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시극·사투리 구연 봉사 나정임 씨

▲ 광주 지역방송 라디오에 출연 중인 나정임 씨.
 아아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이렇게 말본새가 바뀐다.

 님은 모지락시게 떠나갔지라… 사랑하는 나으 님은 기연치 가불었지라…

 시낭송과 시극을 하는 나정임 씨를 거치면 시어는 사투리로 바뀌어 새생명을 얻는다.

 장독대는 장깡으로, 열쇠는 쇳대, 조기는 조구, 화장실은 칙간, 가게는 점방, 고양이는 개댁이가 된다.

 전라도닷컴 주최 2015 아름다운 전라도말자랑대회의 ‘영판 오진상’의 주인공이기도 한, ‘사투리 전문가라 할만 한’ 72세 나정임씨 이야기다.

 나 씨는 지난달 27일 제1회 세종애민문화대상에서 문화예술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세종대왕 즉위 600년을 맞아 진행된 전국적 시상식이었다. 이렇게 받은 상이 벌써 23개에 달한다. 주로 시낭송대회, 사투리 구연대회, 봉사활동 등으로 탄 상들이다.

 나 씨의 주특기는 사투리 구연이다. 맛깔나는 사투리와 말솜씨로 청중들을 휘어잡는 것.
 
▲“내 존재감 찾자” 자원봉사 길 나서
 
 현재는 ‘시극’ 활동을 신나게 하고 있다. 시극은 시로 하는 연극을 말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지역행사들을 다니며 공연봉사를 하고 있다.

 ‘팔방미인’으로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나 씨는 “지금이 제일 내 인생기에서 청춘이자 황금기”라면서 “오래된 고목나무에 느닷없이 꽃이 활짝 핀 느낌. 저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시작은 봉사활동이었다. 교사 남편을 둔 나 씨는 40대 중반이 되도록 전업주부로만 살았다. 어느날 나 씨는 “이 사회에서 내 이름이 없구나”를 느꼈다. 당연하게 ○○엄마, ○○사모님이라고 불렸다고.

 그러다 문득 “내 이름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본인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고부터였다. 자녀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집에서 적적하게 세월을 보낼 때였다. 그때가 93년. 한참 대한민국에서 ‘자원봉사’ 활동이 시작될 즈음이다. 광주에서도 여기저기 자원봉사자들을 새로 모집할 시기다. “이때다” 싶었다고.

실버문화페스티벌, 전라도말 자랑대회 등 23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나정임 씨.

 전대병원의 접수 안내부터 광주교도소 무기수 봉사, 소외계층 김치담그기, 장애인복지관 봉사까지, 안해본 게 없다. 그는 그렇게 20여 년을 자원봉사 인생을 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는 5·18묘지에서의 봉사입니다. 당시 문화해설사란 단어가 없었는데, 제가 딱 그 역할을 했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알리려고 노력했죠. 보람은?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2014년 위기가 찾아왔다. 나이 들면 으레 그렇듯, 나 씨도 노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어깨 회전근개에 이상이 생겨 양쪽 어깨를 수술해야 했다. 문제가 생겨 재수술까지 했다. 더 이상 몸으로 뛰는 자원봉사를 할 수가 없었다.

 나 씨는 그때 “몸으로 할 수 없으면, 입으로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광주 서구문화원 구연동화, 시낭송반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했다. 신문읽기를 좋아하던 평소 취미 때문에 선택한 길이었다. 스포츠면 빼곤 매일 모든 신문을 섭렵했다고.
 
▲ 육체적 시련…입으로 하면 되지
 
 도시생활에선 잠시 잊고 살았던 사투리를 다시 찾은 것도 이 시기다. 25년 모신 시어머니와의 사연을 각색한 글과 공연을 만들었다. 수상 경력의 시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6년 문체부 실버문화페스티벌 ‘샤이니 스타를 찾아라’에서의 수상이다. 광주를 대표해 전국대회에 나가 당당히 전라도 사투리로 행복상을 수상했다.

실버문화페스티벌, 전라도말 자랑대회 등 23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나정임 씨.

 나정임 어르신은 지금 시낭송, 사투리 시낭송, 시극, 연극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특히 요사이는 광주시낭송협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극’에 전념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극화한 시극에서 나 씨는 조마리아 여사가 된다.

 “‘내 아들 중근아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민족의 분노를 세상에 알린 장한 일이다’ 하도 외워서 잊혀지질 않아요. 나라를 위해 자식을 항소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으라고 편지를 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떻겠어요?”

 윤동주 시극, 일본군 ‘위안부’ 시극 등을 진행하고 있는 나 씨는 “이것 또한 자원봉사”라고 했다. 공연을 통해 위안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에 힘을 얻고, 무대에 서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도 회복하고, 젊은이들과 소통도 한다고 했다.

 나 씨는 “남한테 베푸는 우리 부모님을 보고 베품의 즐거움을 느꼈다”면서 “남을 도와준다는 뿌듯함은 결국 내 자신을 위해 쏟았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나정임 어르신은 올해 3·1절 날, 평화의소녀상을 공개하는 서울 강동구청의 초청을 받아 일본군‘위안부’ 시극을 공연할 예정이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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