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하루만 모자라도 안돼, 교묘히 악용
1년단위 촉탁직 ‘독소조항’…수당도 피해

▲ 아파트 경비원 등 1년 단위 촉탁직 노동자들이 365일에서 하루 모자란 계약서 때문에 퇴직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광주드림 자료사진>
 70대 A씨는 광주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3년째 일하고 있다. 몇 년 전 공직에서 퇴직한 후 생계를 위해 시작한 경비원 일. 그런데 올해는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는다. 해가 바뀌고 날아든 급여명세서가 그의 마음을 착잡하게 하는 까닭이다.

 지난해 12월 A씨가 받은 급여명세서엔 ‘연차수당’이 빠졌다. 원래대로라면 80여 만 원 이상 연차수당을 받아야 했다. 그가 지난해 연차수당을 받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1년 중 단 하루 모자란 ‘364일짜리 근로계약서’ 때문이다. 연차수당은 1년 단위로 적용을 받는다.

 A씨의 근로계약서 상 근무시작일이 2017년 1월2일로 기재된 게 화근이었다. 보통 경비원은 2개 조로 격일제 근무를 해, 1월1일자로 계약해 근무하는 조와 1월 2일자로 계약해 근무하는 조로 나뉜다. 문제가 발생한 건 2일자 계약자들이다. A씨가 그런 사례인데, 당시만 해도 계약서 상 날짜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용역회사 변경으로 기존 계약이 종료되면서 2년차에 해당되는 연차수당은 증발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근로기준법 퇴직금 조항 ‘1년 근무’ 함정
 
 A씨와 한 아파트에 근무하는 B씨와 C씨의 경우엔 같은 이유로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B씨와 C씨의 근로계약서는 근무 시작일을 2018년 1월2일로 명시하고 1년 단위로 계약을 했다. 결국 이들은 365일 중 하루가 모자란 근로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B씨와 C씨는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올해 새 업체와 계약을 맺고 근무일도 0일에서 다시 시작했다.

 이처럼 1년에서 단 하루만 부족해도 퇴직금과 연차수당을 받지 못하는 사례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지만,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1년 단위로 근로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경비원 등 계약직 노동자들이 계속 피해를 보고 있다. 일각에선 용역업체가 하루라도 근무일이 부족하면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없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은 1년 이상 근무해야만 지급돼 하루라도 근무일이 부족하면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다. 연차수당 역시 1년 단위로 매달 연차가 적립되는 구조다. 그러나 이 규정은 노동자가 계약을 맺은 업체가 자주 변경되고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경비 직종에겐 대표적인 독소조항이 되고 있다.

 광주광역시노동센터 정미선 노무사는 “(A씨의) 근로계약서만 놓고 볼 때 근로기준법 상 365일이 채워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격일제 근무자라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업체의 의도적 편법계약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실제 판례 중 3월1일이 공휴일이라는 이유로 3월2일부터 근로계약을 맺어 2월 말일까지 근무한 경우 1년 근로를 인정받기도 했다”면서 “특히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엔 업체 변경 시 영업양도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악의적 편법 사용의 여지가 큰 만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도 강조했다.
 
▲“법 사각지대 방치, 누가 책임지나”

 광주비정규직지원센터 역시 “작년에도 똑같은 사례로 경비원이 상담을 의뢰해 왔고, 종종 비슷한 사례가 접수된다”면서 “법으로만 해결이 어렵다면 공론화를 통해 부당함을 알리고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개선의 시급함을 알렸다.

 제도 보완의 필요성은 용역업체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하루가 부족해 제대로 된 처우를 못 받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인건비 계약으로 운영되는 용역업체 입장에선 법대로 할수록 이익인데, 업체에게 도의적 책임을 기대할 수 있나. 애초 경비원을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아파트 입주자대표, 법의 사각지대를 그냥 두는 사회에는 책임이 없나”라고 반문했다.

 경비원 A씨는 해당 업체를 대상으로 계약서 상 2018년도 364일 근무에 대한 연차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진정을 광주지방노동청에 접수한 상태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