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주(寶珠)와 영기문(靈氣文)의 기원

▲ 〈사진75〉 기(?)의 갑골문. 〈사진76〉 기(?)의 금문. 〈사진77〉 《육서통》의 기(?). 중국 옛 한자를 보면 동그라미 속에 점을 찍은 글자가 자주 보인다. 이것을 보통 해(日)로 읽지만, 그렇게 읽으면 글자의 뜻을 엉뚱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해를 천문과 구별하기 위해 동그라미 위에 가로 선(一, 이 선은 경계(파란 하늘)를 뜻한다) 하나를 더 그려놓기도 한다. 육서통의 기(?)가 천문을 x축에서 본 것이라면 용(龍)의 갑골과
▲암사동 신석기인의 천문과 한자 기(?)

 암사동 신석기인이 ‘하늘 속’에 낸 통로는 구름이 나오는 하늘의 입(天口)이고(〈사진73〉 참조), 이 구멍은 동양의 기(氣) 사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기원을 알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기(氣)는 원래 기(?)에서 왔다. 기(?)의 갑골문(〈사진75〉)을 보면 일(一) 자 모양 선 석 줄이 층층이 있다. 새털구름을 본뜬 것이다. 새털구름은 권운(卷雲), 털구름이라 하는데 가장 높이 떠 있는 구름이다. 쌘비구름(적란운)의 꼭대기에서 떨어져 나온 구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금문(〈사진76〉)에서는 삼(三)과 구별하기 위해 맨 위, 맨 아래 선을 위아래로 구부린다. 육서통(〈사진77〉)을 보면 갑골·금문과는 아주 달라지는데, 구름이 천문(天門, 天口)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아주 뚜렷하게 표현했다. 이것은 〈사진72〉 백자 상감모란잎문 편병과 〈사진79〉 고구려 수막새 기와에서 볼 수 있는 천문과 같다.

〈사진78〉 중국 청나라 초 민제급이 편찬한 전각 글자 《육서통(六書通)》(1661)의 천(天) 자. 〈사진79〉 고구려 인동문 와당. 중국 길림성 집안. 지름 15.3cm. 경기도박물관. 〈사진80〉 분청사기 박지태극문 편병. 조선 15세기. 보물 제1456호. 높이 21.8cm. 호림박물관 경기도박물관·호림박물관

▲태극의 기원 천문

 그림 글자 갑골문은 결코 쉬운 글자가 아니다. 어떤 글자의 갑골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뒤 나온 금문, 전서, 육서통을 같이 봐야 한다. 나는 주로 금문과 육서통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특히 육서통은 어떤 한자의 처음과 끝을 뚜렷하게 보여줄 때가 많다. 그리고 글자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story)와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그 세계관은 중국과 한반도 신석기인이 상상했던 세계관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 눈여겨봐야 한다.

 〈사진78〉은 육서통의 천(天) 자 가운데 하나다. 가장 위 천문①은 옆(y축)에서 본 하늘과 천문이다. 이것은 우리 한반도 신석기인이 그릇에 새겼던 하늘·천문 무늬와 같다(〈사진73, 81〉 참조). 이 천문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이다(〈사진73〉. ‘삼각형 구름’에 대해서는 앞 글 〈한반도 신석기인이 새긴 ‘하늘 속 물’과 파란 하늘〉을 참조 바람). 천문②는 사람이 고개를 쳐들고(x축에서) 본 하늘 속 천문이다. 그 아래 구름①은 다른 구름과 모양이 좀 다른데, 이것은 운(雲)의 본 글자 운(云 구름운) 갑골문에서 온 것이다. 운(云)은 본래 ‘구름’을 뜻했으나 그 뜻이 없어지고 ‘말할 운’으로 쓰이자 나중에 그 위에 우(雨)를 더해 ‘구름’의 본뜻을 살린 글자가 운(雲)이다. 천문③은 〈사진77〉 육서통의 기(?)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모양은 조선의 분청자와 백자 편병, 민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물고기’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사진78〉의 육서통 천(天) 자는 〈사진79〉 편병과 그 모습이 비슷하기까지 하다.

