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노역 집단소송 계기
수십년만 밝힌 기구한 사연들
대상 아닌 피해자 “길 없겠나” 하소연
“정보 제공 등 참여 기회 넓힐 지원책 절실”

▲ 나고야 성 앞에선 조선여자근로정신대.<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일제 강제노역 집단 소송이 수십년간 숨겨져 있던 피해자와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구체적인 피해 사실 등에 대해선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겠지만 많은 피해자와 유족들은 그동안 말못했던 억울함을 호소하며 강한 소송 참여 의지를 드러냈다.

21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 따르면, 지난 20일부터 접수된 소송 문의 전화를 통해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제강점기 입었던 피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상복(광주 북구 용봉동) 씨는 “아버지가 1941년 북해도 탄광에 끌려갔는데 당시 집으로 보낸 사진과 사진 뒷면에 일본 현지 주소가 적혀 있었다”며 “돌아와서도 계속 위가 안 좋고 고생만 하시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소송 참여를 문의한 것이다.

이옥섭(전남 담양) 씨도 아버지의 한을 풀어보고자 시민모임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아버지가 1940년 북해도 해저 지하탄광에서 3년 동안 탄을 캐다 12월 달에야 귀국했다고 하더라”며 “지하 1000미터까지 내려가 팬티만 입고 탄을 캐느라 생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들었다”고 아버지가 생전 했던 피해 증언을 전했다.

강길호(광주) 씨는 “아버지가 구타를 많이 당해 해방 후 돌아와서도 대변을 잘 못 볼 정도로 고생했지만, 어려웠던 시절이라 병원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오랫동안 한방 침으로 견디시다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광주 오치동에 사는 김복수(76) 씨는 “아버지가 해방 뒤 리어카에 실려서 돌아 올 정도로 몸이 다 못 쓰게 돼 귀국했다”며 “아버지가 평생 병석에 계시다보니 학교 문턱이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고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특히 “돈이 문제가 아니다”며 “아버지가 아파 계시니 가정이 다 파탄돼 버려, 억울하게 살아 온 것이 서러워 소송에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에 사는 장명곤 씨는 장손인 큰아버지가 일본에 끌려가 현지에서 행방불명돼 소식도 없자 나중에 큰아버지 호적에 양자로 입적하게 된 기구한 가족 내력을 털어놓기도 했다.

장 씨는 “큰아버지가 나름대로 고을에서 촉망도 받고 산속에서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가르치다 어느 날 갑자기 헌병한테 끌려 나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며 “여태 사망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행방불명자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나중에라도 경제적으로 풀리면 아버지 사망신고도 하고 한이라도 풀어달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이 피해자와 유족들의 가슴 속에만 있던 기구한 사연들을 끄집어 내는 계기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접수된 문의자 중에는 군인으로 끌려가 소송 참여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한 유족은 “아버지가 군인으로 끌려가 고생하다 오셨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소송에 참여할 수 없느냐”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징병이나 군속 등의 경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불법동원 책임을 따져야 해 사실상 법적 소송을 통한 구제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모임 이국언 상임대표는 “우리가 끌려갈 때 뭘로 끌려갈지 선택하고 끌려가느냐면서 ‘정말 우리는 길이 없겠냐’는 분들의 말을 들으면서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특히, 미처 피해 판정을 받지 못해 소송 참여가 이들도 있었다.

우리 정부는 2004년부터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강제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를 통해 알제 강제동원 관련 피해진상조사를 벌인 바 있다. 위원회는 지난 2015년 폐지돼 더 이상의 피해사실 확인 등의 업무는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당시 이러한 정부차원의 조사가 진행되는 것을 모르고 지나가버린 피해자들 역시 이번 집단 소송에 참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상남 씨는 “아버지가 탄광에 끌려가 2년간 고생하다 와 일찍 돌아가셨는데, 바쁘게 살다보니 노무현 정부에서 피해자 신고를 받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시민모임에 토로했다.

피해구제에 대한 열망이 강했지만 ‘몰라서’ 기회를 놓친 피해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시민모임은 보고 있다. 때문에 더많은 피해자들이 권리구제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보유한 자료 제공 등의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국언 대표는 “일제 강제동원 문제는 일종의 국가범죄, 전쟁범죄로 피해자들은 정부 조치가 있기만을 기다렸고, 그러다 74년이란 세월이 가버렸다”며 “결코 피해자들이 구제 노력을 게을리한 게 아니라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피해자들이 권리구제의 기회를 모르거나 놓쳤던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이 본인들의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권리구제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정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강제동원 피해 관련 정보들을 피해 당사자들에게 제공하는 등의 적극적인 역할을 고민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일제 강제노역 집단소송 참여 문의: 062-365-0815.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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