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반 성격 동아리반에 시험문제 유출

▲ 광주지역 교육단체들이 지난달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시험지 유출 재발 사태와 관련 엄중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광주드림 자료사진>
명문고로 알려진 광주 사립 K고에서 발생한 시험문제 유출 사태는 ‘차별’에 분노한 재학생의 제보로 촉발됐다. 이 학교 3학년 A학생은 지난달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험문제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장문의 글을 올렸고, 해당 내용을 언론이 연이어 다루면서 본격적인 수사궤도에 올랐다.

지난 13일 광주시교육청이 발표한 K고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이 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 내신 1·2등급 상위학생들로 꾸려진 소위 ‘특별반(심화반)’을 대상으로 별도의 수업을 진행했고, 이 학생들에게만 특정 문제집의 기출문제집을 제공했다. 기말고사 시험문제 5문제가 그 문제집 문제들 가운데 그대로 출제된 것이다.

이밖에도 감사 결과, K고는 ‘기숙사반(심화반)’이라 불리는 상위권 학생들에게 이들의 대입에 유리한 선택과목(물리Ⅱ)을 전 학년이 필수 이수토록 해 학사운영 파행이 빚어지고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들에게는 더 좋은 시설의 자율학습 공간 제공, 두 배 정도 더 넓은 책상 비치 등 세세한 것까지 차별을 뒀다는 점이다.

이 학교는 현재 1학년 9학급, 2학년 10학급, 3학년 10학급을 운영 중이며, 각 학년별로 심화반 3개 반씩을 꾸려 운영중이다. 1학년은 3학급당 한 학급, 2·3학년은 인문계열 4개 학급에서 한 학급, 자연계 6학급에서 2개 심화반을 운영하고 있다.

현행법상 ‘스카이(SKY) 반’ ‘심화반’ 등 성적 우수자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이들을 특별관리하는 것은 불법이다.

▲재학생 SNS 문제제기 촉발…“인사도 안 받아줘”

학교가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상위권에게만 특혜를 주고도 모든 학생이 균등하게 누려야 할 학습권이 침해되는 것은 ‘나몰라라’ 한 셈이다. 서울대 잘 보내기로 소문난 K고는 교육의 근간이 돼야 할 ‘공정성’ 면에서 만큼은 빵점이었다.

시험문제 유출 의혹을 폭로한 A학생의 글은 세간에 주목을 받게 된 이후에 삭제됐다. 하지만 학생의 고발 내용이 이번 교육청의 감사결과 모두 사실로 확인되면서 재조명 받고 있다.

A학생의 글을 통해 시험문제 유출 건 이외에도 기숙사반이 아닌 학생들이 겪어온 각종 차별과 이로 인한 박탈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A학생은 “지난 7월5일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고 기숙사를 제외한 일반반 아이들의 3년간의 분노를 표출하려고 한다”며 글을 시작했다. 여기서 ‘기숙사 친구’들이란 ‘동아리’로 불리는 이른바 ‘심화반’ 과정 학생들을 가리킨다.

해당 글에 따르면, 기숙사 한 친구는 서술형 1번부터 6번까지 문제가 어디서 출제됐는지를 알고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유인물 5장을 보여줬다. 유인물에는 수학시험 객관식에서 나온 3문제와 서술형 2문제가 적혀 있었다. 5문제의 총점은 26점이었다.

K고가 지난 5일 치른 기말고사에 출제된 수학문제(위쪽)와 미리 나눠준 유인물. 해당 문항의 문제와 숫자 등이 모두 똑같다.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제공>

A학생은 “유인물을 보는 순간 손이 떨렸다. 놀란 나머지 반 친구들에게도 보여줬더니 친구들의 입에서 욕설과 분노가 치밀었다”고 전하며, “(유출 의혹이 불거진 문제들은) 상식적으로 내신 1·2등급 이하의 학생들에겐 현실적으로 (풀기에) 불가능한 시험이었다”고 덧붙였다.

