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송몽규 문인들 삶 돌아봐

 하늘은 파랗고 높았으며 햇빛은 강렬하고 따가웠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구릉으로 부드럽게 이어지고 미끄러지듯 풀들이 깔려 있었다. 만주벌판이었다. 1900년대 중국으로 퍼져나간 선조들의 치열한 투쟁과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광활하면서도 청명하고 외로우면서도 삭막하지만은 않은 그 곳의 햇빛과 공기, 바람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삶을 떠 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6월 중순, 아는 이의 소개로 중국의 상해와 용정을 다녀왔다. 윤동주 문학을 공부하는 모임과 함께 한 이 여정에서, 독립열사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용정을 중심으로 초기 조선족들의 삶과 함께 윤동주·송몽규 두 젊은 문인들의 이야기를 실컷 나눌 수 있었다. 얼떨결에 참가하고 보니 모임에서는 이미 공부를 많이 해 온 터였는데, 연변출판사 등에서 만들어진 책, ‘송몽규 평전’이나 ‘중국 조선족 유래와 20세기 초기의 학교’ 등을 구해 보셨고 ‘윤동주 평전’ ‘아리랑’ ‘세여자’ ‘한국독립운동사’ 등 역시 틈틈이 읽어 왔다고 했다. 이미 일본 교토와 한국의 윤동주문학관 등 여러 곳을 거쳐 용정은 마지막 여정이었던 것이다.
 
▲윤동주 문학 공부모임과 함께
 
 상해에서는 임시정부 유적지를 비롯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임정요원이나 독립열사들의 수많은 항일투쟁의 사건을 만나고 어려웠던 시기 김구선생의 피난처가 되었던 항주일대도 다녀왔다. 당시 노선을 달리하여 골이 깊어갔던 소위 ‘좌-우’진영의 합작을 위해 독립 운동가들이 노력한 과정을 확인하기도 했다. 민족의 앞날을 위해 오늘을 불사르며 불꽃처럼 살았던 이들의 발자취를,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두고 만나니 감개무량할 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길로 이동해 용정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현장들을 방문해서는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나라가 사라지고 빼앗기는 그 엄혹했던 시절, 간도 만주지역으로 이주해 땅을 일구고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조선족들의 역사는 스스로 조선민족임을 잊지 않고 문화와 정신을 고고히 세우며 학교와 교회, 병원 등을 통해 기반을 다져 온, 그 자체로 독립투쟁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로 그치지 않고 조선족들의 삶 속에 여전히 흐르는 자부심과 독창적인 문화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연변조선족자치구’.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을 만나보니 무척 자랑스러웠고 동시에 그동안 국내에서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가를 떠올려보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흰 뫼가 우뚝코 은택이 호대한 한배검이 깃치신 이 터에 그 씨와 크신 뜻 넓히고 기르는 나의 명동(明東)’ - 명동학교가(明東學校歌)
 
 조선족의 초기 정착에 크게 기여한 여러 학교들, 그 중에서도 윤동주와 송몽규, 문익환 등 한국사에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한 용정의 명동학교 재현건물 입구에는 명동학교가(明東學校歌)가 적혀있다. 그 너른 벌판과 산을 누비며 문학이며 이상을 논했던 젊은 문학도들의 가슴에도 민족의 독립, 사람됨의 도리,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뜨거움이 불타올랐을 것이다. 그 절절함이 시가 되고 외침이 되었다.

 척박한 터전을 일구며 살아온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자부심이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곳마다 느낄 수 있었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묘소를 찾아 갔을 때, 근처 나무에 달려있던 하얀 종이꽃들은 용정에 있는 학교의 학생들이 때가 되면 찾아와 추모행사를 하며 매달아 놨던 것이라 했다. 그들에게는 박제된 옛 선조가 아닌 오늘날에도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삶에 열정을 부여하는 선배인 것이다. 그래서인가, 뜨거운 뙤악볕 아래 한 시간을 족히 걸어가 마주선 윤동주와 송몽규의 소박한 묘비 앞에서, 함께 시를 낭송하면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자꾸만 되 뇌이게 되었다.
 
▲연변서 만난 조선, 조선족
 
 마지막에 들른 연변의 서점에는 ‘연변인민출판사’를 비롯한 조선말로 된 도서들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조선족의 이야기와 윤동주 송몽규를 비롯해 해방 전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긴 강경애 문학가, 현재 인기 있다는 소설가 김혁 까지, 같은 언어인 듯 하나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가 그어 놓았던 경계가 의미 없음을 느꼈다.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뿌리와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조선족 연구자들을 확인하고는 무척 존경스러웠다.

 이번 여행에서의 가장 큰 수확은 연변에서 구입한 책들이다. 동네책방 숨 도서관 한 켠에 자리를 마련하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단절된 것은 국토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지만 또 이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송몽규 평전’ 리광인 박용일 저 (연변대학출판사)
 ‘고향으로부터 윤동주를 찾아서’ 박용일 편저 (흑룡강 조선민족 출판사)
 ‘윤동주 코드-29개의 코드로 풀어보는 스물아홉살 시인의 삶과 문학’ 김 혁 (연변인민출판사)
 ‘항일련군의 조선족녀전사들’ 리광인 림선옥 저 (연변인민출판사)
 ‘중국 조선족 유래와 20세기 초기의 학교’ 관봉 엮음 (자료집)
 ‘세월속의 용정’ 전광하 박용일 편저 (연변인민출판사)
 ‘민족문화경전이야기 총서 - 조선족’ 동진의 편저 김순옥 역 (료녕 민족출판사)
 ‘조선족 아동 민속놀이’ 리용득 수집 정리 (연변인민출판사)
 ‘해방전 중단편소설 정선’ 장춘식 편 (민족출판사)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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