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석기인이 새긴
하늘 속 물과 파란 하늘

▲ 〈사진39-40〉 일본 신석기 조몬토기. 〈사진41〉 조몬 후기 구름여신(기원전 1000년). ‘조몬(줄승·무늬문)토기’는 말 그대로 줄(끈, 새끼줄) 같은 덧띠무늬가 있는 토기를 말하지만, 지금은 일본 ‘신석기 토기’를 말할 때 두루 쓴다. 이 토기는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다. 1877년 동경 오오모리 조개무지에서 처음 나왔는데, 일본 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토기의 무늬를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39〉는 조몬(신석기) 중기 기원전
▲아리엘 골란과 일본의 신석기 조몬토기
 
 아리엘 골란은 신석기 무늬를 볼 때 관찰자 시점으로 본다. 그래서 신석기인이 ‘3차원 입체(실제 대상)’를 ‘1차원 평면’ 그릇에 어떻게 그렸는지, 즉 평면화의 특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고대 문양을 ‘상징(symbol, 기호)’으로 보는 것, 그것을 모두 ‘숭배’나 ‘종교’로 연결 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쩌면 그의 문제틀은 일본의 신석기 조몬토기를 연구할 때 요긴할 것이다. 일본의 신석기인들에게는 ‘하늘 속 천문(天門)’, 즉 비구름이 나오는 하늘 속 구멍 세계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 속에서는 구름의 ‘기원’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들이 중국이나 한반도의 신석기인과 달리 ‘구름신’ 또는 ‘차광기토우’ 같은 ‘구름여신’(<사진41>)을 따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다 야요이 시대 한반도에서 넘어온 청동기인에게서 천문(天門)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난 뒤부터는 신석기 때 상상했던 구름여신이나, 구름을 3차원 입체로 빚었던 죠몽토기(<사진39>)를 더 이상 굽지 않는다. 이것은 암사동 신석기인의 세계관이 그만큼 딴딴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의 조몬인들과 달리 암사동 신석기인의 세계관에는 ‘신’이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암사동 신석기인은 지극히 리얼리스트였다.
 나는 세계 신석기 무늬를 아리엘 골란처럼 추상적 상징이나 기하학적 기호로 보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아직’ 그 무늬의 정체를 알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신석기 무늬는 어떤 ‘구상’ 또는 ‘실제 대상’에서 왔고, 그러기에 신석기인에게 그 무늬는 ‘상징’이나 ‘추상’이 아니라 언제나 ‘현실의 구상’이고 실제였을 것으로 본다.

〈사진42〉 빗살무늬토기. 전북 진안. 높이 12.3cm. 국립중앙박물관. 〈사진43-45〉 서울 암사동. 국립중앙박물관. 〈사진46〉 인천 옹진. 국립중앙박물관. 〈사진47〉 부산 동삼동. 국립중앙박물관.
 
▲한반도 신석기인이 그린 하늘 속 물(水)
 
 빗살무늬토기 무늬 가운데 ‘하늘 속 물(水)’은 <사진45> 왼쪽 그릇처럼 짧은 빗금을 그은 것이 가장 많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런 무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42-44, 46-47>을 보면 하늘 속 물을 갖가지 모양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43> 점점이 무늬를 낱낱이 자세히 살펴보면 끝이 뭉툭한 막대기 두 개를 묶어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44>와 <사진45> 오른쪽 그릇 무늬를 말할 때 흔히 ‘손톱’으로 무늬(爪紋 손톱조·무늬문)를 찍었다고 하는데, 손톱으로는 이런 무늬가 나오기 힘들다. 조개껍데기 뾰족한 부분을 뭉툭하게 갈아 찍었을 것이다. 암사동에서 나온 그릇 조각에는 <사진43>처럼 섬세하게 점을 찍은 것이 많다. 그에 견주어 부산 동삼동 것은 선이 굵고 깊고 선명하다. 암사동이 여성적이라면 동삼동은 남성적이다. 또 암사동이 한 패턴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다면 동삼동은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이고 경쾌하다. <사진47>처럼 동그란 막대기 끝을 지그시 눌러 하늘 속 눈(雪) 또는 물(水)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것은 속이 빈 대롱을 찍어 동그라미를 새겼다. 가장 놀라운 것은 <사진46>이다. 인천 옹진에서 나온 그릇 조각인데, 현대 그릇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도장 무늬를 찍었다. 이런 도장 무늬는 조선 분청자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사진48-51〉 서울 강동구 암사동. 국립중앙박물관. 〈사진52〉 삼국시대 제기 아가리 무늬 그림(김찬곤).

▲경계, 파란 하늘
 
 <사진48-51>은 하늘 속과 경계를 짓는 ‘파란 하늘’(우리가 눈으로 보는 하늘, ‘성경’의 ‘창세기 1장 6절’에서는 ‘궁창·하늘’이라 한다) 무늬다. 이 무늬 아래 구름무늬가 있거나 빗줄기 무늬가 있다. 이 무늬는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고 없을 때도 많다(<사진30, 31> 참조). <사진48-50>을 보면 물결무늬를 아주 짧은 빗금으로 찍었다. <사진51>은 점을 점점이 찍었다. 파란 하늘을 이렇게 물결무늬로 새긴 까닭은 하늘 속에 물이 방방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무늬는 <사진52>처럼 삼국시대 제기에서 많이 볼 수 있다(아래 <사진53-54> 참조). 이때 제기의 무늬는 하늘(경계)을 뜻한다기보다는 그릇에 물이 찼으면, 다시 말해 비가 충분히 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하겠다. 아마 기우제 때 쓴 제기일 것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초빙교수>

〈사진53〉 방울잔, 삼국시대, 높이 16cm,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굽다리 바로 위 삼각형 구멍이 뚫린 부분이 방울이다. 이 구멍은 ‘삼각형 구름’이다. 방울잔은 신석기인의 ‘하늘 속 천문(天門)’ 세계관을 입체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울 위쪽 물 잔은 ‘하늘 속’이고, 그 하늘 속에 난 통로 천문(방울)에서 ‘소리’를 내며 삼각 구름이 네모(굽다리 네모 구멍)진 세상으로 나온다는 것을 입체로 빚은 것이다. 천문(天門)과 소리(音, 음악)의 ‘기원’ 문제는 이 시리즈 말미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사진54〉 뿔잔 받침그릇, 가야,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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