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문학 기초를 놓은 문사(文士)

▲ 한국 근대문학 기초를 놓은 문사라는 평가를 받는 염상섭.
 과학과 예술은 세계에 관해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고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 훌륭한 문학작품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보물이라 해도 좋다. 그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으로 나를 깨운 한국현대작가들이 있다. 그들과 만난 나만의 경로와 감상을 적어본다. 나는 문학도였지만 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거나 더욱이 연구한 적은 없다. 그래도 좋은 작가, 좋은 작품을 골라 읽으려고 나름 노력한다. 그 노력의 성과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독자들이 한국현대문학에 접근하는 작은 길잡이 역할을 했으면 한다. <필자의 말> 
본보는 ‘문학생각’을 연재(격주)한다. 필자 문수현은 전북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북교육신문 기자다. 아울러 이 연재는 전북교육신문에도 함께 실리게 됨을 밝힌다.
<편집자주>
---------------------------------------------------------------

 대개 어느 학문 분야에나 대가가 있고 명저가 있으며, 그 학자(작가)와 저서(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입문서가 독자의 손에 편리하게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때에 독자의 의무랄까 숙제가 시작된다. 최근 염상섭 읽기를 시작하면서 그 입문서로 삼을 평전을 구하러 다닌 경험에 빗대 이야기해보려 한다.

 염상섭은 한국근대문학, 나아가 한국문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차지하는 부분의 가치가 증대돼가고 있다. 그런 그가 스스로 데뷔작이라 밝혔으며 자타공인 출세작이기도 한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우리 근대소설의 진정한 주춧돌을 놓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만세전’은 3·1운동 이전의 암울한 상황을 그린 명작이며, ‘삼대’는 그의 최대 걸작이자 히트작이다. 장편 ‘삼대’는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함께 1930년대의 시대 상황을 가장 충실하게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염상섭은 일생 동안 붓을 꺾지 않은 작가로서도 주목할 만하다. 1919년 첫 단편소설 ‘암야’와 ‘조선독립선언문’을 쓴 이래 총 470편이라는 많은 글을 발표했다. 그의 문학 장르는 주로 소설이었지만, 1920년대 평론계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실제 그가 써낸 평론 수도 100여 편에 이른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부터 1962년까지 말년 8년 동안에만 해도 장편소설 6편, 단편소설 63편, 수필 60편, 평론 20편 등 모두 149편이다. 특히 ‘효풍’ ‘취우’ 등 그동안 초기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받던 그의 후기 장편들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염상섭 작품 150편은 우리곁에 있어야 하고…

 이처럼 작가로서 염상섭은 한국근대문학의 기초를 놓은 문사(文士)로 손색이 없다. 이런 대가의 작품들을 손쉽게 접하고 즐기며 문학적 교양을 심화시켜가는 일이야말로 독자의 기쁨일 것이다. 다시 말해 염상섭의 작품 470편 모두, 아니면 적어도 소설 150편은 늘 우리 곁에 있어야 하고, 소설가 염상섭의 삶과 작품에 대한 입문서 몇 권 정도는 책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현실은 과연 그런가? 그에 대한 답은 몹시 부정적이다.

 지난해 10월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는 “염상섭의 신상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해명이 벌써 이루어졌다. 김종균의 ‘염상섭연구’(고려대학교출판부, 1974)는 이 방면 연구의 안내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그가 ‘신상’이라고 한 것은 ‘삶/생활’을 가리킨 것이고, 글로 쓴 삶이란 결국 전기이며, 전기란 전기 작가의 견해가 담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평을 곁들인 전기, 곧 평전에 다름 아니다.

 다만 어느 작가에 대한 것이건 그것이 가치 있는 평전이 되려면, 해당 작가가 쓴 작품들에 대한 적절한 요약과 그것들의 탄생 배경에 대한 전기 작가 나름의 해석이 가미되어야 할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전기 작가의 성실성이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김종균 교수의 ‘염상섭연구’는 애초에 평전으로 쓰인 책이 아니다. 김윤식 교수의 말대로 ‘연구의 안내서’ 곧 연구자를 위한 책이어서 일반 독자를 위한 입문서로는 적당하지 않다. 김윤식 교수 자신도 1000페이지가 넘는 ‘염상섭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87년)를 냈는데, 이 또한 본격적인 학문적 저작이다.
 
▲“과연 염상섭 평전이 있기는 한걸까?”

 ‘염상섭 평전을 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과연 염상섭 평전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의문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할 무렵, 다행히 한신대학교 윤소영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윤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여러 학문 분야로 확장해보려는 ‘일반화’ 전략에 따라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연구·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그런 윤 교수의 애독자인데, 그가 최근작 ‘재론 위기와 비판’(2018)에서 ‘횡보와 발자크’라는 다섯 쪽 분량의 짧은 글을 통해 염상섭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국문학도 출신인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횡보는 염상섭의 호다).

