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스틴’ 권윤덕 글 그림
(평화를 품은 책:2019)
다행인 것은 거짓말을 일삼는 이들과 달리 당시 계엄군이나 정보원 등 오월의 광주를 경험한 이들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헬기 사격이나 전두환 광주방문, 5·18 당시의 만행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외쳤던 광주 시민들의 피맺힌 절규가 명명백백히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광주는 불행한 시대에 희생양으로 말로 할 수 없는 아픔과 트라우마를 지니게 되었지만, 바로 그 피 흘린 광장에서부터 진정한 민주주의를 싹틔웠다. 수많은 문학과 예술이 그것들을 작품으로 만들어 왔고 작가라면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숙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발간된 그림책 ‘씩스틴’ (권윤덕 글 그림. 평화를 품은 책:2019) 역시 그러하다. 권윤덕 작가는 십여년 전 위안부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꽃할머니’(사계절) 를 시작으로 제주 4·3의 비극을 이야기한 ‘나무도장’(평화를품은책), 그리고 이번 광주 오월그림책 ‘씩스틴’(평화를품은책) 에 이르기까지 국가폭력에 대해 고발하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번 그림책은 씩스틴(M16)이라는 계엄군의 무기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내 이름은 씩스틴. 용맹스러운 계엄군 총이다.
절대 복종! 절대 충성! 임무를 완수하러 광장으로 간다. (‘씩스틴’ 본문 중)
책 내지 가득 일명 ‘개구리’라는 과거 군복의 진초록 무늬가 가득하다. 그것만으로도 오월의 엄혹했던 상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왜 계엄군을 상징하는 총 ‘씩스틴’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갔을까. 권윤덕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는 과정에서 읽어 내려간 많은 이야기와 자료 속에서 중심을 잡았다고 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구별은 분명해야 하고, 5·18의 비극을 만들어 낸 책임자에게는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끝내 옳은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 용기있는 사람들의 가능성과 희망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계엄군의 총 ‘씩스틴’은 그런 가능성과 희망을 대변하는 캐릭터 입니다. 또한 가해자가 시민들의 힘을 느끼면서 그동안 갖고 있던 신념 같은 것들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저항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씩스틴’ ‘작가 인터뷰’ 중)
계엄군의 입장에서 시민들의 저항을 ‘폭도’라고 믿고 있던 씩스틴은, 죽음앞에서도 변함없이 저항하고 이웃을 지키고 돌보는 시민들을 보면서 점차 마음을 바꾸어 간다. 숭고한 아름다움에 결국 시민을 지키는 총이 되기로 한 것이다.
계엄군이 허둥지둥 광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계엄군 끄트머리에서 머뭇거리다가 씨앗망울에게 말했다.
“계엄군이 광장으로 다시 쳐들어올 거야. 헬기와 탱크까지 몰고 밀려올 거야.”
두려움에 싸인 내 눈을 보며 씨앗망울이 말했다.
“그래도 광장에는 시민들이 점점 많아 질거야. 그것이 우리의 무기야.”
나는 씨앗망울과 함께 광장에 남았다. (‘씩스틴’ 본문 중)
광주 오월이 광주 지역의 아픔을 넘어서 민주주의 운동의 발화로 의미를 갖고, 나아가 세계 민주인권의 상징이 된 이유는 국가폭력에 저항한 시민들의 ‘정의로운 폭력’이었기 때문이고, 계엄군의 학살 한가운데에서도 광주시민들이 하나 되어 평등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대동세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피어오른 ‘민주주의’라는 씨앗망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촛불혁명을 가능하게 했으며, 여전히 우리에게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연대하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있다. 광장에 남아 시민들을 지키는 씩스틴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젠 해마다 오월이면 흘리는 눈물이 아픔과 원한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우리사회가 나아갈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세상을 위해 오월의 아픔이 진정으로 꽃피울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란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