 〈사진79〉 고구려 수막새 기와는 천문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을 표현했다. 미술사학계에서는 이 무늬를 ‘인동문’으로 읽지만 보면 알 수 있듯이 천문(天門)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진80〉 분청사기 박지태극문 편병은 한 중앙에 ‘태극’이 새겨져 있다. 그 둘레는 이 태극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나오는 구름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 태극기의 태극은 고구려까지 내려가고(물론 백제와 신라에도 있다), 다시 기(?)의 육서통까지, 거기서 다시 저 멀리 암사동 신석기인이 새긴 빗살무늬토기의 ‘천문(天門)’에까지 가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태극의 기원은 ‘파형동기’와 ‘파형문’을 다룰 때 아주 자세히 다룰 것이다.

▲허신의 《설문해자》와 기(?)

 기(?)는 나중에 농경의 영향으로 그 아래에 쌀미(米)가 더해져 기(氣)가 된다.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기(?)를 “구름의 기운(雲?), 구름이 일어날 때 모습(象雲起之?)”이라고만 아주 간단히 기록한다. 허신의 기(?) 자 정리 구절을 읽으면 약간 허탈하기까지 하다. 고대 중국과 한국인에게 기(?) 사상은 가장 중요한 사상이고 밑바탕이다. 그런데도 그가 기(?)를 단 몇 자로 정리한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허신이 살았을 당시 기(?)는 누구에게나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단 몇 자로 정리하더라도 충분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기를 ‘호흡’이라 했다. 신석기인들은 하늘에 보이는 ‘기상(氣象)’을 하늘의 ‘호흡’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 듯싶다. 나중에 이것은 땅(地)의 호흡 ‘안개(또는 아지랑이·먼지)’와 하나가 되어 ‘운무(雲霧)’가 되고, 고대 중국인들은 이것을 하늘과 땅 천지(天地)의 호흡으로 보았다. 이렇게 봤을 때 천문(통로)은 신석기인의 하늘관이고, 하늘이 호흡하는 입(구멍·天口)인 셈이다. 그리고 하늘이 호흡을 할 때 그 입김(바람)이 소용돌이를 치며 구름이 나오는 것이다. 고구려신라백제 수막새 기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바람개비(파형문)는 바로 이것을 표현한 것이다.

〈사진84〉 백자 상감모란잎문 편병. 조선 15세기. 높이 23cm. 보물 제791호. 덕원갤러리. 모란이라 하지만 모란은 덩굴손이 없고 잎 모양도 달라 엄격하게 말하면 모란이라 할 수 없다. 〈사진85〉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 진파리 제1호 무덤 천정 벽화. 덕원갤러리

▲한반도 궁산 신석기인과 고대 인도의 천문(天門)

 〈사진81〉은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 궁산유적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조각을 그린 그림이다. 궁산 신석기인들은 하늘 속 물 층을 네 층으로 새겼다. 이것은 사방 동서남북 하늘 물 층을 새겼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층마다 통로(천문)를 냈다. 이 하늘 속 물 층은 옆에서 본 하늘을 그릇 평면에 새긴 것이다(‘하늘 속 물’에 대해서는 앞 글 〈한반도 신석기인이 새긴 ‘하늘 속 물’과 파란 하늘〉을 참조 바람). 이와 달리 〈사진82〉 기(?)의 전서는 사람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본 하늘 통로를 그렸다. 보는 시점(視點)을 달리한 것인데, 〈사진81〉은 y축에서 본 하늘 속이고, 〈사진82〉는 x축에서 바라본 하늘 천문이다. 〈사진83〉은 인도 베다시대(기원전 1500∼500년) 그릇이다. 이 시기 인도는 철기시대(기원전 1200∼272)다. 이 그릇 무늬 또한 x축에서 바라본 하늘이다. 그릇 밑바닥에 한중앙 들판 천문을 그리고, 그 둘레에 반타원형 구름을 다섯 장 그려 이 천문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을 표현했다(반타원형 구름에 대해서는 앞 글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무늬 종류는 다섯 가지〉를 참조 바람). 그런 다음 세 곳에 천문을 그리고 세 가닥 구름이 나오는 것을 표현했다. 중국 한자 육서통 기(?)와 같고, 〈사진71〉의 천문 무늬와 비슷하다.

