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고산리식토기 무늬

▲ 〈사진128·왼쪽〉 제주 고산리식토기. 높이 25.6cm. 보는 바와 같이 우리 신석기 그릇은 밑굽이 세모형이 아니라 이렇게 평평한 그릇에서부터 시작됐다. 〈사진129·오른쪽〉 고산리식토기 조각. 제주국립박물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나온 지 벌써 94년째 되어간다. 그 오랫동안 우리는 빗살무늬의 뜻을 풀지 못했다. 8000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생선뼈무늬’라 했다. 본보는 수 차례에 걸친 기획을 통해 세계 신석기 그릇 문화사 속에서 한반도 신석기 빗살무늬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한다. 한반도 빗살무늬의 비밀을 푸는 일은 한국·중국·일본·베트남 신석기인의 세계관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이고, 그와 더불어 세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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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리식토기는 과연 ‘무문토기’일까
 
 지금 대전선사박물관에서는 〈처음 만난 토기, 제주 고산리 유적〉 특별전(2월 28일까지)을 열고 있다. 이 전시는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기원전 1만 년∼8000년 전)로 알려져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현경면 고산리 자구내 마을 한장밭에서 나온 신석기 그릇 70여 점을 내보이는 특별전이다.

 〈사진128〉을 보면 여느 신석기 그릇과 달리 무늬를 새기거나 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릇 표면을 보면 뭔가 무늬가 있다. 이 무늬는 풀대 자국이다. 그릇을 찰진 흙으로 빚은 다음 표면에 풀대를 듬성듬성 붙이고 넓적한 돌 같은 것으로 가볍게 두드려 그릇 겉면에 박히게 했다. 이렇게 빚은 그릇을 그늘에 말린 뒤 불에 구우면 불 속에서 풀대가 타고 자국이 남는다. 이 자국이 아래 그릇처럼 기이한 무늬가 된 것이다.

흙 반죽에 풀대를 정말 섞었을까?
 
 일단 이 그릇과 관련하여 학계에 잘못 알려진 것부터 정정할 필요가 있다.
 
 고산리식토기라 하는 원시무문토기는 빚을 때 바탕흙(胎土)에 풀 같은 유기물을 첨가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나왔다.
-이건무·조현종, 《선사 유물과 유적》(솔, 2003), 69쪽
 
 여기서 이건무·조현종은 이 토기를 ‘무문토기’, 즉 무늬가 없는 토기로 본다. 그런데 이 그릇의 겉면 풀대 자국은 고산리 신석기인이 일부러 낸 무늬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밝히겠다. 또 흔히 고산리식토기 하면 어느 글을 읽어도 흙 반죽에 풀을 섞었다는, ‘보강제’로 풀을 넣었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이것을 알려면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그릇을 찍어 보든지 아니면 깨뜨려 봐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해 봤다는 연구 성과물은 아직 없다. 지금 당장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그릇을 확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사진128〉은 해상도가 아주 높다. 크게 확대해서 보면 흙 반죽에 처음부터 풀대를 넣어 반죽했는지, 아니면 그릇을 빚은 다음 풀대를 그릇 표면에 두드려 붙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릇을 빚은 다음 나중에 덧붙인 것으로 본다.

 흙 반죽에 처음부터 풀대를 섞었다는 말은 상식으로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된다. 풀대는 그릇을 구을 때 탈 수밖에 없다. 구덩이를 파고 아래에 나뭇가지를 놓고 구우더라도 불 온도는 600도 정도 된다. 이 온도면 그릇 표면뿐만 아니라 흙속에 있는 풀대도 타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풀대 공간이 생겨 물이 샐 수 있고 그릇이 잘 깨질 수밖에 없다.
 
고산리 신석기 그릇 장인이 되어야
 
 이 그릇의 무늬를 읽을 때는 자신이 직접 고산리 신석기 그릇 장인이 되어야 한다. 한 신석기인이 고산리 산 낮은 언덕에서 흙을 파 왔다고 치자. 우선 신석기 장인은 흙 속에 있는 돌이나 나무뿌리 같은 것을 골라낼 것이다. 큰 모래 알갱이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 그릇이 매끄럽게 빚어지고 구워도 단단하다. 그릇을 빚어 본 신석기인이라면 이것은 그야말로 자명한 상식이다. 그래서 고산리 신석기인이 흙 반죽에 일부러 풀대를 넣었다는 것은 상식으로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뭔가 표현하고자 했다.

 또 하나, 세계 신석기인들은 그릇에 무늬를 새기거나 그렸는데,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거의 모든 나라 신석기인들은 그릇에 비와 구름을 가장 많이 그렸다. 한반도 신석기인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신석기 1만 년 동안 달, 별, 해, 사람 같은 것은 새기지 않았다.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릇 겉면에 하늘 속 물, 하늘(경계), 하늘 아래 구름, 구름에서 내리는 빗줄기, 이 비가 흘러가는 심원의 세계를 새겼다. 제주도 신석기인 또한 마찬가지다.

