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질 신세, 10년 간 악으로 버텼다”
10년 전 ‘상시근무 신규 직종’으로 출발

광주160→45명…“갑질·해고압박 시달려”

▲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은 지난 10년 간 계약이 만료되는 4년마다 대량 해고 사태를 겪어왔다. 2013년 광주시교육청 앞 시위 장면.<광주드림 자료사진>
 학교마다 그 학교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직종이 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이하 영전강)’가 대표적이다. 한 학교에서 오래 근무해 붙은 남다른 별명일 텐데, 그 사연에는 웃지 못 할 설움의 역사가 있다.

 영전강들은 지난 10년 간 매번 해고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악으로 버텨왔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학교 비정규직’의 표본이 된 영전강. 이들이 각종 차별과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움을 계속해 온 이유다.

 특히 광주에서의 싸움은 전국을 향해 있다. 2년 전 고등법원은 광주시교육청의 영전강(4년 이상 근무) 해고를 부당하다고 판결, 비슷한 처지인 전국의 강사 직종 3500여 명의 무기계약 전환의 길이 열렸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판결을 부정하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

 그래서 여전히 영전강들의 신분은 살얼음판 위다. 싸움이 계속되는 사이에 달라지지 않은 정규직과의 차별로 영전강들 가슴엔 피멍이 들고 직간접적인 해고 압박으로 하루하루 지쳐간다.
 
▲자동 해고·부당 처우에 퇴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광주지부에 따르면, 10년 전 160명 선발로 정원이 채워진 영전강들의 수는 현재 45명. 100명이 넘는 영전강들 대부분 학교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아 자동으로 해고되거나, 해고 압박 등 부당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금 학교에 남아있는 영전강들은 악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우리 목숨을 쥔 학교 측 갑질도 여전하지만 포기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동안 당한 설움을 떠올리면 여기서 끝낼 수는 없습니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영전강 A씨는 처음 영전강을 시작했던 때를 떠올렸다.

 “정규 교사는 아니지만, 전문 강사로서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칠 수 있어서 정말 보람이 컸어요. 교육청에서도 60년 정년까지 계약을 약속했었기 때문에 더 없이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했죠. 이렇게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조차 못했어요.”

한 학교의 영어교실. 사진과 기사 내용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영전강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영어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에 따라 ‘영어회화 전문강사제도’를 도입하며 새로 만들어진 직종이다. 당시 초등 영어 수업시수 와 중등 수준별 영어 이동수업을 확대함에 따라 추가로 늘어나는 수업을 담당할 인력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들은 교사자격증이 있거나 ‘토익 900점 이상’이라는 공인된 성적으을 기준으로 서류전형, 필기시험, 수업시연, 인터뷰 시험 등 3차례 시험을 통과해 선발됐다. 방학 중에도 다수 비정규직들이 일을 하듯이 영전강도 계속 근무하고 방학 외에는 다른 교직원들과 같은 시간 출근해 같은 시간 퇴근했다.

 “연초엔 1년 동안 운영할 교육과정을 짜고 수업을 준비했어요. 보통 하루 6시간 수업을 하기 때문에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일을 해왔습니다. 한 학교에 2명 이상의 영전강이 근무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아프기라도 하면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도 많았죠.”
 
▲6년간 동결…임금 최저에도 못미쳐

 학교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면서도 영전강에 대한 처우는 나날이 악화됐다. 대체인력 지원이 안 돼 병가나 출산휴가는 언감생심, 수당은 고사하고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임금이 최대 6년 간 동결이었다. 작년까지 각종수당을 빼면 월급은 150만 원 남짓.

 무엇보다 힘든 건 불안정한 신분을 악용한 학교 관리자들의 갑질 행태였다.

 “계약에서 정한 업무 이외의 일들을 부과하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영어노래대회나 영어페스티벌과 같은 영어와 관련한 업무를 맡아도 성과에 반영되지도, 성과금을 받지도 못합니다. 수당이 없더라도 학교 일이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어떤 학교에선 교장이 자신의 아내 연구 논문 번역을 맡기기도 했어요.”

 부당한 요구나 처우에 노출돼 있어도 해고를 각오하지 않고선 이의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수많은 이들이 해고 또는 계약만료 등으로 학교를 떠나게 됐다.

 한편에선 2013년 교육청이 4년차 이상 영전강 해고대란을 기점으로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은 지난 10년 간 계약이 만료되는 4년마다 대량 해고 사태를 겪어왔다. 2013년 광주시교육청 앞 시위 장면.<광주드림 자료사진>

 지난 2017년엔 괄목할 만한 성과도 있었다. 광주지역 영전강 해고자들이 광주시와 장휘국광주시교육감 등을 상대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과는 달리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낸 것.

 재판부는 당시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이 기간제 근로자로서 수차례의 계약갱신과 재채용 절차를 반복하면서 2010년 3월부터 2015년 2월까지 4년을 초과해 계속 근로함에 따라 무기계약 근로자로 전환됐다고 볼 수 있다”며 “결국 이들 강사에 대한 광주시교육청의 2015년 2월 계약 만료 통보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에서는 광주시교육청의 계약 만료 통보를 적법하다고 판단했었다.
 
▲“대법원 ‘무기계약 전환 판결’이 희망”

 그러나 광주시교육청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교육당국은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에 대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42조 제5항이 기간제법 등이 정한 무기계약전환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며, 2년 이상 계속 근로를 한 경우에도 무기계약전환대상의 예외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교육당국이 그 어떤 논리를 들이대도 새로운 직종을 만들어 영전강들이 그 상시지속 업무를 해 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하는데, 왜 학교 비정규직들에 대한 차별은 그대로인가요“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받자는 것뿐이에요. 우리를 더 이상 일회용 쓰레기 취급하지 말아주십시오.”

 현재 영전강을 비롯해 전국의 전문강사 직종들은 대법원에서의 승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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