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68> 신석기인이 고개를 쳐들고 본 하늘 세계를 그린 그림. 〈사진69〉 평안남도 맹산에서 나온 청동거울 거푸집 유리건판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나온 지 벌써 94년째 되어간다. 그 오랫동안 우리는 빗살무늬의 뜻을 풀지 못했다. 8000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생선뼈무늬’라 했다. 본보는 수 차례에 걸친 기획을 통해 세계 신석기 그릇 문화사 속에서 한반도 신석기 빗살무늬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한다. 한반도 빗살무늬의 비밀을 푸는 일은 한국·중국·일본·베트남 신석기인의 세계관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이고, 그와 더불어 세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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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신석기인의 천문(天門) 세계관은 중국(여와와 홍수 이야기, 신석기 그릇, 전한의 막새기와와 청동거울), 유대인(《성경》 <창세기> 7장에 나오는 ‘구멍·창·창문(들)’), 박트리아(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북부), 덴마크 청동기 제기, 유럽 이베리아반도(스페인, 포르투갈, 안도라, 지브롤터)의 신석기 이베리아인, 고대 이탈리아 신석기 시대의 에트루리아인, 그리스 스키로스, 북미의 애리조나·아칸소·미시간과 남미의 페루 신석기 신화·그릇·석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성경》 <창세기> 7장에 나와 있는 천문을 들어본다.
 
 이레가 지나자 장대비가 쏟아져 홍수가 났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2월 17일, 바로 그날 땅 밑에 있는 큰 물줄기가 모두 터지고 하늘은 구멍이 뚫렸다. 그래서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장대비가 쏟아졌다.
-《공동번역 성서》(1977) <창세기> 7장 10-12절
 
 위 구절에 나오는 ‘구멍’은 하늘 속 통로, 즉 천문(天門) ‘하늘 구멍’(8장 2절)이다. 번역을 누가 했느냐에 따라 이 구멍(천문)을 달리 옮기기도 한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낸 《관주 성경전서》(개역 한글판, 1995)에는 ‘구멍’을 ‘하늘의 창’으로, ‘구멍이 뚫렸다’는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로 옮겼다. ‘하늘의 창들’처럼 복수접미사 ‘들’을 붙인 까닭은 이러한 창(구멍, 천문)이 하늘에 많다는 말이다. 동서남북 그리고 한 중앙에 난 창(천문)이 아닐까 싶다.

 중국 한족의 창세신 이야기 가운데 <하늘을 고친 여와> 설화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천문(구멍)과 관련된 대목을 아래에 들어 본다.
 
 부주산(不周山)은 원래 은하수가 있는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었다. 부주산이 넘어지자 하늘도 무너져 구멍이 났다. 이 구멍으로 은하수에 있던 물이 한꺼번에 빗줄기로 변해 쏟아져 세상을 삼켜버렸다. (……) 이때 중원에 회이(淮夷)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 마을의 지도자는 복희씨였고 여와는 그의 아내였다. (……) 여와는 하늘이 무너져 난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하늘 속 물이 모두 땅으로 쏟아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여와는 강, 호수, 바다에서 수많은 오색 돌을 건져 와 그 돌을 아흐레 밤낮으로 뜨거운 불에 걸쭉하게 녹였다. 여와는 이것으로 하늘에 난 구멍을 하나씩 메웠다. 그러자 큰비가 멎었다. 해가 다시 떠오르고 하늘에 오색 노을이 졌다. 이 영롱한 노을빛은 여와가 오색 돌을 녹여 하늘 구멍을 막았기 때문이다.
-《중국민족의 창세신 이야기》(서유원 엮음, 아세아문화사, 2002), 36-37쪽
 
 아쉽게도 우리나라 신화나 옛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 한두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의 ‘여와와 홍수’ 이야기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중국의 ‘여와와 홍수’ 이야기는 한반도 빗살무늬에서 볼 수 있는 천문과 그릇에 일부러 뚫은 ‘구멍’을 해석하는 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준다.
 
