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고산리 융기문토기의 석 줄 덧띠 무늬

▲ <사진123> 고산리 덧띠무늬토기 그림. 이렇게 그림으로 그려 놓고 보니 꼭 우동 그릇 같다. 이 그릇은 높이가 27cm, 아가리 지름이 50cm나 되는, 아주 커다란 물독이다. <사진124> 미국 미시시피 알칸사스 신석기 토기. 구름이 한 가닥이지만 한 가닥을 세 선으로 그렸다. 고산리와 알칸사스 신석기 토기는 본질적으로 같은 무늬라 할 수 있다. 김찬곤.
신석기 미술은 ‘추상미술’이 아니라 ‘구상미술’
 
 <사진123> 고산리 융기문토기에 대해 국립제주박물관은 아래와 같이 풀이하고 있다.

 토기는 대부분 고산리식 토기로 불리는 원시무문토기와 융기문토기, 소량의 압인문토기가 출토되었다. 융기문토기는 아가리 부근에 3줄의 점토 띠를 에스(S)자 모양으로 곡선화 시킨 기하학 무늬로 태선융기문과 유사하다.
-국립제주박물관, 《제주의 역사와 문화》(통천문화사, 2001), 33쪽

 참으로 어려운 설명글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구절은 “아가리 부근에 3줄의 점토 띠를 에스(S)자 모양으로 곡선화 시킨 기하학 무늬”라는 말이다. 이 말을 우리 말법으로 고쳐 쓰면, ‘아가리 쪽에 흙 띠 석 줄을 에스(S)자 모양으로 덧붙인 기하학 무늬’쯤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무엇을 새롭게’ 알려주는 ‘설명글’이라 할 수 있을까. 더구나 흙 띠 세 가닥을 보는 눈도 잘못되었다. 가장 위 아가리 쪽 한 가닥은 아가리와 반듯하게 ‘평행’을 이루고 있고, 밑에 두 가닥만 구불하게 붙였다.

 유홍준은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과 더불어 제주 고산리 덧띠무늬토기를 설명하면서 이 ‘덧띠 무늬’를 ‘추상 무늬’라 한다.

 덧띠무늬토기는 그릇을 성형한 다음 이를 단단하게 하기 위하여 표면에 굵은 띠를 서나 가닥 덧붙인 아주 세련된 토기다. (……) 덧띠 장식에는 자연스런 추상 무늬 효과도 있고 느릿한 동감과 진한 손맛이 느껴진다. (……) 이런 덧띠무늬토기에서는 모던아트modern art의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 예술에서나 볼 수 있는 현대적인 아름다움까지 느껴지는데 원초적 삶의 건강성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 예술성을 앞세운 모던아트의 그것보다 더 진한 감동을 받게 된다.
-유홍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눌와, 2012), 26-28쪽

고산리 유적 출토 융기문토기. 높이 27cm. 국립제주박물관. 보는 바와 같이 우리 신석기 그릇은 밑굽이 세모형이 아니라 이렇게 평형한 그릇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토기가 중요한 까닭은 한국미술의 시원이자 기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홍준은 ‘융기문토기’라 하지 않고 ‘덧띠무늬토기’라 한다. 이것은 아주 알맞게 정정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융기는 스스로 일어나는 것인데, <사진112>의 그릇 무늬는 저절로 융기한 것이 아니라 고산리 신석기인이 ‘일부러’ 흙띠(덧띠)를 붙여 ‘무언가’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융기문’보다는 ‘덧띠무늬’가 더 알맞다. 그런데 그는 이 덧띠무늬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덧띠가 그릇을 더 ‘단단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든지, 모던 아트의 ‘원초적인 삶’이 살아 있다 하고, 결국 국립제주박물관의 설명글처럼 ‘추상 무늬’로 보는 것이다.

 유홍준과 거의 같은 풀이는 김원룡·안휘준의 《한국미술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책은 한국미술사 관련 책 가운데 기본서라 할 수 있는데, 2003년 개정판을 내면서도 한국미술의 기원 고산리 덧띠무늬토기는 다루지 않았다.
 
