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주와 남편의 혼령 ‘2인극’
“왜 이런 스토리인가?”
배경 이상 의미 찾기 어려워

▲ 연극 ‘옥주’의 한 장면. 극단 푸른연극마을 제공
 ‘극단 푸른연극마을’의 ‘옥주’를 보러 ‘연바람 씨어터’에 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광주에서 연극작업을 하는 곳은 여기뿐인가? 물론 상무지구에 있는 ‘기분좋은극장’하고 충장로에 있는 ‘충장아트홀’, 그리고 유스퀘어에 있는 ‘동산아트홀’에서는 거의 쉬지 않고 공연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런 대관용 공연 말고 자체적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공연을 하는 곳은 여기, ‘푸른연극마을’뿐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옥주’는 2인극이었다. 옥주라는 80넘은 여인과 젊어서 객사한 옥주의 남편 만식의 혼령, 이렇게 둘이서 극을 끌어간다. 2인극을 볼 때면 자동적으로 드는 생각이 ‘왜 등장인물을 둘로 설정했을까’이다. 극단에 ‘배우가 둘밖에 없어서’와 같은 에피소드적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는 게,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옥주’에서는 옥주와 남편 만식의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서 두 사람만 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제멋대로 살고 용서받는 남성 환타지?
 
 옥주의 삶은 신산했다. 특히 만식을 만나 아이를 낳고 살면서는 더 신산했다. 왜냐하면 남편이라는 자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객지를 떠돌았고, 두 집 살림을 했으며, 결국 객사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젊어서 죽어버리는 바람에 옥주 혼자서 남은 아이들을 키우느라 세월을 다 보냈고, 80이 넘은 지금도 자식들 걱정에 제 몸 돌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철 지난 스토리를 대하면서 공연 내내 의문이 들었다. 왜, 왜 이런 스토리인가.

연극 ‘옥주’의 한 장면. 극단 푸른연극마을 제공

 ‘옥주’의 무대는 지하철역이다. 처음에는 기차역인가 싶기도 했는데, 지하철역이었다. 역이라는 장소는 그렇다. 출발과 도착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그 떠남과 돌아옴이 순환되는 곳이다. 그러니 옥주라는 아주 늙은 여인과 그 여인의 남편이 혼령으로 등장한다면 이제 옥주의 이승에서의 여행이 마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옥주가 남편의 혼령과 주고받는 대사들을 듣고 있으면 이승을 떠나기 전에 자체적으로 살풀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네가 잘하진 않았지만 우리 인생이 다 그렇지. 즐거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화나는 일도 있고 그런 거지. 뭐, 이런 느낌? 그런데 일 더하기 일 같은 이런 얘기를 ‘극단 푸른연극마을’은 왜 하고 있는 것일까?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 텅 빈 무대를 바라보면서 나는 한 가지 설레는 기대를 했는데 무대에 설치되어 있는 공중화장실 덕분이었다. 공중전화와 자동매표소 옆에 공들여 만든 남녀공중화장실을 보면서 나는 의아심과 함께 흥미를 느꼈다. 그런데 그 화장실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공중전화는 옥주가 딸네 집에 다니러 가려고 역에 왔다는 정보를 주는 데 이용되었고, 자동판매기도 나름의 역할을 했지만 공중화장실은 그 세트를 만든 스태프의 노력이 불쌍할 정도로 그냥 거기에 있었다.

연극 ‘옥주’의 한 장면. 극단 푸른연극마을 제공
 
▲쿨하게 용서하는 여성들의 환타지?
 
 ‘푸른연극마을’의 이번 ‘옥주’가 바로 그 공중화장실 같지 않았나 싶다. 뭔가 그럴듯하게 거기 있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세트 같은 것. 그냥 배경. 이미 페미니즘이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는 2019년에, 우리 옛 어머니들은 이런 삶(페미니즘 따위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해주고 있는 시대적 배경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면 이 연극은 자기 멋대로 삶을 살고도 마지막 순간에는 여자의 용서를 받는 남성들의 환타지를 실현하고 있는 연극인가? 아니면 80평생을 힘들고 고생스럽게 살았지만 그 원인 제공자를 마지막 순간에는 쿨하게 용서하는 여자들의 환타지인가?

 우리나라의 문화중심지(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연극들(대체로 로맨틱코미디)을 가지고 내려오는 ‘기분좋은극장’이나 ‘충장아트홀’ 혹은 ‘동산아트홀’과 달리 작품을 직접 만들어서 공연하려고 하는 ‘푸른연극마을’과 같은 지역 극단들을 나는 지지한다. 하지만 서사와 공연형식에 있어서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 또한 나는 바란다. 왜 하필 지금 이런 옛 이야기를 가지고 극을 만들었는지, 그 극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충분히 토의하고 만든 것인지 궁금하다.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스토리는 소설에서 신경숙 하나로 충분하다고 본다. 연극은 좀 더 선구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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