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두방송 박영순 열사 스토리 재조명
안종필 열사 이야기, 조카가 증언 나서

▲ 제39주년 5·18민중항쟁 기념식이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치러졌다.
5·18 이후 39번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마음 속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증언이 눈물샘을 자극했다.

제39주년 5·18민중항쟁 기념식이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치러졌다.

기념공연은 80년 5월27일 새벽 최후항전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고 안종필 열사의 어머니 이야기와 5·18 당시 도청 앞 가두방송을 진행한 박영순 씨의 이야기로 채워져 많은 이들을 눈물 짓게 했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 입니다. 시민 여러분, 우릴 잊지 말아주십시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진압작전 직전까지 방송을 했던 박영순 씨는 80년 5월 광주의 모습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위해 39년 만에 마이크를 잡았다.

박씨는 1980년 5월27일 오전 2시30분 전남도청 1층 상황실 옆 방송실에서 죽음을 앞둔 시민군의 상황을 마지막까지 알렸다.

당시 21살이던 박씨는 꿈 많은 아가씨였다. 송원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졸업을 앞두고 광주여고와 전남여고에서 학생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쳤다.
5·18 당시 가두방송 주인공인 박영순 씨.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박씨는 학생 한 명이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런 그녀에게 시민군이 다가와 광주 상황을 알리는 걸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박씨가 시민군을 도와 가두방송을 하게 된 동기다.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 입니다. 시민 여러분, 우릴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마지막 방송을 하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녀는 광주 상무대 보안실로 끌려가 두 달 넘게 모진 고문과 협박을 받아야 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박씨는 ‘계엄법 위반, 내란부화 수행죄’로 1년 실형 선고를 받고 6개월 복역하다 형 집행 면제로 풀려났다.

박씨는 오월민주어머니회에 몸담고 진실규명 활동에 앞장서 오고 있다.

박씨가 나레이션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기 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씨의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

몸이 아파 5·18 당시 아들을 붙잡지 못했던 어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과 고 안종필 열사의 조카 안혜진 씨가 하늘에 있는 삼촌에게 보낸 편지 글은 후세대로 이어진 역사의 아픔을 상기하게 했다.
고 안종필 열사의 조카 안혜진 씨가 삼촌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1980년 광주상고(현 동성고) 1학년이었던 안종필 열사는 5월27일 최후 항전장인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졌다.

안씨는 “삼촌이 도청에서 숨졌을 때 큰 형이었던 제 아버지는 모질고 힘든 상황을 모두 감당했다. 동생의 시신을 확인해야 했고, 쫓기다시피 망월동에 삼촌을 묻어야 했다. 너무 아파서 할머니에게 시신조차 보여주지 못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아버지는 평생을 아파하셨다. 엄청난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 가족처럼 광주의 1년은 5월로 시작해 5월로 끝난다. 1년 내내 5·18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한 도안 말을 잊지 못했다.

안씨는 “아픔은 기억으로 남고 슬픔은 한으로 남는다. 그 기억들을 다잡아 제 가슴에 간직하려고 한다. 삼촌을 기억하고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삼촌과 할머니를 위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안씨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기념식장에 울려 퍼지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참석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기념식 화면에 비친 안 열사 어머니 이정님 여사의 인터뷰 내용도 참석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 여사는 ‘1980년 5월24일 저녁 갑자기 아파서 배고프다는 막내아들(종철)에게 밥도 차려주지 못했다. 내가 안 아팠으면 너를 (못 가게) 잡았을 건데’라며 울먹였다.

안 열사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사진은 당시 계엄군 도청진압 작전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안 열사의 묘역을 참배하며 이 가족의 깊은 슬픔에 공감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5·18묘지를 찾아 고 김완봉·조사천·안종필 씨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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