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하라”, “무슨 낮짝으로” 반발
황,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팔뚝질도
헌화 무산…길 없는 곳으로 줄행랑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헌화를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에 대한 광주민심이 폭발했다.

황 대표는 5·18기념식에 참석해 오월영령들에게 헌화하고 묘역을 순례하려고 했으나, 진상규명과 망언 의원 처벌을 요구하는 광주시민들 저지에 부딪혀 끝내 추념탑 앞에서 발길을 돌려 담장을 뜯고 도망치듯 묘지를 빠져나갔다.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기념식이 진행되는 18일 5·18국립민주묘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기념식 참석을 위해 까만 넥타이를 찬 채 버스에서 내렸다.

묘지 입구에서부터 “황교안 물러가라”고 외치는 시민단체 회원들 사이를 뚫고 들어온 버스였다.

황 대표는 하차하자마자 성난 광주민심과 마주했다. 시민들은 5·18국립묘지 민주의문 앞에서 황 대표를 막아서고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사과부터 하고 와라” 등을 외치며 입구를 막아섰다.

일부 시민들은 “5·18발포명령 전두환 재수사”, “5·18광주 학살주범 전두환 추종하는 괴물 집단 자유한국당 즉각 해체하라”, “자유한국당 망원 의원 퇴출” 등의 현수막과 팻말을 들었다.

황 대표는 경호원들 호위 속에 민주의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기념식이 엄수되는 추념탑 주변까지 200여 미터를 전진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간 지점에 위치한 추념문까지 이동은 첩첩산중. 기념식에 초청된 시민만 비표를 받아 입장하는 행사장 주변과 달리, 민주의문 방면은 황 대표의 방문을 항의하기 위해 참석한 시민들이 모두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황교안 대표는 경호원들의 호위 아래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시민들 저지는 격렬했다. 사방에서 국화와 팻말, 구호가 날아들었다.

몸싸움도 격하게 벌어졌다. 기념식장 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호원들과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는 시민들이 부딪히면서 아찔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경호원과 경찰, 기자, 시민들이 한 데 엉켜버렸다. 촬영장비에 걸려 넘어지는 상황도 빈번했고, 끼인 시민들이 “밀지 말아달라”, “사람 다친다”고 호소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하지만 황 대표와 경호원들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일부 대학생들이 팔짱을 끼고 드러누워 기념식 참석을 막으려 했지만 우회해 돌아갔고, 넘어지는 시민들은 부축해 끌어내고 전진이 계속됐다.

비표 접수처를 지난 황교안 대표는 여전한 시민들의 야유와 사과 요구를 받으며 기념식장에 입장했다. 입장 기회를 갖지 못한 시민들은 접수처 앞에 모여 자유한국당 규탄 행동을 이어갔다.

기념식장에 들어선 황 대표를 문재인 대통령이 맞았다. “잘 오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이후 황 대표는 비교적 차분하게 기념식을 지켜봤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에선 예상과 달리 팔뚝질까지 하며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16년 이명박 정부 당시 총리 자격으로 참석한 5·18기념식에선 굳게 입을 다물었던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기념식이 마무리되고, 그는 5·18추념탑에 헌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다른 정치인들이 헌화를 진행하는 동안,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민경욱 대변인이 그의 옆에 섰다.

하지만 이내 시민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부딪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통해 “광주시민들게 미안하다”며 성난 민심을 달랬지만, 이는 “사과하지 않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호소로 이어지는 듯 했다.

시민들의 주된 요구는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사과하기 전엔 5월영령들을 만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황 대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대치 상황이 20여분이나 이어지자, 급기야 헌화를 포기했다. 발걸음을 돌렸다. 정문 큰길을 통해 들어올 때완 달리, 묘지 우측 샛길을 택했다.


들어서려는 자와 막아서는 자의 입장이 뒤바뀌었다. 시민들은 묘지를 빠져나가려는 황 대표를 향해 “사과하고 가라”고 외쳤다. 그는 역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까만 승합차 한 대가 그를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차는 규탄하는 시민들을 뒤로하고 황급히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진행방향은 막다른 길이었다. 시민들은 행여나 다시 돌아올까 싶어 기다렸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민중의소리의 보도를 통해 그가 탄 차가 묘지 한 쪽의 담장을 뜯어내고 도망치듯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길이 없는 곳이고, 횡단보도가 있는 언덕을 넘어 나간 것이다.

민중의소리 페이스북 캡처.

시민들은 허탈해했다. 그가 지난 인도와 횡단보도에는 흙으로 빚어진 바퀴자국만이 선명했다.

한 대학생은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가 무슨 낯짝으로 광주에 올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왜곡폄훼에 동참하는 자유한국당이 오월영령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도록 기필코 막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유가족들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성숙한 시민의식’ 부재가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광주시민 박형수 씨는 “기념식에 참석할 때마다 유족들의 절절한 목소리에 가슴 아프고 공감하며 돌아간다. 하지만 야당 대표의 식 참석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물리력으로 막아서면 다른 지역민들이 어떻게 보겠느냐”며 “이런 식의 대응이 되려 자유한국당을 돕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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