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환자 등 죽음을 앞둔 환자와 그 가족이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17개월 만에 5만3900명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평균 3171명이 단지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를 거부하여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선택했다. 존엄사는 연명의료에 부정적인 노인 인식을 고려할 때 더욱 늘어날 것이다.
 
▲사회적 의제로서 존엄사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살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늙고 병들어 죽는다. 대자연에서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를 먹고 살다 죽은 후에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된다. 태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죽음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죽음도 자연스럽게 맞이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중환자를 더 이상 병원에 입원시키기 어렵다는 가족의 요청으로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한 후 퇴원시킨 의사가 처벌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연명치료는 관행이 되었다.

 이에 임종 환자에게 단지 생명을 연장시키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엄사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빗발쳤다. 세계 여러 나라는 엄격한 요건 아래 존엄사를 허용하는 분위기이다. 한국에서는 2016년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어 2018년 2월부터 시행중이다.
 
▲연명의료결정 실태

 최근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1년 5개월 만에 5만3900명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중 남성이 3만2460명(전체의 60.2%)이고 여성이 2만1440명(39.8%)이었다. 이들은 암을 비롯해 호흡기·심장·뇌 질환 등을 앓다가 존엄사를 결정했다. 연명의료는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말한다.

 2018년 2월부터 임종기에 접어든 말기 환자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 투석·항암제 투여 등 4가지 의료행위를 중단하거나 유보할 수 있었고, 2019년 3월말부터는 체외생명유지술(ECLS)·수혈·승압제 투여 등을 받아야 하는 환자도 이 법의 적용대상에 추가되었다.

 복지부가 발표한 존엄사 수는 이 법에 의해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이고, 환자가 중병이나 노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드린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연명의료결정을 위한 4가지 방법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는 데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19세 이상 모든 국민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법정기관에 보관해 놓거나, 말기·임종기 환자는 담당의사에게 의사를 밝혀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수 있다. 임종기 환자인지 여부는 해당 환자를 직접 진료한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인이 동일하게 판단해야 한다. 가족 2명 이상이 “평소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일치된 진술을 하거나 환자의 뜻을 모를 때는 가족 전원이 동의하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법이 시행된 초기라서 환자의 의지보다는 가족의 합의와 결정에 의해 연명의료를 유보·중단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족 전원이 합의한 경우가 전체의 34.8%이고, 가족 2명 이상의 일치된 진술로 결정한 경우가 32.3%로 전체의 67.1%를 가족이 결정했다. 이는 환자가 미처 의료의향서나 의료계획서 등을 쓰지 못한 채 임종기에 접어든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의사를 반영하여 담당 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경우도 전체의 31.9%이었다. 말기암환자는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진통이 가중되기에 진통제 처방과 같은 의료행위만 하고 죽음을 받아드린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였다가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는 방법

 존엄사를 선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본인이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서 보관하는 방법이다. 이 의향서는 나중에서 아파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등록기관(예,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을 방문하여 충분한 설명을 듣고 본인이 작성해서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야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2019년 6월말까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 사람은 25만6025명이었다. 그중 여성이 17만9056명으로 약 70%이고, 남성은 7만6969명으로 30%이었다. 이는 주로 가족에 의해 연명의료를 결정하여 존엄사를 한 경우에는 남성이 약 60%인 것과 비교된다. 즉, 존엄사는 남성이 많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 사람은 여성이 훨씬 많다. 여성은 수명이 더 길기에 배우자나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미리 의사표명을 하여 문서로 남기는 듯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의 수는 급속히 늘고 있다. 2019년 2월말에 11만 명이었는데, 4월 만에 2.3배로 늘었다. 연명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와 웰다잉 교육을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은 단지 생명연장만을 위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가진 사람이 90%이상이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존엄사는 새 문화로 정착될 것이다.
 
▲연명의료결정에서 보완할 점

 연명의료결정에서 보완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연명의료의 중단 혹은 보류를 결정하는 주체가 본인보다는 가족이 많다는 것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가급적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좋고, 가족도 본인의 평소 뜻을 반영하여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기 어려운 환자는 가족만이 연명의료결정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무연고자, 독거노인 등과 같이 가족이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 이다.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이들의 존엄사는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들은 임종기에 연명의료에 방임되기 쉽고, 단지 생명 연장만을 위해 비싼 의료비가 들어 사회적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연명의료결정이 오남용되는 상황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망보험금을 타기 위해 연명의료결정이 활용될 경우이다. 연명의료 중단에 의한 사망이 보험금 지급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망보험금은 물론 실손의료보험금에도 존엄사 관련 법규와 약관이 보다 광범위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병원이외의 곳에서 죽을 환경

 존엄사 문화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병원이외의 곳에서도 맞이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집이나 병원이 아닌 곳에서 지내는 임종기 환자도 생명이 위독하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응급실로 가지만 환자는 영안실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사망하면 반드시 112나 119로 신고하고, 경찰이 사인을 확인한 후 지정된 병원으로 옮겨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받아야 장례를 치루는 절차 때문이다. 병원 혹은 응급차량에서 사망한 경우에는 사망진단서거 쉽게 나오지만, 집에서 사망한 경우에는 경찰이 사인을 밝히기 위해 유족을 조사하여 불편하기 때문이다.

 임종기 환자라는 진단서가 있고 일정한 기간 안에 사망한 경우와 고령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사망확인을 보다 쉽게 해야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문화도 정착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살고 죽을 권리가 있다.

참고=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https://www.lst.go.kr

이용교 <광주대학교 교수, 복지평론가>
ewelfa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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