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고산리식토기 무늬

▲ 〈사진136·왼쪽〉 스페인 알타미라 석회암 동굴의 상처 입은 들소. 기원전 13000년 전. 〈사진137·오른쪽〉 코스텐키 비너스. 1988년 러시아 돈 강 코스텐키(kostenki) 구석기 유적지에서 나온 비너스다. 구석기 솔류트레기(기원전 25,000∼20,000년).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나온 지 벌써 94년째 되어간다. 그 오랫동안 우리는 빗살무늬의 뜻을 풀지 못했다. 8000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생선뼈무늬’라 했다. 본보는 수 차례에 걸친 기획을 통해 세계 신석기 그릇 문화사 속에서 한반도 신석기 빗살무늬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한다. 한반도 빗살무늬의 비밀을 푸는 일은 한국·중국·일본·베트남 신석기인의 세계관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이고, 그와 더불어 세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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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미술의 전통, 리얼리즘
 
 러시아 아무르 강 수추 섬과 제주도 고산리 신석기인은 구름을 왜 입체에 가깝게 표현했을까. 두 지역 그릇 무늬는 신석기 미술사에서 아주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나는 아직까지 수추 섬과 고산리 융기문토기·고산리식토기 말고는 이런 입체 구름무늬를 본 적이 없다. 답은 구석기인의 미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868년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1940년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1908년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와 1988년 러시아 돈 강 유역 코스텐키 구석기 유적지에서 비너스가 나왔다. 두 벽화를 비너스를 보면 구석기 미술이 ‘사실주의(또는 자연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136〉은 동굴 천정에 그린 상처 입은 들소 그림이다. 기원전 1만 3000년 전 스페인 알타미라 구석기인은 상처 입은 들소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렸다. 더구나 그는 천정에서 볼록 튀어나온 곳을 찾아 거기에 맞게 상처 입은 들소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그렸다. 이뿐만 아니라 갈라진 틈으로 동물의 윤곽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진136〉에서 왼쪽 윤곽선은 그린 선이 아니라 갈라진 틈이다.

 〈사진137〉은 기원전 2만 5000년 전 러시아 코스텐키 구석기 유적지에서 나온 비너스다. 만삭인 구석기 여인을 조각했는데, 머리에는 숏비니를 쓰고, 고개를 약간 수그리고 있다. 눈코입은 일부러 그리지 않았다. 팔 두께와 발 길이가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있는데 이는 이렇게 조각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있다(이에 대해서는 앞 글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울산 신암리 여인상http://omn.kr/rnsz〉 연재글 세 편을 참조하기 바람). 이 구석기 비너스의 압권은 뒷모습이다. 만삭인 여자의 허리, 골반, 엉덩이를 아주 정확하게 붙잡아 조각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코스텐키 비너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구석기 미술은 추상미술이 아니라 구상 미술이고, 평면 미술이 아니라 입체 미술이다. 그리고 완벽한 ‘사실주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된 까닭은 다각도로 연구해 볼 수 있지만 우선 당시 구석기인들의 처지와 관련이 깊다. 먹이사슬의 중상층에 놓여 있던 구석기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늘 입체로 보아야 했고, 언제나 눈과 감각의 촉수를 열어 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사진138·왼쪽〉 일본 신석기 조몬 중기 기원전 3000년 무렵 토기. 〈사진139·중앙〉 조몬 중기 기원전 2500년 무렵 토기. 〈사진140·오른쪽〉 조몬 후기 기원전 2000년 무렵 토기. 몸통 가운데 새끼줄 무늬가 있고, 매듭을 지은 것도 보인다. 일본 고고학계는 이 새끼줄과 매듭의 의미를 아직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줄과 매듭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밝힐 것이다.
 
‘화염형’ 토기가 아니라 ‘비구름’ 토기
 
 세계 신석기 미술사에서 가장 놀라운 미술은 일본의 조몬토기다. ‘조몬(繩文 줄승·무늬문)토기’는 말 그대로 줄(끈, 새끼줄) 같은 덧띠 무늬가 있는 토기를 말하지만(〈사진140〉 참조), 지금은 일본 ‘신석기 토기’를 두루 말할 때 쓴다. (그렇다고 해서 조몬토기가 모두 끈 무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이것을 끈으로 봐야 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 토기는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다. 그런 만큼 일본은 이 토기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다. 1877년 동경 오오모리 조개무지에서 처음 나왔는데, 그 뒤 142년이 흘렀는데도 일본 학계는 아직까지 이 토기의 무늬를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138〉 그릇은 일본 신석기 그릇 역사에서 가장 번성했던 조몬 중기 토기다. 일본 학계는 이 토기를 ‘화염(불꽃)형’ 토기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불꽃이 아니라 ‘구름’으로 봐야 한다. (세계 신석기 그릇에서 불꽃을 아가리 쪽에 표현한 그릇은 찾아볼 수 없다) 〈사진138〉보다 더 나중 그릇인 〈사진139〉를 보면 무늬가 훨씬 단순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답은 언제나 이렇게 무늬가 단순해지는 말기나 번성하기 전 초기 그릇에서 찾아야 한다.