 덧무늬는 아마 토기 아가리에 보강을 목적으로 감아 돌렸던 끈에 착안하여 발생하였다고 생각되는데, (……) 빗살무늬토기에서처럼 덧무늬들이 모두 비구상의 기하학적 무늬라는 것이 우리 신석기시대 도안의 공통적 성격이라 하겠다.
-김원룡·안휘준, 《한국미술의 역사》(시공사, 2016), 36-37쪽
 
 토기 부분은 김원룡이 썼을 것이 분명한데, 그는 덧띠의 기원을 그릇 아가리 쪽에 감았던 끈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세계 신석기 미술사나 문양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주장이다. 또 신석기 무늬를 ‘비구상의 기하학적 무늬’라 단정 짓는데, 이 또한 잘못된 전제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반도 빗살무늬토기를 다루면서 빗살무늬가 희랍의 기하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신석기 미술을 ‘비구상의 미술’로 보고 있다. 이는 한반도 신석기인이 1만 년 남짓 ‘추상미술’을 했다는 말이고, 우리 미술의 시작을 추상미술로 보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동안 ‘빗살무늬토기의 비밀’ 연재글에서도 밝혔듯이 한반도 신석기인의 무늬는 철저히 구상(천문, 구름, 비)에서 왔고(앞 글 ‘빗살무늬는 과연 암호일까?’ 참조 바람 http://omn.kr/1cns0), 그런 만큼 한반도 신석기인의 미술은 추상미술이 아니라 ‘구상미술’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하겠다.

<사진125> 광주대학교 다섯 학과 학생들에게 고산리 덧무늬토기의 무늬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물었다. 시간은 1분, 그래야 ‘직관의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안 보일 때가 있다
 
 광주대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사진112>를 보여주고 이 무늬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물었다. 조사 방법은 다섯 가지다. 경영학과 14명에게는 아무 힌트 없이 그릇 사진만 보여주고 이 무늬가 무엇인지 써 내게 했다. 구름이라 답한 학생은 두 명, 나머지 학생은 물결, 파도, 땅·바람, 연기, 바람·하늘·용이라 했다. 부동산금융학과 15명에게는 국립제주박물관 설명글(“에스(S)자 모양으로 곡선화 시킨 기하학 무늬”)을 힌트로 주고 물었다. 그랬더니 구름이라 답한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머지 답은 파도, 용, 뱀, 물줄기, 냇물, 바람, 강, 하늘이다. 사회복지학부 19명에게는, “그릇을 볼 때는 아가리 쪽을 하늘로 생각하고 보면 잘 읽힌다”는 힌트를 줬다. 이것은 그릇 무늬를 볼 때 기본 상식이다. 그랬더니 10명이 구름, 3명이 바람, 한 명이 안개라 했다.

 나머지 두 과 학생들에게는 힌트 순서를 달리했다. 유아교육과 학생 19명에게, 그릇을 볼 때는 아가리 쪽을 하늘로 보고 보면 무늬가 잘 읽힌다 하면서 <사진112>의 무늬를 읽어 보라 했다. 19명 가운데 13명이 구름, 4명이 바람이라 했다. 다시 곧바로 두 번째 설문지를 나누어줬다. 이번 설문지에는 국립제주박물관 설명글이 힌트로 써 있었다.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구름이 3명, 모르겠다가 5명이었다. 나머지 답은 산, 줄기, 바람, 파도, 바다, 밭이었다.

 호텔외식조리학과 학생 19명에게는 힌트 순서를 유아교육과와 반대로 했다. 먼저 국립제주박물관 설명글이 써 있는 설문지를 나누어 주었다. 구름 1명, 바람 3명, 바다 물결 3명, 안개 2명이고, 나머지 답은 물의 출렁거림, 시냇물, 산이었다. 그 다음 두 번째 설문지를 나누어 주었다. 그릇을 볼 때는 아가리 쪽을 하늘로 보면 잘 읽힌다는 힌트가 써 있는 설문지다. 19명 가운데 15명이 구름이라고 썼다. 나머지 답은 은하수, 바람, 번개, 바다·땅이다. 학생들이 낸 답 가운데 남다른 것 두 개를 아래에 들어 본다.
 
