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오주(四方五州)와 천문(天門) 세계관

▲ <사진172> 중국 양사오문화(仰韶文化, 기원전 5000-3000년) 신석기 그릇. <사진173> 미국 아칸소(Arkansas) 신석기 그릇.
중국 양사오문화와 미국 아칸소 신석기 그릇

중국 미술사학계에서는 〈사진172〉 같은 양사오문화 그릇 무늬를 ‘기하학적 무늬’라 하고, 이 문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고학계와 미술학계에서 자주 논의했지만 아직까지도 이것은 ‘중국 예술계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시선원 외, 《千古之述-中國文化史 500疑案》, 中國古籍出版社, 2001, 736쪽).
〈사진173〉 같은 미국 아칸소(Arkansas) 신석기 그릇도 마찬가지다. 미국 고고학계에서는 이 그릇의 무늬를 ‘기하학적인 디자인’(geometric designs)으로 보고, 삼각형 구름이 나오는 천문을 ‘소용돌이’(scrolls, 이 그릇에서 스크롤은 네 개다)라 하고, 삼각형 구름을 날개 같은 삼각형(wing-like, triangular figures), ‘신화에 나오는 파충류의 원시적 묘사’(native delineations of mythic reptiles)라 한다. 아마 구렁이 몸의 그물망(reticulated lines) 살갗을 말하는 듯싶다.
사실 위 두 그릇은 아래 〈사진174〉 육서통 기(?) 자와 〈사진175〉 수막새 도상을 풀이하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기(?←氣의 본자)의 갑골문은 ‘三’이다. 이 글자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자가 자꾸 석삼(三) 자와 헷갈리면서 구별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금문에 와서는 가장 위 가로획과 가장 아래 가로획을 위아래로 구부려 지금의 기(?) 자 모양이 된 것이다(한자 기(?)의 갑골·금문·육서통에 대해서는 ‘조선백자 자라병과 암사동 신석기인의 천문 세계관’ http://omn.kr/1dw0h을 참조하기 바람).

육서통, 갑골과 금문을 풀 수 있는 열쇠

한국과 중국 한자학계에서는 〈사진174〉 육서통 기(?) 자를 아직 풀이하지 못하고 있다. 기(?)의 갑골과 금문과는 너무나 달라 어느 누구도 이 글자에 대해 말하는 이가 없다. 사실 육서통 한자는 풀이하기가 힘들다. 그 까닭은 그 글자가 기원과 본질, 즉 다시 말해 세계관을 담고 있어서이다. 더구나 이 기원과 본질은 한자가 막 생겨나기 시작했을 무렵인 신석기 말 세계관이다. 그래서 한중일 신석기 세계관을 모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자로 보이기 마련이다.
한중일 한자학계 학자들이 육서통 한자에 대해 말을 하지 않거나 풀이를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한자 관련 연구 논문이나 책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인문학의 아버지 시라카와 시즈카나 아츠지 데츠지의 한자 연구서를 보더라도 그들은 갑골과 금문을 들고 논의를 펼치지만 육서통을 말하거나 들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들은 중국 청동기 시대 세계관 ‘주역’으로 한자를 풀이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한자 가운데 기본 한자는 주역 이전의 신석기 세계관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풀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육서통을 제대로 읽어내야만 갑골과 금문의 글자 모양, 그 기원과 본질을 풀 수 있다. 육서통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시 자세히 논의할 것을 약속한다(육서통 한자 풀이에 대해서는 ‘6000년 전 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린 서울 하늘 뭉게구름(http://omn.kr/1eyhg)’을 참조하기 바람).


<사진174> 육서통 ‘기’ 자. <사진175> 소용돌이무늬수막새(水渦文圓瓦當), 중국 전국시대, 지름 15.2cm, 국립중앙박물관.

육서통 기(?)와 소용돌이무늬 수막새

<사진174〉 육서통 기(?) 자를 보면 동그라미 한가운데에 점을 찍었다. 이 점은 물(水)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물(水)의 기원은 비(雨)이고, 비(雨)이 기원은 구름(云)인데, 육서통 기(?)는 이 구름(云)의 기원을 점으로 표현하고, 구름의 기원이 천문(天門)이라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표현했다. 〈사진175〉 수막새 기와는 〈사진174〉 육서통 기(?) 자를 그대로 디자인했다고 볼 수 있다. 천문에서 구름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나오고 있는 것을 아주 역동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이 수막새에서 구름(云)은 〈사진171〉의 운(云) 갑골문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학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수막새 기와에서 볼 수 있는 이런 구름 디자인을 아직도 고사리·덩굴무늬·인동무늬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진171〉의 운(云) 갑골문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구름(云)이다. 그리고 그 구름이 천문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천문 속 회오리바람은 우리 태극기에 있는 태극이고, 한반도와 일본에서 나오고 있는 파형동기(巴形銅器)의 기원이 천문에서 구름이 나올 때 이는 역동적인 바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고고학계에서는 파형동기의 기원을 일본 야요이시대에서 찾고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그 기원은 중국과 한국에 있고, 이것이 야요이시대에 일본으로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파형동기가 무엇을 구상으로 하여 디자인한 것인지 짐작도 하지 못하면서 이 동기가 자신의 문화라 하고, 그것이 한반도로 간 것으로 보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이것을 우리 고고학계에서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형동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사방오주(四方五州)의 세계관과 천문(天門)