 〈사진139〉는 조몬 중기에서도 더 나중 그릇이다. 〈사진138〉에 견주어 무늬가 간결해졌는데, 그래도 아가리 쪽은 여전히 복잡하다. 둥근 고리 모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더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아가리에서 몸통까지 낸 무늬는 구름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사진138〉 몸통 무늬도 구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몸통 아래 밑굽 쪽은 빗줄기(雨)다. 이렇게 봤을 때 일본 신석기 조몬인 또한 암사동 신석기인과 마찬가지로 그릇에 구름과 비를 새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구름을 〈사진138〉처럼 3차원 입체로 표현했을까. 이는 구석기 미술 전통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섬나라 일본은 대륙의 신석기 미술과 달리 구석기 사실주의 미술 전통이 그만큼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제주도 신석기인 또한 바닷물로 내륙과 분리되면서 구석기 리얼리즘 전통이 기원전 8000년 무렵까지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는 앞 글(‘한국미술의 기원, 드디어 풀리다’ 참조 바람http://omn.kr/1gvqo)에서 살펴본 고산리 ‘융기문토기’(〈사진131〉)의 구름무늬와 지금 다루는 ‘고산리식토기’의 구름무늬에서 찾을 수 있다.

〈사진141〉 네덜란드 영화 〈레지스탕스 뱅커〉(2018, 요람 뤼르센 감독)의 한 장면.
 
한국미술의 기원은 ‘추상미술’이 아니라 ‘리얼리즘’
 
 〈사진141〉은 네덜란드 영화 〈레지스탕스 뱅커〉(2018)의 한 장면이다. 신석기 시대 제주도 고산리 앞바다 구름도 어떤 날은 이와 같았을 것이다. 고산리 신석기인은 이 구름을 그릇에 담고 싶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방법을 궁리했고, 흙 반죽에 우연히 풀대 몇 가닥이 들어갔을 때 그릇 겉면 무늬가 저와 같았다는 것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릇을 빚은 다음 억새, 기장, 강아지풀, 쇠풀, 잔디 풀대 같은 것을 뜯어다 그릇 표면에 붙였다. 처음에는 손바닥으로, 그 다음에는 넓적한 돌로 두드려 붙였다. 하지만 생각한 대로 구름무늬가 나오지 않았다. 앞에서 든 〈사진129〉 같은 구름무늬만 나왔다.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다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궁리해 낸다. 걸쭉한 흙물에 풀대와 잎사귀를 넣고 그것을 휘휘 저어 막 빚은 그릇에 바르고 물 손질을 한다. 그런 다음 그늘에 살짝 말렸다가 넓적한 돌로 두드려 풀대와 풀잎을 그릇 표면에 붙이고, 마지막으로 풀대 없는 걸쭉한 흙물로 슬립(slip), 즉 물 손질을 한 번 더 했다.

〈사진142-3·왼쪽부터〉 제주 고산리 유적 제2구역에서 나온 고산리식토기 조각. 《제주 고산리유적Ⅰ(2구역)》(2017, 제주고고학연구소)
 
 위 〈사진142-3〉을 〈사진129〉와 견주어 보면 구름무늬가 얼마나 자연스러워졌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사진143〉의 동그랗게 말린 풀대와 풀잎을 보면 확실히 차이가 난다. 이렇게 하니 구름무늬가 훨씬 자연스럽고 슬립(slip) 효과도 났다. 고산리 신석기 장인은 마침내 1차원 그릇 평면에 3차원 입체 구름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는 세계 신석기 미술사에서 고산리 말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의 신석기 조몬인이 그릇 아가리에 3차원 입체 구름을 아주 빚어 붙였다면 제주도 고산리 신석기인은 1차원 그릇 표면에 3차원 입체 구름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 한국미술의 기원이 입체화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국미술의 기원이 ‘추상미술’이 아니라 ‘리얼리즘, 사실주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가 신홍직의 〈우포의 저녁노을〉(2018).

 위 작품(〈사진144〉)은 화가 신홍직의 〈우포의 저녁노을〉(2018)이다. 그는 나이프와 손끝으로 구름을 아주 강렬하게 그리고 있다. 구름에는 바람과 힘이 실려 있고, 물감을 부조처럼 튀어나오게 하여 1차원 평면에 3차원 입체 구름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화가 신홍직의 구름 연작을 보면서 고산리 신석기인을 떠올렸다. 자그마치 지금으로부터 1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도 예술가의 정신은 이렇게 이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찬곤<광주대학교 기초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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