 세 선이 있는데 밑 두 줄은 물결 모양 선이고, 가장 위쪽 선은 일자 직선이다. 가장 아래쪽은 바다, 가운데는 산 또는 바람, 가장 위쪽은 하늘을 보고 그린 것 같다.
 
 맨 위 줄은 하늘, 중간 에스자 모양 곡선은 바람(구름), 맨 아래쪽은 땅(제주도)을 표현한 것 같다.
 
 위 두 학생은 국립제주박물관의 ‘기하학 무늬’ 설명글을 읽고서도 이런 답을 내놓았다. 지식(아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직관을 믿는 학생이다. 또 가장 위쪽 선이 ‘일자 직선’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나는 설문 조사를 하면서도 사실 이미 답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구름’이 틀림없다. 내 예상대로 학생들은 거의 다 구름이라 했다. 다만 여기서 유아교육과와 호텔외식조리학과 학생들이 답한 경우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두 과 모두 국립제주박물관의 설명글(“점토 띠를 에스(S)자 모양으로 곡선화 시킨 기하학 무늬”)을 읽고서는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 설명글 자체가 무늬를 있는 그대로 못 보게 한 것이다. ‘기하학 무늬’라고 ‘알고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아는 만큼 안 보이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기하학 무늬’란 말이 21년 동안 이 토기의 무늬를 해석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들의 눈을 가렸다고 볼 수 있다.

<사진126>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적봉시 대전자유적(大甸子遺蹟)에서 나온 채색 옹관(독널). 하가점하층문화(기원전 2000∼1400년). 요령성박물관. <사진127> 일본 조몬 만기 토기. 기원전 1000년∼400년. <사진128> 미국 호튼 신석기 빗살무늬토기. 기원전 4000년.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고조선과 일본·미국 신석기인의 구름무늬
 
 <사진126>은 고조선 전기(단군조선, 청동기시대) 옹관이다. 그릇 전체 무늬는 구름무늬인데(이 구름무늬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특히 아가리 쪽 무늬는 제주 고산리 덧띠무늬토기의 구름무늬와 비슷하다. <사진128>은 미국 미시간 주 호튼(Houghton) 신석기 빗살무늬토기다. 이 무늬 또한 고산리 덧띠 구름무늬와 닮아 있다. <사진127>은 일본 신석기 조몬시대 말기 토기다. 암사동 신석기인이 구름 속에 점을 찍어 구름 속 물(水, 수분)을 표현했듯 일본 신석기 조몬인 또한 똑같은 방법으로 구름 속 수분을 표현했다(앞 글 ‘6000년 전 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린 서울 하늘 뭉게구름’ 참조 바람. http://omn.kr/1eyhg). 그리고 구름 둘레에 점을 찍었는데, 이것은 봄비(雨) 또는 씨앗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신석기 그릇을 보면 일본 조몬인처럼 구름 둘레에 찍은 점무늬를 볼 수 있다. 이는 구름에서 봄비가 내리고 그 봄비를 맞고 싹이 틀 씨앗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봄비이면서 씨앗인 것이다.

 나는 위 세 토기의 무늬를 구름(雲)으로 보지만 중국·일본·미국 고고학계와 미술사학계에서는 우리 학계가 ‘기하학적 추상 무늬’라 하듯 그들 또한 여전히 ‘기하학적 무늬’ 또는 ‘추상 무늬’라 하고 있다. 우리 학계가 그렇듯 그들 또한 신석기 세계관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고산리식 토기’의 비밀을 풀어보고자 한다. 고산리식 토기는 흙반죽에 풀대나 풀잎을 버무려 구운 그릇을 말한다. 그래서 그릇 겉면에 풀대가 타고 남은 자국(무늬)이 있다. 고산리식 토기와 비슷한 토기로는 아무르강 하류 가샤 유적과 아무르강 중류 그로마투하 유적 토기를 들 수 있는데, 지금 우리 학계에서는 이 세 유적의 영향 관계를 따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무늬(풀대나 풀잎 자국)가 무엇인지, 당시 고산리 신석기인은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흙반죽에 풀대를 섞어 구웠는지, 이것부터 먼저 밝혀야 한다.
김찬곤<광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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