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혜옥 할머니 유족 5·18묘지서
주한 일본대사와 조우
“근로정신대 피해자 묘소 가보겠나”
제안에 말 없이 발길 돌려

▲ 21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나가미네 대사는 이날 5·18묘지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 고 김혜옥 할머니 아들 안호걸 씨와 만나 할머니의 묘소 방문을 제안 받았지만 말 없이 발길을 돌렸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현장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 유족을 만나 피해자 묘소 방문을 제안 받았지만 이를 ‘외면’했다.

21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 고 김혜옥 할머니의 아들 안호길 씨가 이날 오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그런데 마침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안호걸 씨와 조우하게 됐다.

나가미네 대사는 특별한 경호나 의전 없이 부인, 딸과 함께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했다.

안 씨는 처음엔 일본 대사인 줄 몰랐다가 묘지 방명록에 남겨진 이름을 보고 일본 대사인 것을 알게 됐다.

나가미네 대사는 이날 광주시청에서 이용섭 시장과 접견한 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협력 등을 논의한 뒤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가미네 대사는 국립5·18민주묘지 측 안내에 따라 분향과 헌화를 마치고 묵념을 한 뒤 이어 5·18민중항쟁 최초 희생자인 1묘역 1번 고 김경철 열사 묘소에 들려 안내원으로부터 차분히 설명을 들었다.

민주의 문에서부터 대사 일행을 지켜보던 안호걸 씨는 묘지 안내가 끝난 것을 보고 나가미네 대사에 다가가 “이 곳에 미쓰비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묘소가 있는데, 한번 찾아 보실 의향이 있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가미네 대사는 잠시 생각하다 특별한 말 없이 발길을 돌렸다.

이에 대해 안호걸 씨는 “특별한 의전도 없이 소박하게 5·18 묘소를 방문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최근 한·일 간 여러 문제가 있다 보니 근로정신대 피해자 묘소를 방문하는 데는 복잡한 심경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자식으로서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런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고 김혜옥 할머니는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1999년 3월1일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으며,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 기각 결정이 내려진 다음해인 2009년 7월25일 별세했다.

근로정신대 피해로 인한 고통을 안고 살아온 김혜옥 할머니는 1980년 5·18 당시에는 계엄군에 끌려가는 대학생을 돕다 부상을 입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현재 6묘역 67번에 안장돼 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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