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교실’이 빚어낸 ‘신나는 수업’들
학생·교사·지역사가 만든 ‘신나고’
‘공예품’ 만들며 ‘진로교육’까지 연계
‘제2의 집=학교’ …복도도 ‘나야나’ 재구성

▲ 광산중 학생들이 꾸민 ‘나야나’ 복도.
 “학교에서 8시간 이상 있다 보면, 창틀 없는 감옥 같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책상 앞에 계속 앉아 있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마음이라도 편안한 공간, 친구들과 게임하고 놀 수 있는 곳, 스터디카페처럼 예쁜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늘 바랐어요.”

 광주 광산중학교 안에 ‘이상한 교실, 신나고’가 문을 열자 학생들의 바람이 단박에 이뤄졌다. 학생들이 직접 설계와 구성에 참여한 까닭에 원하는 공간의 모습을 최대로 구현해 낸 곳이다. 그래서 신나고는 학생들의 답답한 마음을 언제라도 품어줄 ‘제2의 집’과 같다.

 ‘신나고(새로운 나를 만나고)’는 광산구가 주관한 ‘문화예술플랫폼 엉뚱 사업’의 산물로 구에서 리모델링 비용 1000만 원을 지원 받아 2016년 12월 개소했다. 공간구성에 단계서부터 학생들과 교사, 마을예술가들이 머리를 맞댔고, 공간에 설치될 미술 작품과 가구 제작 역시 참여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주축이 됐다.

 광산중 신나고가 문을 연 지도 어느덧 3년차다. 여전히 집처럼 아늑하고, 카페처럼 멋스러운 공간으로서 그 존재감을 발휘 중이다. 이곳이 몇 년 전만해도 유휴공간으로 남을 한 ‘어학실’이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할 정도. 편안히 누울 소파, 함께 즐길 보드게임, 가장 손길이 많이 닿는 냉장고까지 없는 게 없다.

 그런데, 이제 교사와 학생들은 ‘신나고를 통해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원한다면 바꾸자, 어려워도 해보자”는 자신감이 그 근원이다. 신나고를 탄생시키며 몸으로 익힌 변화의 힘을 다른 공간을 바꾸고, 실제 교육과정에 녹여내는 데에 할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나고는 ‘진로교육’ 활동의 거점이 되고 있다. 목공과 바느질, 미싱작업 등 손으로 하는 공예품 제작, 요리와 랩 등 특색활동에도 큰 제약이 없다. 실제로 학교와 인접한 우산동 자치센터나 어등자활센터와 연계해 전문 강사를 초빙해 이곳에서 자유학기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른바 ‘소확목(소소하지만 확실한 목표 찾기)’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진로찾기의 일환이다. 그동안 ‘랩으로 하는 나의 이야기’ ‘바느질로 세상을 돕는 이들’ ‘함께 놀 수 있는 장기판·탁구채 만들기’ 등을 진행했다. 유·무형의 공간을 채우는 이들에게서 직접 전수받은 기술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높이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광산중 김찬미 교사(혁신기회)는 공간혁신과 진로교육이 연결될 수 있도록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랩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겐 랩을 알려줄 지도자가 필요하고, 미싱이나 바느질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인프라와 연계될 수 있도록 여러 곳에 문의를 드렸고, 다행히도 도움을 주셨어요. 덕분에 학생들에겐 함께 하는 작업의 힘이 매우 크다는 것을, 바느질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자유학기제로 진로체험에 참여한 학생들의 결과물은 학교를 꾸미거나 쓰임새 있게 활용되기도 했다. 목공 작업실이 있는 마지초 ‘메이커스 스페이스’를 찾아 탁구채를 만들어 ‘탁구대회’를 기획해 보고, 미싱으로 컵 받침 앞가리개를 제작해 강원도 산불 이재민 돕기 모금도 벌였다.

 그 사이에 공간혁신 대한 고민 역시 더 넓고 깊어졌다.

 “신나고의 경우, 3년 전 선배들이 꾸며 놓은 공간이지만 후배들에게도 의미를 갖게 되길 바랐습니다. 1학년은 특히 아직 ‘자신들의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공간을 찾아오라고 강요만 할 게 아니라 공간에서 신나는 일을 벌여 자발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게 먼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광산중 공간혁신의 일환으로 조성된 ‘신나고’(사진 아래). 학생들이 공간구상에 참여한 흔적들(사진 위).|||||

 신나고 공간을 지키는 ‘신다고단’ 학생들을 필두로 ‘금요일엔 신나고에서 만나요’ 이벤트를 진행한 것도 공간을 좀 더 친숙하게 느끼도록 했다.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해 시험기간엔 열람실로서 개방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신나고는 방학 기간엔 또래 멘토링 수업의 공간으로 학기 중엔 자유학기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또 이곳은 교사들의 연수공간뿐 아니라 학부모독서모임 공간,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행복학습센터 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공간은 상황과 목적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이는 학교 구석구석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서서히 공간 변화에 익숙해질 무렵, 이번엔 본관과 후관을 잇는 복도가 화려하게 변신했다. 신나고 개소 1년 만에 벌어진 또 다른 공간혁신이었다.

 “구름다리라고 불리는 복도는 보통 학생들이 겨울철 추우니까 빨리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어요. 기껏해야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넘어갈 일이 있는 정도였죠. 그런데 복도가 학생들의 손길, 눈길로 다듬어지고 더해지니 이제는 만남의 장소처럼 모여드는 명소가 됐습니다.”

 자유학년제 수업으로 예술강사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꾸민 복도의 이름은 ‘나야나’. 가수 워너원의 노래에서 착안해 이름을 붙였다. 무도회장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레이스 천이 천장을 장식했고, 창밖을 볼 수 있는 테이블에, 눈길이 머무는 타일 장식까지 아기자기한 공간이다. 이곳은 서로 본관과 후관에서 따로 생활하던 1학년과 2학년이 얼굴 부딪히고, 교류하는 장소로도 거듭났다.

 “환경이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교사들 역시 작지만 생활 속의 변화를 기획한다. 올해 2월 교육과정 워크숍에서 체육교사는 ‘교실 뒤편에 텐트나 해먹을 놓으면 어떨까’를 제안했고, 3학년 담임교사들은 ‘책 읽는 환경을 위해 교실과 복도를 카페처럼 꾸미면 어떨까’를 고민했다.

 광산중은 빛고을 혁신학교 4년차로 ‘독서교육’을 특색화 하고 있다. 독서동아리 활성화나 학생저자 발굴하기 등 집중적인 성과는 있었지만, 전교생에게 ‘책 읽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광산중 조윤호 혁신부장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학생들이 독서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은 어떤 공간인지 교사들이 먼저 고민하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구도로 고민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궁극적인 목표인 수업혁신에 도달하기 위해선 때로 학생들의 환경에 세심한 관심과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학교 선생님들이 말하고 우리는 듣는 곳인 줄 알았는데, 우리 모두가 주체가 되어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곳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요.”

 광산중 신나고를 거쳐 간 한 학생이 남긴 말이다. 공간이 바뀌니 학생이 바뀌고, 학교가 달라지고 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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