〈사진130·왼쪽〉 1998년 암사동에서 나온 신석기 시루. 〈사진131·오른쪽 큰 사진〉 고산리 융기문토기. 높이 27cm. 국립제주박물관. 〈사진132·오른쪽 아래 왼쪽 작은 사진><133·오른쪽 아래 오른쪽 작은 사진 〉 제주도 삼화지구유적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조각.
 
암사동과 고산리 신석기인의 그릇 무늬
 
 우리 신석기학계의 제주도 토기 연구 논문을 살펴보면, 고산리를 비롯하여 제주도 여러 지역 토기를 내륙의 ‘빗살무늬토기’ 문화권과는 성질이 아주 다른 것으로 놓고 분석한다. 그런데 〈사진132-3〉(삼화지구유적)을 보면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무늬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박근태(2012)가 〈제주도 초창기단계 유적출토 점열문토기 문양대〉에 정리한 토기 조각 표가 있다. 그는 ‘점열문(점점이 점을 찍은 무늬)’ 무늬만 모아 네 종류(능형문, 사선문, 수직문, 방격문)로 분류한다. 그런데 이 ‘점열문’ 토기는 모두 암사동에서 볼 수 있는 무늬이고, 하늘 속을 표현한 것은 6점, 구름을 표현한 것은 11점(여기서 삼각형 구름은 7점), 내리는 비를 표현한 것은 5점이다. 이 가운데 〈사진132-3〉은 암사동 신석기 그릇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각형 구름이다. 그리고 이 두 무늬는 점열문이면서 ‘빗살무늬’다. 나는 신석기학계와 달리 암사동 빗살무늬토기와 제주도 융기문토기·고산리식토기의 무늬를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본다.
 
2차원 평면화와 3차원 입체화
 
 암사동 신석기인은 〈사진130〉에서 보는 것처럼 뭉게구름을 반원형으로 그렸다. 그리고 하늘에 길게 떠 있는 구름(층적운, 층쌘구름)을 꽈배기 모양으로 표현했다. 이 두 구름을 점점이 점을 찍어 나타냈는데, 이 점은 구름 속의 수분(물기)이다(반원·반타원형·삼각형 구름에 대해서는 앞 글 〈6000년 전 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린 서울 하늘 뭉게구름〉http://omn.kr/1eyhg을 참조 바람).

 암사동 신석기인이 층쌘구름을 꽈배기 모양으로 표현했다면, 고산리 신석기인은 〈사진131〉과 같이 덧띠를 구불구불 붙여 나타냈다. 암사동 신석기인은 ‘실제 구름(3차원 입체)’을 그릇 평면에 그릴 때 초등학교 1, 2학년처럼 2차원 평면화의 성격을 살려 그렸다고 볼 수 있다. x축이든 y축이든 어느 한 축에서 본 구름을 1차원 평면에 그린 것이다. 이것은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사람 코를 그릴 때 점이나 작대기 하나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 그에 견주어 고산리 신석기인은 1차원 평면에 실제 구름 이미지를 최대한 살려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1차원 평면에 3차원 입체 구름을 그리는 것이다. 이는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이 사람 코를 그릴 때 x, y, z축에서 본 것을 종합하여 입체로 그리는 것과 같다. 물론 반죽 흙 평면에 입체를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고려 상감청자와 조선 청화백자에서 온전히 실현된다.

〈사진134-5·왼쪽부터〉 러시아 아무르 강 하류 수추 섬 신석기 유적지에서 나온 토기. 2000년 출토. 기원전 4000년 무렵.
 
아무르 강 수추 섬 신석기인이 새긴 구름과 비
 
 〈사진134-5〉 토기 조각은 러시아 아무르 강 하류 수추 섬 신석기 유적지에서 나온 것이다. 수추 섬 신석기 유적 발굴조사는 우리나라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러시아 고고학민족학연구소가 공동으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조사했다. 〈사진134-5〉는 제1차 발굴조사 보고서에 있는 토기 그림이다. 두 연구소는 공동으로 발굴조사 보고서를 냈는데, 두 연구소 모두 수추 섬 신석기인이 그릇에 무엇을 새겼는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수추 섬 신석기 유적은 기원전 4000년에서 2000년 무렵의 주거지인데, 이곳에서 나온 그릇 무늬를 보면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더구나 이 무늬는 암사동 신석기 빗살무늬 패턴과 아주 닮아 있다. 수추 섬 신석기인은 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랬듯 그릇 아가리 쪽에 하늘 속 물(水, 雨·雪)을 먼저 새기고, 그 아래에 구름을, 또 그 아래에는 비(雨)와 눈(雪)을 새겼다. 다만 비(雨)는 〈사진134〉에서 보는 것처럼 빗줄기(암사동)가 아니고 빗방울로 표현했다. 눈은 엄지 끝으로 꾹꾹 누른 것처럼 움푹 들어간 무늬로 나타냈다.

 먼저 구름무늬를 보면, 이 무늬는 암사동보다는 〈사진131〉 고산리 융기문토기 무늬와 비슷하다. 수추 섬 신석기인은 고산리 신석기인이 그런 것처럼 1차원 그릇 평면에 3차원 입체에 가까운 구름무늬를 새겼다고 볼 수 있다.
김찬곤(광주대학교 기초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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