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과 동시연애, 숨기려해도 드러난 진실
코미디로 풀어낸 카사노바, 조력자들 변화

▲ 연극 ‘보잉 보잉’.<동산아트홀 제공>
 세 명의 약혼녀와 연애를 즐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약혼녀들은 자신과 약혼한 사람이 여러 명의 여자와 데이트를 즐긴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연극 ‘보잉 보잉’의 주인공 성기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 성기의 약혼녀 세 명은 모두 비행기 승무원이다. 성기는 이들의 비행시간표를 꼼꼼히 관리하면서 들키지 않고 세 명의 여자와 동시 데이트를 즐긴다.

 성기는 오만한 인물이라고 하겠다.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고, 나아가 지배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인생에는 변수와 예외가 있다. 성기의 세 약혼녀인 비행기 승무원들의 비행 일정이 갑자기 변경되면서 성기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세 약혼녀가 모두 성기의 집에 모이게 되는 상황 말이다. 바람둥이 성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연극 ‘보잉 보잉’은 스위스 코미디 작가 마르꼬 까블레띠의 60년대 작품이다. 헐리우드에서 1965년도에 존 리치 감독이 ‘Boeing (707) Boeing (707)’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인도의 영화감독인 프리야 다르샨도 Malayalam 언어(인도 께랄라 지방에서 쓰는 언어)를 사용하여 1985년도에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극단 두레에서 손남목 연출로 2002년에 첫 선을 보였다. 2003년까지는 원작에 충실했다고 하고, 2005년부터 우리나라의 정서와 배경으로 개작을 하여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관객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바람둥이 방패막이 해주는 친구
 
 4월20일 토요일에 동산아트홀로 이 연극을 보러 갈 때는 이런 정보들을 알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나라 식으로 개작을 했다고는 하지만 배우들의 대사는 여전히 번안극 문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전체적인 줄거리나 구성에서 서양극 냄새가 났기 때문에 관람 후에 검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작이 서양극이고 60년대 것이다. 대체 왜 연출은 이 작품을 골랐고, 이 작품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렇게도 롱런을 하고 있을까.

 주인공이 성기라고 했지만 사실상 주인공은 성기의 친구인 순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둥이인 성기와 달리 순성은 시골 출신으로 순박하고 진지한 면이 있다. 그런 순성에게 친구 성기의 상황은 이해되지 않지만, 일단 여자들이 서로를 알게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 모양이다. 순성의 생각에 그것은 친구와 여자들에게 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였을까. 성기가 애인 한 명과 외출한 사이 집에 남아 있다가 성기의 다른 애인을 맞이하게 된 순성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한다. 아이러니다. 진실한 성품의 순성이 거짓이 탄로 나는 것을 막으려 하니 말이다.

연극 ‘보잉 보잉’.<동산아트홀 제공>

 순성이 바람둥이 친구의 세 약혼녀가 마주쳐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과정이 연극 ‘보잉 보잉’의 거의 전부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우스꽝스런 해프닝들이 이 극을 끌어간다. 하지만 순성 혼자의 힘으로 이 세 여자의 마주침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세 여자는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원작에서의 결말과 이 한국적 개작의 결말이 같은지는 확인을 못했지만 관객이 상상하기 힘든(그런데 사실은 상상이 가능했다) 결말이 펼쳐진다.

 시간을 관리하고, 서로 스케줄이 다른 세 여자를 동시에 농락할 수 있다고 믿었던 성기는 그 단순한 성격만큼이나 아주 빨리 카사노바의 가면을 벗어 던진다. 성기는 이제 한 명의 여자하고만 사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로운 비행기 승무원들이 더 있으니 더 놀아보라는 권유를 받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 유혹을 받아들인 건 오히려 순성이다. 순성은 성기의 시간표를 챙긴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순박했던 한 시골 청년이 어떻게 카사노바가 되어 가는지, 혹은 순박했던 사람이 어떻게 오만한 자가 되어 가는지 변화 과정을 보여 준 연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극 ‘보잉 보잉’.<동산아트홀 제공>
 
▲관객들 그냥 웃다가 가는 연극
 
 성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성기의 집 가정부이다. 이 가정부는 취향이 서로 다른 세 약혼녀의 입맛을 다 맞추어 음식을 요리하고 방을 꾸민다. 이 가정부 역시 성기를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 딱히 갈 데도 없고, 성기가 돈도 많이 주기 때문에 모른 체 하며 성기를 돕고 있다.

 나쁜 일에는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 조력자가 더 무섭다. 조력자들, 가정부나 순성이 이것은 안 좋은 일이라는 자각을 하고 조력하기를 그만두면 범죄는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부분 조력자들은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한다. 나쁜 일을 직접 벌이거나 그 일을 끝내는 건 주인공들이다. 조력자들은 그저 도우면서 떨어진 떡고물이나 챙기고, 자신이 당사자는 아니라는 심리적 안정감에 취한다. 그러다 가끔 주인공 자리가 비면 그 자리에 올라가기도 하고(순성의 경우), 그냥 계속 익명의 조력자로 살아가기도 한다(가정부의 경우)

 머리 무거운 얘기를 했지만, 사실 연극 ‘보잉 보잉’은 웃다가 끝나는 연극이다. 웃기만 하다가 ‘그래서 뭐?’ 혹은 ‘어쩌라고?’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단순 코미디이다. 감독도 그것을 바랐을 것 같은데, 관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관객들은 그냥 웃으러 왔고, 웃다가 간다. (사회 비판과 체제 전복이라고 학자들이 말들 하는) 코미디의 본질 따위와 상관없이 그냥, 그저 웃다가 간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웃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진짜 가끔은 정말 진지한 코미디를 보고 싶기도 하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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