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독서’ 문유석 (문학동네:2018)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순전히 책방업무 때문이었다. 우리 책방은 2018년부터 ‘문학동네 북클럽’과 협약을 맺고 ‘북클럽 아지트’로 회원들을 위한 작은 해택들을 제공하는 광주 지역 책방인 셈이고, 지역에서 독자를 만나는 일환으로 지난 3월9일(토)에 북토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꽤 유명한 사람들이 글을 쓰기도 하고 책방을 내기도 한다. 그런 일들은 책방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종종 있는 일이 되었는데, 이는 소위 ‘셀럽’들의 새로운 도전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그래서 좀 시큰둥했다. 인기에 덧대어 혹은 전문집단의 명성에 이어 다른 영역까지도 잘 할 수 있다는 과시인가 싶기도 했고 나름 애쓰는 책방지기들에게는 허무감이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문유석 판사 역시 겉으로 보여지는 스펙으로만 본다면 꽤 엘리트 코스를 밟은 현직 부장판사다. 그나마 우연히 본 전작 ‘미스 함무라비’ 드라마에서 느낀 ‘판사작가’의 시선에 관심이 가긴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베스트셀러는 가급적 입고하지 않는다는 책방 원칙을 고수하며 관심두지 않았을 이 책을 볼 일은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책장을 넘길수록 의외의 이야기에 낄낄거리며 순식간에 보게 된 것이다.

 그의 시선은 시니컬한 듯 하면서도 따뜻한 구석이 있었다. 책 제목대로 독서에서 느낀 기쁨 쾌락 아픔까지, 온갖 경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 얽힌 그의 어릴 적 추억은 공감할 만한 것이었는데, 특히나 ‘순정만화에 빠지다’ 부분에서는 몰래 만화방을 들락거리던 내 옛추억과도 맞닿아 어느새 친근감까지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야기란 각자의 욕망과 감정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접했던 그 수많은 이야기의 주어는 대부분 남성에 편중되어 있었다. 여성작가가 쓴 ‘제인에어’ ‘빨간 머리 앤’ ‘작은 아씨들’이 유독 새롭게 느껴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겨우 여성이 주어인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똑똑해도 교사가 되는 것 정도가 꿈의 최대치인 세계 말이다… 어쩌면 나는 동네 만홧가게의 초라한 순정만화 코너에 앉아 나도 모르는 책 세계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두 가지 성으로 간단히 분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개인마다 욕망도 감성도 무지개 색깔의 스펙트럼이 미세하게 변화하듯 다양하다. 나와 반대로 만홧가게 안쪽, 공을 던지거나 차고 사람을 때리거나 걷어차는 만화들이 더 취향에 맞는 여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106~107쪽)
 
 주말마다 쓴 글은 8주 만에 한 권의 책을 엮을 만큼 분량을 채웠단다. 그동안 4권의 책을 내면서 판사로서 가지고 있는 한계와 검열의 선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금씩 침범하고 넓혀가고 있다고도 했다. 그 역시 오랜 시간 고민 가운데 하나씩 도전하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흔히 법정에 앉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엄숙하고 원칙주의자이고 흔들림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그가 선언하는 것들은 ‘개인’이었고 ‘취향’이었고 ‘재미’였다니, 이웃하는 개구진 동무 같은 친근한 느낌이었다.

 실상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다. 누군가에게 지식수준을 자랑하기 위해서도, 어떤 일에 ‘써 먹기’ 위해서도 아니다.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된 호기심과 탐구여야만 다른 이들을 위한 어떤 과정으로 나갈 수 있다. 나의 ‘지적 만족과 재미’,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 등 지극히 개인적인 책읽기야 말로 진정으로 타인과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날마다 독서문화진흥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한다.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어려운 혹은 오래된 책 제목이 나열된 목록이 ‘논술 실력 향상을 위한 필독서’로 청소년들에게 강요되기도 한다. 책을 사지 않아 서점이 다 없어질 지경이라 위험하다며 이런 저런 행사와 지원 사업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중에 우리는 혹시 책 읽기의 즐거움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위해 책을 들먹이는 동안, 진짜 친구 같은 책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과감하게 ‘쾌락(快樂)독서’라고 자신의 책읽기를 명명한 저자의 인생에 꽤 친근감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물론 슬프게도 지금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모든 것이 언젠가 쓸모 있어지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최소한 그 일을 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면, 이 불확실한 삶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쓸모 있는 일을 이미 한 것 아닌가. (260쪽)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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