여기서 다시 〈사진172-173〉 중국과 미국 신석기 그릇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육서통 기(?)와 중국 전국시대 수막새 디자인을 설명하면서 천문(天門)과 이 천문에서 나오는 구름(云)을 말했다.
〈사진172〉 그릇을 보면 가운데 천문이 있고 그 둘레에 네 개가 더 있다. 이 천문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을 아주 힘차게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이 그릇 디자인은 동서남북과 그 한가운데 천문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즉 다시 말해 사방오주(四方五州)의 세계관이다. 동서남북 사방과 그 한가운데 들판(州)까지 해서, 물론 그 다섯 들판의 하늘에는 천문이 하나씩 있다. 그래서 천문이 다섯 개인 것이다. 그릇 뒷면에도 똑같이 사방오주의 세계관을 그렸을 것이다. 아가리 쪽에 있는 천문은 천문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옛 그릇에서는 이렇게 다른 면에 또다시 그린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중요한 세계관을 다시 그려 넣어 ‘강조’하는 것이다.
〈사진173〉 미국 신석기 그릇 또한 사방오주의 세계관이다. 그릇 몸통에 회오리바람 모양 천문(天門)을 네 군데 그리고, 이 천문에서 구름이 나오는 것을 두 줄 띠구름으로 했다. 이 띠구름에 삼각형 구름을 붙였는데, 삼각형 안에 빗금을 엇갈려 그었다. 이는 세계 신석기 그릇에서 익히 볼 수 있는 비(雨) 디자인이고, 이 비가 구름 속에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사진172〉 중국 양사오문화 그릇 디자인과 다른 점은 가운데 들판 천문을 따로 그리지 않고 그릇 아가리를 천문(天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 또한 중국과 한국 그릇 디자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176> 미국 애리조나 제사 바구니, 1910. 가운데 천문에서 삼각형 띠구름이 나오고 있고, 구름 사이로 네 발 짐승과 새가 있다. 천문과 구름에서 이 세상 만물이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천문화생(天門化生)과 우운화생(雨云化生)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177> 스페인 이베리아 그릇, 기원전 5세기. 가운데 천문에서 뭉게구름이 나오고, 이 구름에서 비가 내린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비의 근원이 구름이고, 이 구름의 기원이 천문이라는 것을 표현했다.

복희와 여와 설화와 천문(天門)

중국 한족의 창세신 이야기 가운데 〈하늘을 고친 여와〉 설화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천문(구멍)과 관련된 대목을 아래에 들어 본다.

부주산(不周山)은 원래 은하수가 있는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었다. 부주산이 넘어지자 하늘도 무너져 구멍이 났다. 이 구멍으로 은하수에 있던 물이 한꺼번에 빗줄기로 변해 쏟아져 세상을 삼켜버렸다. (……) 이때 중원에 회이(淮夷)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 마을의 지도자는 복희씨였고 여와는 그의 아내였다. (……) 여와는 하늘이 무너져 난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하늘 속 물이 모두 땅으로 쏟아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여와는 강, 호수, 바다에서 수많은 오색 돌을 건져 와 그 돌을 아흐레 밤낮으로 뜨거운 불에 걸쭉하게 녹였다. 여와는 이것으로 하늘에 난 구멍을 하나씩 메웠다. 그러자 큰비가 멎었다. 해가 다시 떠오르고 하늘에 오색 노을이 졌다. 이 영롱한 노을빛은 여와가 오색 돌을 녹여 하늘 구멍을 막았기 때문이다.
-《중국민족의 창세신 이야기》(서유원 엮음, 아세아문화사, 2002), 36-37쪽

아쉽게도 우리나라 신화나 옛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 한두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의 ‘여와와 홍수’ 이야기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중국의 ‘여와와 홍수’ 이야기는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에서 볼 수 있는 천문과 그릇에 일부러 뚫은 ‘구멍’을 해석하는 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준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기초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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