘길 때 마다 아이가 경험하는 여러 일들이 벌어지는데, 아이는 그것에 대해 아빠-나무가 된 아빠에게 이런 저런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빠-나무가 된 아빠는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단다’며 말이 없다.

 나무로 변한 아빠의 얼굴은 그저 아이를 지켜보며 미소 지을 뿐이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가타야카 켄의 순수한 그림은 이 이야기를 더 설득력 있게 해 준다. 어떤 인위적인 것 없이 아이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놀다가 감동했다가 놀랐다가 힘들어 했다가 이내 익숙해 한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나무에서 내려오고 그새 나무는 아빠가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도 아빠는 아이가 신나서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뒤따라 갈 뿐이다. 그림에서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아빠는 나무가 되었을 때처럼 빙긋이 웃고 있을 것 같다.

 간혹 설명은 없고 소설 같은 이야기 전개도 없는 그림책을 만나게 되면, 우린 단순하게 ‘아이들 보는 책이라 그렇군’ 이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책을 접하고도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의 맘도 아빠의 맘도 그 사이의 살랑거리는 따뜻함도 결코 단순하지 않다.

 드러나진 않지만 깊은 사랑과 고민, 신뢰가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관계가 아닐까. 넘치도록 많은 무언가 속에서 우리 모두는 나무로 변해야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모든 것을 하는 것 보다 더 클 때도 있다.

 
 그대가 누구를 가르칠 때,
 그 일을 왜 시작했는지 기억할 수 있는가?
 장애물들 앞에서 부드러울 수 있는가?
 영문 모를 어둠 속에서 마음의 눈으로 밝게 볼 수 있는가?
 남을 잡아끌지 않으면서 친절하게 이끌어 줄 수 있는가?
 길을 뻔히 보면서도 남이 스스로 찾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가?
 
 낳아서 기르는 방식으로 가르치기를 배워라
 손에 넣어 잡지 않고 가르치기를 배워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도와주기를 배워라.
 
 다스리려 하지 않고서 가르치기, 한 번 해볼 만한 일이다.
 
 파멜라 메츠 풀어 씀,‘배움의 도’20쪽, 이현주 옮김 : 민들레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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