 윤 교수는 이곳에서 지금까지 우리 문단에서의 염상섭 연구의 성과를 요약하고 한계를 지적하는 동시에 염상섭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까지 하고 있다. 그러면서 횡보에 대한 입문서로 김종균 교수의 또 다른 저작 ‘염상섭: 한국근대리얼리즘 문학의 거장’(동아일보사, 1995)을 추천하고 있었다(이하 ‘평전’이라고 한다. 저자인 김종균 교수 자신도 서문에서 이 책을 ‘염상섭 평전’이라고 부른다). 또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김재희 작가의 ‘소설 횡보 염상섭’(2012.10-11.) 등을 참고하라고 했다.

 윤 교수가 추천한 것 중 김재희 작가의 연재소설은 신문사 인터넷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염상섭의 생애와 작품의 주요 계기들이 역동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압축돼 있고 분량 자체도 단편 수준에 그치는 적은 양이어서 작가의 삶과 활동을 담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결국 김종균 교수가 쓴 ‘평전’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당장 사다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게다가 ‘표본실의 청개구리’로만 얼핏 알고 있던 그가 ‘한국근대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이라니!

염상섭의 ‘삼대’는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함께 1930년대의 시대 상황을 가장 충실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료를 손에 넣는 방법 터득 뿌듯함

 그런데 쉽게 생각했던 염상섭 평전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평소 즐겨 이용하는 대형 A인터넷서점에서 검색했는데 아예 검색 결과에 뜨질 않았다. 혹시나 싶어 B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해보니 절판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인터넷헌책방을 뒤져봐도 ‘평전’은 찾을 수 없었다(개인이 높은 가격에 내놓은 게 한 권 있긴 했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자 나는 염상섭 평전을 끝내 읽고 싶었고 그 의지는 더 강해져갔다.

 그 뒤로 국립기관의 전자도서관들을 살펴봤다. 마침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서지정보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 책을 대여해오자니 배보다 배꼽이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다녀와야 한다니, 차비가 얼마인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 가운데는 ‘도대체 저렇게 미련할 수 있는가!’라며 한심해할 이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시행착오는 그동안 잘 모르던 도서관의 정책을 이해하는 과정이었고, 원하는 자료를 손에 넣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과정이었기에 뿌듯함마저 있다.

 내가 스스로 터득한(터득했다고 믿는!) 방법의 요점은 이렇다. 먼저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운영하는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사이트에 접속한다. 실제로 이 인터넷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해 내가 찾는 염상섭 평전을 적어도 우리나라 10개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토록 찾아도 보이지 않던 책이 국립중앙도서관은 물론 고려대 세종학술정보원, 동국대 경주도서관 등에 소장돼 있었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고장 전라북도의 전주비전대 도서관에도 있었다.

 이때 이용해야 하는 서비스가 상호대차다. 상호대차란 국·내외 대학도서관 및 협력기관에 문헌 복사나 대출을 요청해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내 경우 전북대 도서관 지역주민회원 자격으로(나는 진안군에 산다.) 이 서비스를 이용해 결국 고려대 도서관에서 우편으로 보내온 ‘평전’을 대여해 읽어볼 수 있었다.
 
▲“횡보 전집 부재, 남한 문단 최대 스캔들”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염상섭 평전 구하기 과정은 ‘횡보 전집 부재’라는 우리 문단의 서글픈 현실을 실감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앞서 인용한 ‘횡보와 발자크’에서 윤소영 교수는 “횡보 전집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남한문단 최대의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었다. 염상섭을 세계에 대고 자랑해야 할 훌륭한 작가로 여기는 나로서도 십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실제로, 민음사에서 1987년에 14권으로 간행한 ‘염상섭전집’이 있지만 사실은 전집이 아닌 선집이고, 이마저도 절판된 지 오래여서 전국 몇몇 도서관에 수소문해서야 어렵사리 빌려다 볼 수 있는 실정이다. 이 ‘전집 아닌 전집’ 14권을 소장할 욕심으로 최근 전국 헌책방을 뒤져 사들인 결과 내 책장에는 현재 1, 2, 6, 7, 8, 10, 11권 등 6권이 이 빠진 모습으로 꽂혀있다. 소홀한 대접을 받아오던 그의 후기 장편들이 최근 새롭게 간행되고 있는 점은 반갑지만, 여전히 전집 발간 계획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아 아쉽다.

 염상섭 평전을 구하며 겪은 고생은 독자로서 마땅히 들여야 할 수고였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굳이 상세히 쓴 것은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해서도 물론이지만, 우리 문학사 나아가 예술사에서 온당치 못한 이유로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해놓고자 하는 뜻에서이기도 하다.

 나는 문학도였지만 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거나 더욱이 연구한 적은 없다. 그래도 좋은 작가, 좋은 작품을 골라 읽으려고 나름 노력한다. 이번 연재를 통해 그런 노력의 작은 성과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독자들이 한국현대문학에 접근하는 작은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말] 나의 때늦은 한국문학 공부는 고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안내에 주로 따른다. 김 교수의 저작 중 참고도서는 ‘한국근대문학의 이해’(일지사, 1973), ‘한국문학사(제2판)’(김현 공저, 민음사, 1996), ‘김윤식의 현대문학사 탐구’(문학사상사, 1997), ‘한국 현대문학사(수정판)’(서울대출판문화원, 2008) 등이다. 각 회의 참고문헌은 그때그때 밝히기로 한다.
문수현 <전북교육신문 기자>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