▲‘삼각집선문’이란 무늬 이름
 
 한반도 신석기인에게 지금의 동서남북 같은 방위 개념이 있었을까? 나는 있었을 것으로 본다. 해는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진다. 이로써 동과 서의 개념이 섰을 것이고, 그것을 가로지는 남과 북, 그리고 한 중앙 개념이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사철 개념도 있었을 것이다. (신석기 세계관을 연구하기 전에는, 한반도 신석기인에게는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이렇게 두 계절이 있었을 것이고, 봄은 그저 ‘여름이 오기 전(before summer)’이고, 가을은 ‘겨울이 오기 전(before winter)’이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이러한 확신은 한반도 신석기인이 빗살무늬토기에 새긴 하늘과 하늘 속 물 층, 그리고 통로(천문)를 보면서 점점 굳어졌다.

 <사진69>는 평안남도 맹산에서 나온 청동거울 거푸집 유리건판 사진이다. 실제 유물도 있지만 무늬를 볼 때는 유리건판이 더 뚜렷해 이 사진을 가져왔다. 이 거푸집에는 한반도 다뉴세문경(고리가 둘 이상 달린 고운무늬 거울)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코드가 담겨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 미술·사학계에서는 <사진69>의 무늬를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무늬 또한 빗살무늬토기의 무늬와 마찬가지로 기하학적 추상무늬 또는 삼각집선문이라 하고 있다. ‘기하학적 추상무늬’란 말은 한마디로 ‘모르겠다’는 말이고, ‘삼각집선문(三角集線紋)’은 삼각형 안에 선이 모여(集 모일집) 있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삼각집선문’이란 무늬 이름은 뭔가 있어 보이고 되게 전문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무늬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각형 안에 선이 모여 있다’ 해서 ‘삼각집선문’이라 한다는 말은 고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해 ‘학자’가 할 말은 아닌 것이다.

 <사진69> 청동거울 거푸집은 오른쪽 아래가 떨어져 나가 완전한 형태를 알 수 없지만 나선형 동심원이 하나 더 있었을 것이다. 이 동심원은 <사진68>의 동서남북 천문을 새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천문(통로)에서 비(雨)를 품은 ‘삼각형 구름’(삼각형 안의 빗금은 비를 뜻한다)이 나오는 것이다. (삼각형 구름과 타원형 구름에 대해서는 앞 글 ‘한반도 신석기인이 새긴 하늘 속 물과 파란 하늘’,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무늬 종류는 다섯 가지’를 참조하기 바람)

<사진70> 미국 아칸소 주 인디언 신석기 그릇. <사진71> 미국 애리조나 주 인디언의 제사 바구니(1910년).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새긴 천문과 삼각형 구름
 
 <사진70>은 미국 아칸소 주 인디언의 신석기 그릇인데, 그릇 몸통에 나선형 회오리바람이 일고, 그 바람 줄기에 삼각형 구름이 붙어 있다. 이것은 우리 한반도 청동기인이 새긴 청동거울 <사진69>의 무늬와 본질적으로 같다. 이 천문 또한 그릇 몸통 네 군데에 나 있다. 동서남북 하늘 속 통로(천문)를 새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71>은 미국 애리조나 주 인디언이 풀대로 짠 바구니인데, 바구니 한 가운데에 천문이 있고, 이 천문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삼각형 구름이 나오고 있다. 이 회오리 삼각형 구름 사이사이에 네 발 달린 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를 표현했다. 이것은 천문에서 나온 비구름 속에서 이 세상 만물이 생겨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천문화생(天門化生)과 우운화생(雨雲化生)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이집트 신석기인과 스페인 철기시대 이베리아인이 새긴 그릇에서도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천문화생과 우운화생의 세계관은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는데, 이것은 다음 글에서 아주 자세히 밝힌 것이다.

<사진72-73> 스페인 철기시대 이베리아인이 빚은 채색토기. 기원전 5세기. 스페인 발렌시아 선사시대박물관..
 