〈사진86-87〉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옛 무덤에서 나온 뚜껑 굽다리 그릇 무늬.

▲고구려 벽화와 천문화생

 〈사진84〉는 〈사진72〉의 뒷면 무늬 그림이다. 테두리 두 겹 원과 가운데 두 겹 원도 천문이다. 가운데 천문에서 풀꽃 잎과 줄기가 바깥쪽으로 나오고, 테두리 천문에서는 안쪽으로 나온다. 이것은 이 세상 만물이 천문(天門)에서 태어난다는 ‘천문화생(天門化生)’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85〉는 고구려 진파리 제1호 무덤 천정 그림이다. 고구려 벽화는 무덤마다 아주 중요한 사상을 말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고구려 사람들의 세계관과 내세관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무덤으로는 장천 제1호 무덤·환문총(중국 길림성 집안), 안악 제1호 무덤(황해남도 안악군 대추리), 성총(평남 남포시 와우도 신령리), 쌍기둥 무덤(평남 남포시 강서구역 용강리), 덕화리 제1호 무덤(평남 대동군 덕화리), 진파리 제1, 4호 무덤(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을 들 수 있다. 이곳 여덟 무덤은 이 세상 만물이 천문에서 태어난다는 천문화생 세계관이 그려져 있고, 죽어 다시 이 세상의 기원이자 자신이 태어났던 천문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사진85〉는 바로 그러한 세계관을 압축하여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가운데 동그란 천문이 있고, 그 천문에서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을 표현했다. 북한 학계에서는 이 천문을 ‘연꽃’으로 보고, 천문에서 태어나는 풀꽃을 ‘인동’으로 보지만 이것은 천문과 새 생명을 뜻하는 풀꽃으로 볼 수 있다(이 풀꽃을 인동으로 볼 근거는 없다. 인동 잎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이 풀꽃은 본질적으로는 구름이면서 새 생명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성리학과 천문화생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천문에서 태어난다는 ‘천문화생(天門化生)’ 세계관은 삼국 가운데서도 신라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사진86, 87〉 같은 증거를 국립중앙박물관 신라관과 경주박물관에서 셀 수 없이 볼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지금까지 이 천문 무늬를 원권문, 점원문, 고리점무늬라 해 왔다. 또 이 무늬의 정체를 몰라 수많은 유물이 박물관 수장고에 잠자고 있다.

 〈사진86, 87〉은 경주 방내리 무덤에서 나온 그릇 무늬이다. 경주 방내리는 신라의 신도시이고, 이곳 무덤군은 신라 귀족들의 공동묘지이다. 원래는 무덤이 400여 기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거의 도굴당하고 온전히 남은 것은 100여 기쯤 된다. 해방 뒤 1968년 경부고속도로를 내면서 발굴조사를 시작했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무덤에서 나온 그릇은 수백 점에 이르는데 거의 다 〈사진86, 87〉 같은 천문 무늬를 하고 있다. 고구려 사람들이 무덤 벽에 천문(天門)을 그려 그들의 내세관을 표현했다면 신라 사람들은 무덤에 넣는 그릇과 뼈 항아리에 〈사진86, 87〉 같은 천문 무늬를 새겨 자신이 태어났던 천문으로 돌아가겠다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더구나 이 천문 세계관은 신라·고려 불교의 연화화생(蓮花化生)과 조선 성리학의 세계관과도 하나가 된다.
김찬곤<광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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