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에 갇힌 이들 위한 진혼곡
중국집 사장, 구두닦이 등
시민들 무고한 희생 연출

▲ 연극 ‘그들의 새벽’. <극단 푸른연극마을 제공>
 2018년 11월16일, 극단 ‘푸른연극마을’에서 하는 연극 ‘그들의 새벽’을 보기 위해서 ‘빛고을시민문화관’을 찾았다. ‘푸른연극마을’은 자체 극장인 ‘씨어터 연바람’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연극은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올렸다.

‘연바람’은 소극장이라 아마도 무대 때문에 공연장을 바꾼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예상대로 ‘그들의 새벽’은 무대를 넓게 쓰고 있었다. 무대 왼쪽에 중국집이 있고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서는 다방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복층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소극장에서는 나올 수 없는 무대 연출이다. 오른쪽 맨 끝부분에는 노트북이 놓인 책상과 의자가 무대 앞쪽으로 나와 있었다.

일견 소박해보이고 옛 시절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전체적인 무대와는 이질적인 공간이었고 시간도 다를 것이라는 짐작이 들게 하는 장치였다.

 광주 사람이다 보니 ‘그들의 새벽’이라는 연극 제목은 1980년 5월을 떠올리게 했는데, 역시나 5·18에 관한 극이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제주 사람이었다면 4·3을 떠올렸을 것 같고, 여수나 순천 사람이었다면 여순항쟁을 떠올렸을 것 같다.

사실 ‘그들의 새벽’은 5·18이 배경인 문순태의 장편 소설과 제목이 같다. 정하라는 인물이 80년 5월 항쟁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에 대해 한 편의 연극대본을 써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연극의 큰 틀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트라우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간 그들은 기본적으로 문순태의 소설 ‘그들의 새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티브가 되었다. 또 정하라는 인물과 정하의 어머니는 심상대의 단편 ‘망월’에 나오는 인물들에서 끌어왔다.

심상대의 소설에서는 5월 항쟁에서 큰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주요 인물이다. 둘째 아들은 잠깐만 언급이 되는데 연극에서는 이 둘째 아들을 무대로 불러냈다.

 무대의 오른쪽 끝을 차지한 책상과 그 책상 위의 노트북은 바로 이 둘째 아들, 다행히도 80년 5월에 살아남은 정하가 바로 그 80년 5월 새벽에 아직 젊은 나이로 죽은 형과 그 형을 잊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 시달리면서 글을 쓰는 현재의 시공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하와 그 어머니를 이해해보려고 하고 포용하려고 했으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전부인 김미정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 연극의 기본 틀은 살아남은 자들의 트라우마였다.

거기에 문순태의 소설에 나오는 중국집 사장, 철가방, 구두닦이, 다방 아가씨, 고아와 일반 소시민들의 무고한 희생이 연출된다. 정하가 쓰는 대본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 형태인 것이다.

연극 ‘그들의 새벽’. <극단 푸른연극마을 제공>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중에 우리나라 말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Ich, der Uberlebende―나, 살아남은 자)’이라고 번역된 작품이 있다.

짧은 시인데, 전문은 이렇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베르톨트 브레히트, 김광규 옮김,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마당, 1985, 117쪽.)

 이 연극에서 정하의 트라우마는 단순히 슬픔을 넘어선다. 정하의 어머니가 큰아들 정수의 죽음 앞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것처럼 정하도 평범한 삶을 이어가기가 너무나 힘들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리고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과 살아남았지만 그 삶이 부채감으로 가득찬 이들. 힘겨운 삶이지만 나름 꿈과 희망을 갖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려고 했던 1980년의 소박하고 해맑은 그들의 죽음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그저 견디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는 이들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이 극에 달하고 부채감에 짓눌려 평범한 삶은 꿈도 못 꾸는 이들의 아픔이 교차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연극은 80년 5월 그 새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라고.
 
▲역사적 진실과 이를 형상화하는 예술 작품

 ‘그들의 새벽’이라는 5·18에 관한 장편소설을 쓴 문순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실 드러내기와 문학적 형상화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푸른연극마을’의 연극 ‘그들의 새벽’을 보고 나오면서 나도 그 부분을 생각했다. 5·18이라는 무겁고 거대한 역사적 진실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모든 예술작업들.

특히 광주에서는 5·18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5·18기념재단은 지난 2005년부터 5·18문학상을 제정해 오월문학을 발전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고, 극단들은 무대 작업을 하고 있으며, 5·18정신을 잇는 음악제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들.

연극 ‘그들의 새벽’. <극단 푸른연극마을 제공>

 광주 사람이라서 제목만 보고 80년 5월을 연상한 것처럼, 광주 사람이기에 무조건 반사가 되는 지점이 있다. 보면 그저 울컥하고 그저 뭉클해진다.

이제는 그것을 한 겹 벗어던지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고, 관점을 달리하고, 좀 더 신선한 구성과 내용을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조금은 냉정한 거리두기와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4월엔 극단 ‘사람 사이’의 ‘바퀴자국’을, 5월엔 극단 ‘토박이’의 ‘오! 금남 식당’을, 8월에는 ‘어머니의 노래’를 그리고 이제 한 해가 끝나가는 11월에 극단 ‘푸른연극마을’의 ‘그들의 새벽’까지 5·18관련 연극 무대 4편을 보고 난 나의 소감이다.

물론 얼마나 어려울지 안다. 그래도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의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는 형상화 작업에 좀 더 다른 방식을 적용해보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그것이 살아남은 슬픔을 느끼는 자들의 소임이 아닐까 한다.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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