▲스페인 신석기 이베리아인들의 세계관
 
 이베리아반도 스페인 철기시대 이베리아인들의 세계관은 한반도 신석기인의 세계관과 아주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우리 한반도 신석기인처럼 그릇에 하늘 속과 경계(파란 하늘)를 새기고, 그 아래에 반·타원형 또는 삼각형 구름을, 그리고 그 구름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빗살무늬로 새겼다. <사진72>에서 가운데 동심원(①)은 천문이고, 거기에서 반원형(②) 구름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천문 동심원을 그리고 네 군데(四方을 뜻한다)에 반원형 구름을 붙이고 그 사이에 빗줄기(③)를 그려 비와 구름의 ‘기원’이 천문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한 가지 도상을 두 번 그린 것은 ‘강조’의 의미다. 이런 반복과 강조는 고대에도 현대에도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반원형 구름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무지개무늬’라 하고, 신석기학회에서는 ‘중호문(重弧文 겹칠중·활호·무늬문)’이라 한다. 활 대 무늬가 겹쳐(重)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무늬 이름은 무늬의 형태(겉모습)만 알려줄 뿐 이 무늬가 정작 무엇을 새긴 것인지는 밝혀주지 못한다. 나는 반원·타원형 무늬를 ‘뭉게구름(적운, 층적운)’으로 본다. 이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는 암사동 신석기인뿐만 세계 신석기 그릇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구름무늬이기도 하다.

 <사진73>의 무늬는 우리 고구려 옛무덤 벽화에 있는 무늬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릇 한 가운데에 천문을 그렸는데, 그 안에 선풍기 팬이 돌아가는 것처럼 지그재그 실선을 그려 넣었다. 천문 속 팬이 돌아가면서 삼각형 구름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삼각형 구름 끝에 동그랗게 말린 덩굴손을 그려 삼각형 비구름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표현했다. 이 또한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생명 무늬이고 구름무늬이다. 이것은 이 세상 만물이 천문과 구름에서 태어난다는 천문화생(天門化生)과 우운화생(雨雲化生)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그릇 맨 가에 둘러진 구름무늬는 우리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시작된 한국의 구름무늬와 아주 똑같다. 앞으로도 스페인 이베리아인들이 그릇에 그린 무늬를 자주 보기로 들 것이며 우리 한반도 사람들의 세계관과 견줄 것이다.

<사진74> 두 귀 항아리(雙耳壺). 그리스 암포라처럼 목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제사 그릇이다. 중국 신강 위구르자치구 호탄 요트칸 유적. 높이 14.5cm. 4∼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아가리 안쪽에 천문을 수없이 찍어 놓았다. 이것은 현대 디자인에서도 볼 수 있는 ‘강조’의 의미다.
 
▲고구려 신라 백제 사람들의 세계관, 천문(天門)
 
 국립중앙박물관은 <사진74>의 천문(동그라미 속에 점을 찍은 것) 무늬를 ‘구슬무늬’라 하고, “도장과 같은 형태로 각인한 후 그 내부 중심에 뾰족한 것으로 점을” 찍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왼쪽 노란 동그라미 속 천문을 보면 도장을 찍은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일일이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학계에서는 이 무늬의 정체를 아직 해석하지 못하고 그저 ‘원권문(圓圈文 둥글원·우리권·무늬문)’이라 한다. 말 그대로 ‘둥근 원 안에 점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늬 해석은 앞에서 말한 ‘삼각집선문’처럼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동그라미 안에 점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문양 해석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천문 무늬는 불교의 범종과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고, 신라와 백제 토기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신라 초기 토기와 통일신라 시대 제기에서는 이 무늬의 정체를 모르면 신라 사람들의 세계관을 해석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무늬를 그저 원권문, 점원문, 고리점무늬라 하고 있다. 또 동경, 막새기와, 범종에 있는 이 무늬를 ‘젖꼭지(乳·乳釘) 무늬’, ‘귀목(鬼目·귀신 눈알) 무늬’라고까지 한다. 어떻게 젖꼭지 무늬를 범종에 새길 수 있겠고, 절 대웅전 지붕에 귀신 눈깔 기와를 얹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상식으로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된다.
김찬곤<광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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