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들꽃:우리 들에 사는 꽃들의 모든 것’
김진석, 김종환, 김중현 공저 (돌베개:2018)

 6월로 접어들면서 녹음은 더 짙어지고 곳곳에 여름햇빛 같은 장미가 한창이다. 어느새 여름임을 실감한다. 이런 날은 산길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어느 계절이나 숲속을 거니는 것은 황홀한 일이지만, 그래도 6월의 짙푸른 녹음 사이의 산 속 오솔길만한 나들이도 없다.

 6월 첫날, 동네책방 숨의 독자들이 무등산 원효사 입구에 모였다. 한 손에는 생소한 관찰경 ‘루페’를 하나씩 들고, 또 다른 손에는 두툼한 식물도감 ‘한국의 들꽃’(돌베개)을 들고서다. 사실 식물도감은 도서관 책상에 앉아서 펼쳐 볼 만한 사전류에 해당한다. 이 큰 책을 굳이 들고 나선 이유는 책의 저자와 함께 하는 무등산 생태나들이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도착해 있던 저자 김종환 박사는 “고사리가 그려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접니다”라며 문자를 보내온 터였다. 자기소개부터 남다른 이는 바로 ‘한국의 들꽃:우리 들에 사는 꽃들의 모든 것’(김진석, 김종환, 김중현 공저:돌베개) 공동저자 중 한명으로 광주에 살고 있었으며 그 덕분에 우리 책방은 저자와 함께 하는 생태나들이를 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된 것이다. 김종환 박사는 담양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산과 들로 다니면서 식물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걸 보니 그에게 들꽃과 풀과 식물은 늘 함께 하는 친구였겠구나 싶다. 아직 못 간 백령도를 빼고는 남한에서 안가본 데가 없이 다니며 식물을 연구한 그는 특별히 “벼과·사초과” 분야에 권위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강가·바닷가·습지 또는 길가·농경지·민가 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1,140분류군의 초본류가 수록된 도감이다. 저자들은 한반도에 자생하는 초본류를 들꽃과 산꽃으로 구분하고, 그 각각을 필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도감형태로 구성해 보기로 했다.…(중략)…이 책에 수록한 일부 분류군에서는 국명을 새로 명명했고 다른 학명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기존의 여러 식물도감에서 반복 재생산된 오류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다.…‘한국의 들꽃’은 정확도와 완성도 면에서 국내외 어떤 도감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자평한다. - ‘책머리에’에서
 
 미리 도착해 한 바퀴를 돌다가 발견해 따왔다며 오디와 수리딸기를 맞이선물로 주면서 어느새 질문을 시작했다. “다른 나무들은 대부분 열매 이름이 붙는데 왜 오디가 열리는 나무는 오디나무가 아니라 뽕나무일까요?” 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야기다. “사람들이 이름을 붙일 때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합니다. 다른 나무들은 열매를 주로 따 먹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뽕나무는 누에를 칠 때 꼭 필요한 잎-뽕잎을 오디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뽕나무라고 부른거예요.” 오디랑 수리딸기를 나눠먹으며 들으니 이야기가 쏙쏙 들어온다. 식물을 바라보고 이름을 부르면서도 무감했던 부분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이맘때는 산에 피었던 크고 작은 꽃들이 많이 질 때라 아쉽다면서 질문을 하나 더 한다. “포르노와 예술영화의 차이가 뭘까요?” 꽃 보러 왔는데 갑자기 포르노라니 이건 또 무슨 질문인걸까. “초첨의 차이입니다. 어디를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 말입니다. 꽃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쁘다고 꽃만 보고 그것만 사진을 찍는 것은 그 식물의 전체가 아닌 생식기만 보고 있는 셈이지요. 잎과 줄기까지 전체를 함께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식물을 만나는 겁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 보니 꽃은 지고 잎만 남아 길가의 풀 같았던 것들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식물을 만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식물 그 존재를 만나는 일인데, 인간의 취향과 재미를 위해 예쁜 것만 골라보고 멋진 것과 하찮은 것을 구분했던 것은 아닌가. “이거 여기선 보기 힘든 꽃인데 오늘 만났네요. 봄맞이꽃이라고 해요.” 너무 작아서 가져간 관찰경인 루페를 들고 들여다 보았다. 처음 사용하는 관찰경으로 바라 본 이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는 꽃이며 잎이며 줄기 등 자세히 천천히 볼수록 더 예쁘다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나들이 시작하고 얼마가지 않은 공터에서만 30분이 훌쩍 갔다. 그 곳에서도 얼마나 많은 식물들을 만났는지 우리는 모두 10대 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연 속에서는 모두 어린아이가 되는걸까. 걸어서 20분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를 여기저기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살펴보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김종환 박사의 마지막 당부말도 인상깊었다. “기본적인 이론공부와 현장의 식물들을 함께 만날 때 훨씬 깊어지고 의미 있어 집니다. 공부도 계속 하시고 집 근처 길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우리 들꽃들, 자세히 보아 주세요.”

 무등산에서 돌아와 익숙하지 않았던 도감을 펼쳐 보았다. 길가와 산에서 만났던 식물들을 찾아보니 왠지 더 반갑다. 아는 만큼 마음이 가는 거겠지. 생태나 환경을 위해 말로만 주장하기보다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좋겠구나 라는 것을 제대로 느낀 시간이었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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