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부대 첫 희생 김경철 씨 모 임근단 씨
“이 한을 어찌” 기념식 후 묘비 안고 오열
“진상규명 발목 한국당 원망스럽다”

▲ 39년 전 공수부대의 구타로 아들 김경철 씨를 잃은 노모 임근단 씨가 18일 아들의 묘비 앞에서 흐느끼고 있다.
“그렇게 ‘살려 달라’ 애원을 혔는데, 곤봉에 두들겨 맞아서 디져브렀다는 거여.”

5·18민주묘역 한 묘비 앞에서 80대 노모가 흐느끼고 또 흐느꼈다.

18일 5·18민중항쟁 기념식이 열린 후 아들이 묻힌 곳을 찾은 임근단 씨는 39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며 오열했다.

노모가 찾은 묘지 번호 1-1엔 청각 장애인으로 공수부대의 무차별 구타에 숨진 첫 희생자 김경철 씨가 묻혀 있다.

“시신이 냉동실에 있었어. 추울까 싶어 옷을 갖고 가 입혔는데, 얼매나 많이 얻어 터졌던지… 볼 수가 없었어라. 그런 아들을 보고 손 한 번 얼굴 한 번 못 만져 본 기 한이여.”

39년 전 공수부대의 구타로 아들 김경철 씨를 잃은 노모 임근단 씨가 18일 아들의 묘비 앞에서 흐느끼고 있다.

24세였던 김씨는 5월18일 금남로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다 강경진압을 하던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타박상으로 숨졌다.

계엄군은 김씨가 진압과정에서 숨진 것을 당시에도 알았지만 ‘5공 전사’는 이를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 얼굴이 생생해서 몇 년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았어요. 남겨진 세 살짜리 어린것(손자) 키우느라 겨우 살았어.”

노모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 이후 39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더욱 서럽다고 했다.

“나와 같은 유가족들이 피로 물들었던 그 도청을 옛날 그 모습으로 지켜달라고 4년 째 농성을 하고 있소. 나이가 많아 복원도 못 보고 진상 규명도 암 것도 못 보고 가버릴까 싶당께.”

특히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이후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위원들이 여러 차례 문제가 되면서 구성이 늦어진 것과 관련해 노모는 절망하고 있었다.

39년 전 공수부대의 구타로 아들 김경철 씨를 잃은 노모 임근단 씨가 18일 아들의 묘비 앞에서 흐느끼고 있다.

“진상규명이 돼야 할 텐데 한 발짝도 못 갔잖소. 한국당이 원망스러워. 유공자가 무슨 잘못을 했간디 괴물집단으로 보고… 사람 같으면 하루 속히 뜻을 모아서 진상규명을 했으믄 하는 것 뿐이여.”

한국당은 이날 광주 시민들로부터 5·18 역사왜곡 처벌법 처리 지연과 ‘5·18 망언’ 의원 3인방(김순례·이종명·김진태) 의원의 징계 수위에 대한 항의 등을 이유로 거센 항의를 받았다.

노모 임씨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가슴 아파했다.

유가족들의 슬픔으로 가득찬 묘역을 둘러보던 경남지역 대학생 이건희 씨는 “(한국당에 대한 항의 등)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기념식이 됐다”면서 “5·18을 잘 알지 못하는 청년 세대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 행동의 시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이 끝난 이후에도 많은 참석자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묘비를 안고 흐느끼는 유가족들을 만나 가슴 아픈 사연들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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