화가 난 반 친구들은 담임교사부터 찾아가 문제를 제기했지만, “담임 선생님은 ‘너희들이 기숙사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안하는 것도 아니고 000 파이널 모의고사 문제집을 구입해 풀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셨다”며 되레 무책임한 발언으로 응수했다.

이어 A학생은 “K고는 광주에서 가장 대학을 잘 보내는 고등학교로 알려져 있다. 결과로 봤을 때는 명문학교이지만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정당하고 차별 없는 과정으로 이어왔을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기숙사반·자습실·책걸상 크기까지 ‘차별’ 만연

그는 “기숙사 말고는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이름도 못 외우는 선생님들이 명문학교라는 명예를 가지고 저희를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소수의 부정당한 행동으로 집단의 피해를 막기 위해 총대 메고 글을 작성한다”라며 글을 마쳤다.

학교도, 교사도 외면한 진실을 절박한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 A학생 글은 부당함과 차별대우에 익숙해져 버린 이 학교의 다른 학생들의 침묵을 깨기도 했다.

이 학교의 또 다른 재학생은 해당 글이 게재될 당시 본보와의 통화에서 “A학생이 적었듯, 기숙사 친구들과 일반 학생들에 대한 학교의 대우가 너무나도 다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똑같은 학생인데 성적이 낮다고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게 일상이다. 자연스럽게 기숙사 친구들과 벽이 생겼고, 이번 사태가 불거진 이후엔 갈등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엔 1학년에서도 제보를 통해 ‘수학 최고급반’ 교재로 사용된 문제집에서 문제 유출 의혹이 제기됐고, 교육청 감사 결과 사실로 확인돼 수사 의뢰 예정이다.

실제로 시교육청 감사팀은 이번에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K고는 성적우수자를 대상으로 기숙사 학생을 선발해 모든 교육활동이 기숙사 학생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는 사실을 공식화 했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 중인 학생들. <광주드림 자료사진>

감사팀은 “K고는 주요과목인 국어·영어·수학(20% 가중치) 성적으로 수준별 이동수업을 빙자한 우열반을 편성해 최상위 학생들을 별도로 수업하면서 일반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별도의 과목별 방과후학교·자율동아리, 토요논술교실까지 연계해 심화된 교육활동이 제공됐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에게는 일반 교실보다 더 넓은 공간에서 좋은 시설을 갖춘 자습공간을 사용하도록 했고, 일반 책상보다 2배 정도 되는 크기의 넓은 책상을 비치하는 등의 차별을 자행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숙사를 ‘성적 순’으로 입사시키는 관행은 다른 많은 학교에서도 뿌리 뽑지 못하고 유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광주 28개 고교 기숙사…“성적 순 입사가 관행”

지역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K고 사태가 불거지기 전인 7월 초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해 인권위 판단 결과 ‘성적만으로 기숙사 입사생을 선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며 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학벌없는사회는 “현재 광주 28개 고교가 기숙사를 운영 중인 가운데 22곳이 사립이고, 대다수 사립고가 기숙사 운영을 명문대 입시도구로 악용하거나 경쟁을 부추겨 왔다”며 “기숙사를 단계적으로 폐쇄 또는 축소해 모든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 ‘교육활동지원센터’ 등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실 2년 전에도 유사한 골자로 문제를 제기했던 학벌없는사회는 K고를 특정해 “이 학교는 기숙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재학생의 경우 1·2학기 합산 성적이 우수해야 하고, 신입생의 경우 진단평가와 내신 성적이 우수해야 한다”며 “기숙사 입사자가 기숙사 실이나 학교도서관, 학급교실 아닌 전용공간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것은 입사자와 비입사자 간의 위화감, 열등감, 소외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으며, 향후 학업성적에 따른 각종 차별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일반고 기숙사를 교육활동지원센터로 전환하는 것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2018년부터 3년 동안 18억원을 들여 9개교의 기숙사를 전환할 계획이었으나 올해의 경우 사립고는 신청이 전혀 없고 공립 1곳만 유일하게 신청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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