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미술관 검열’ 피해 제기 정유승 작가
“일방적·형식적 사과, 시립미술관 신뢰 잃어”

▲ 지난 8월29일 서구 상무지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정유승 작가가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작품 배제와 관련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8월30일 저녁 광주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시립미술관으로부터 전시 작품 배제를 당하고 사과를 요구해 왔던 정유승 작가는 이 사과문에 깊은 한숨만 내뱉었다.

 “2019 ‘Circulation Metaphor’ 전시 진행과정 중 발생한 전시담당자의 부적절한 발언과 해명에 대해 해당 작가 및 예술인 여러분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드립니다.”

 사과문이 올라온 당시 정 작가는 딱 여기까지만 읽고 그 이하의 내용은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러면 그냥 끝인가요?”

 시립미술관은 사과문과 함께 △출품작가 선정과정 투명성 강화 △전시기획 프로세스 정립 △큐레이터 소양교육 실시 등 ‘전시투명성 강화와 창작자 피해방지를 위한 후속대책’의 내용도 함께 공개했으나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뒷받침되지 않은 사과에 실망한 마당에 구체적 내용은 살펴볼 의지 자체가 생기지 않았던 것.

 작품이 갑자기 전시에서 배제된 이유, 이러한 결정에 시립미술관의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시립미술관은 대체 왜 몇 개월이나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는지 등 의문과 의혹은 쌓여만 가는 상황. 정 작가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분명한 해명을 사과문에 담아달라고 요구했으나 시립미술관은 이를 외면한채 ‘사과 드립니다’라는 달랑 한 문장을 들이밀었다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시립미술관 예술 주제를 차별”

 정 작가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제가 알고자 했던 의문, 의혹을 해명하는 문장 하나 없다”며 “이건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다. 형식적인 사과밖에 되진 않는다”고 심경을 밝혔다.

 예술창작 활동에 침해를 당한 작가를 두 번 울리는 사과문이 된 셈이다. ‘광주’에 따라 붙는 문화도시·인권도시라는 말들이 지금 정 작가에게 있어선 “껍데기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

 광주시립미술관과 런던 재외한국문화원의 협약전시 작가로 선정됐다 뚜렷한 이유 없이 배제된 정 작가는 자신이 당한 피해가 결코 ‘개인의 문제’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동안의 벌어진 상황을 SNS에 알리고 공론화에 나섰다.

 그는 전시 논의 과정에서 성매매 집결지와 여성인권을 다룬 영상 작품인 ‘집결지의 낮과 밤’을 제안했는데 갑자기 전시 주제가 변경되더니 급기야 전시 작가에서 배제되는 일을 겪었다.

 공적기관인 시립미술관에서 예술적 주제에 대한 차별이 벌어진 것이라고 판단한, 정 작가는 “저와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용기를 내 문제를 알렸다.

 이에 지역 예술인들도 정 작가와 연대하며 시립미술관의 ‘작품 검열’을 문제 삼고 있다.

 문제가 커지자 시립미술관 측은 “작품 선정과정에서 빚어진 오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 작가가 담당 큐레이터와 나눴던 문자 기록 등을 보면 해당 큐레이터는 당초 정 작가에 분명하게 “작품 선정”이라고 알려왔다.

 “시립미술관은 전시에 적합한 작가를 찾으려 했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오해라고 하지만 제가 큐레이터와 나눈 ‘카톡’ 내용은 이와 전혀 달라요. ‘선정 과정’이라는 걸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 자료 하나 공개하지 못하면서 ‘오해’라고 하니 믿을 수가 없는 거죠.”
정유승 작가가 전시 담당 큐레이터와 주고 받은 문자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시립미술관 측은 정 작가에게 “정유승 작가 외에 2명의 작가도 이번 전시에서 배제됐다”고 했지만, 이 역시 검토한 작가 목록이나 관련 문건 한 장이 없다.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고 달라지는 말들은 정 작가를 더 답답하게 하고 있다.
 
▲“지난 5월, 관장도 이미 보고받았다”

 정 작가의 선정을 두고 큐레이터는 “재외한국문화원 측이 비엔날레에서 정 작가의 작품을 인상 깊게 봐 작가로 선정했다. 축하한다”고까지 했는데, 시립미술관은 이제와 ‘전시 후보를 검토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명하는 것 자체가 대표적이다.

 또 해당 큐레이터는 당초 전시 배제에 대해 재외한국문화원 측의 ‘한국 내부 문제를 다루고 있어 전시하기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들어 ‘미술관이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고 했는데, 정 작가가 직접 문화원에 확인해 사실이 아닌 걸 확인하자 ‘개인 사견’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전승보 시립미술관장은 지난달 26일 동구 I-PLEX(아이플렉스)에서 열린 집담회에서 이러한 문제를 “잘 몰랐다”고 했는데, 정 작가는 이 역시 의심하고 있다.

 정 작가는 “지난 5월 큐레이터 측에 작품 배제 이유 등을 알기 위해 의견서를 보낸 시점부터 이미 전승보 관장이 이 문제를 보고 받고 큐레이터에 문제 해결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최근 새롭게 알게 됐다”고 밝혔다.
광주시립미술관 정유승 작가 작품 배제와 관련해 지난 8월26일 동구 I-PLEX(아이플레스)에서 열린 지역 문화·예술인 집담회. <사진=최성욱 감독>

 지난달 29일 정 작가는 전승보 관장과의 면담에서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구했지만, 전 관장은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에 따라 바뀌고 달라지는 시립미술관의 말에 정 작가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이미 신뢰를 정말 많이 잃었어요. 답답하고. 제발 (근거나 자료를)가지고 와서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명확한 근거 없이 ‘선정 과정’이라고만 하는 시립미술관의 태도는 검열의 문제를 ‘선정 과정’으로 덮으려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키우고 있다.

 정 작가는 이를 떠나 시립미술관의 말대로 ‘선정 과정’이라 하더라도 작품 검열의 책임을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제 작품이 ‘부담스러웠다’는 이유로 배제했다면 그 자체가 검열인 거죠. 미술관 격이 떨어진다, 불편하다고 느껴 배제하는 건 공립미술관에선 절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국민신문고 ‘진상조사’ 요구

 시립미술관 사과문에는 어떻게 문제가 불거졌고,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이 일절 언급이 안 돼 있다. 이 문제의 당사자인 정 작가나 연대 예술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시립미술관이 무슨 일로 사과문을 올렸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

 이로 인해 자칫 이번 문제가 담당 큐레이터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게 정 작가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이건 결코 큐레이터 개인의 결정이나 문제가 아니에요. 어쩌면 큐레이터도 이 사건의 피해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광주시립미술관.

 정 작가는 시립미술관의 사과문을 기다리지 않고 지난 주말 국민신문고에 이번 작품 배제와 관련해 진상조사 등을 요구하는 민원 글을 올리고 더 강경한 대처에 나서기로 했다.

 다름아닌 시립미술관이라는 공적 기관에서 예술적 주제를 가지고 임의적 판단에 따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문제가 더는 되풀이되선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문제를 알리고 나서 저보다 나이가 많거나 경험이 많은 작가분들로부터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공립미술관이라는 곳이 작가를 ‘악세사리’ 대하듯 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큐레이팅을 하는 문제들. 이렇게 된 이상 동생 작가들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에요. 작가들과 예술활동이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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