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하늘바위 릿지등반기<2>

▲ 멀리서 본 하늘바위.
 어떠한 계기로 스포츠 클라이밍에 발을 들였고, 개인적인 일로 잠시 쉬어야 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클라이밍을 한 시간이 2년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 6일 기자는 실내 암장을 벗어나 암장 회원들 몇몇과 함께 생애 첫 릿지등반에 나섰다. 릿지란 사전적 용어로는 능선 혹은 산등성이를 의미하지만, 실제 등반에서는 암릉등반을 의미한다. 두 손과 두 발을 이용해 등반해야 하는 다소 어려운 등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손에 땀이 난다. 그 강렬했던 경험을 독자들께 2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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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등자가 1피치 지점에 다다랐다. 자일과 장비를 정비하고 다시 광주실내암벽 이윤재 관장이 2피치 지점까지 등반을 시작한다. 능숙하게 오르는 이 관장. 곧 이어 “등반완료”라는 외침이 들렸다.

 기자 차례다. 고비다. 총 5피치 구간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5.11b이기도 하고 2피치까지 등반을 해보고 등반을 계속 진행할지 아니면 하강할지 결정하겠다는 게 이 관장의 판단이었기 때문. 어떻게 되겠지. 숨을 고르고 “등반준비 완료” “등반 시작”을 외쳤다. 다행히(?) 1피치보다 거리는 짧았다.

 1피치가 25m였는데 2피치 구간은 15m였다. 물론 오를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숨을 크게 쉬고 넓게 보려 노력하며 공포로 압도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정말 ‘사력’을 다해 기어 올랐다.

 기자가 해멜 땐 어김없이 이 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을 조금 더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다리가 낮다. 조금만 올려보면 좋은 홀드가 있다 등등. 정신이 없었지만 아마도 비명을 몇 번 질렀던 것 같다. 보다 못한 관장이 내게 반칙(?)을 허용했다. 볼트나 확보물이 닿으면 그걸 딛거나 잡고 올라오라고….

 별의 별 방법을 다 써가며 올랐다. 그러다 보니 2피치 지점이었다. 이 관장이 “잘했다”며 물을 건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기자에게 숨을 고르라고 했다. 자기확보를 한 후 둘러본 사위. 아까보다 더 높아져 있었고 새들이 밑에서 날아다녔다. 후등자도 2피치에 다다랐다.

 2피치까지 오르고 등반을 계속 이어나갈지 포기하고 내려갈지 결정하겠다던 이 관장은 릿지 등반 초보 둘을 데리고 등반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겐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느 구간은 조금 힘들 수도 있다. 그러면 내가 위에서 끌어올릴 것이다.

 그 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끌어올리기가 힘들다. 엉덩이를 벽에 붙여주고 기본적으로 발에 몸의 무게를 실어줘야 끌어올릴 수 있다.” 말로만 듣던 소위 ‘두레박’. 크럭스(루트나 피치 중 가장 어려운 부분)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후등자를 선등자가 끌어올리는 기술을 쓰겠다는 의미였다. 상황을 컨트롤 할 줄 아는 리더가 든든했다.

 리지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리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날씨나 시간·팀원의 체력에 따라 어떤 결정을 할지 많은 변수들 앞에서 신중하고 적절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피치 등반 시작. 이제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처지. 어찌 됐든 계속 올라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어느 구간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뭐하는거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같은 근본적(?) 질문들이 가끔 스쳐 지나갔다. 자세도 불안정하고 팔에 펌핑아웃으로 힘도 빠져 잡고 있던 홀드를 놓칠 것 같았다.

 추락할 것 같았다. “저 여기서 좀 쉴께요” “텐션(로프를 강하게 당겨서 쉴 수 있게 해달라)”을 서 너번 외쳤던 것 같았다. 팔의 펌핑을 풀고 다시 가기를 그렇게 여러 번. 그리고 어떤 구간은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위에서 이 관장이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분명히 위에서 당기는 힘을 느끼면서도 살려는 본능(?)으로 홀드를 잡겠다고 손에 힘을 주고 있던 기자에게 “손에 힘을 빼. 다리에 체중을 실어. 그래야 여기서 당길 수가 있어”라고 관장이 소리쳤다.

 그런 식으로 위기를 만나고 또 어떤 식으로든 돌파(?)하면서 5피치 하늘바위 정상에 다다랐다. 훨씬 전, 먼저 도착한 팀들이 정상에 나타난 기자를 보고 환호했다. “우와. 대단해요. 포기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진 기자는 그 환호와 격려를 온전히 누리질 못하고 정신 없어했다.

 기자 때문에 등반 시간이 길어졌다. 제대로 정상을 누리지도 못하고 하강을 해야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하강’이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남아있었다.

 “하강은 아까와 다른 루트로 3피치로 끊어서 할 거에요. 사실 등반 보다 하강이 훨씬 위험해요. 사고도 많이 나구요. 나 역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이 관장이 말했다. 얼마 전 설악산 릿지 등반을 하던 이들이 하강하다 추락해 1명은 사망하고 1명은 중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긴장은 너울 너울 끊이지 않고 오는구나.
하늘바위 등반 중인 기자.|||||

 자기확보를 한 상태에서 하강기에 로프를 설치했다. “오른 손에 잡고 있는 로프를 반대로 당기면서 하강할 거에요. 절대 오른 손 로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놓으면 안돼요. 그럼 추락이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놓으면 안된다는 말을 수십번 쯤 들었다. “하강을 다 한 후엔 마찰로 로프가 뜨거울 것이니 직접 만지지 않도록 하라”고도 했다. 하강 순서를 정하고 하강이 시작됐다. 하강은 군대에서 레펠 하듯 해야 했다.

 먼저 하강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자기확보줄을 풀었다. 몸을 지탱해줄 확보줄을 풀었으니 이제 진짜 오른 손을 놓으면 추락. 초긴장 상태가 됐다.

 기자도 하강을 막 시작, 1피치까지는 별 무리 없이 내려갔지만 2피치 하강을 시작하던 중 하강기에 장갑이 말려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가볍게 로프를 쥐어야 하는데 긴장한 나머지 너무 꽉 쥐고 있어서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 장갑이 말려들간 상황에선 내려갈 수도 없었고, 한 손이 자유롭지 않으니 장갑을 빼낼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난감한 상황. 관장이 다시 나를 끌어올려 하강기에서 장갑을 빼냈다. 그나마 하강 시작에 그런 일이 있어 다행인 것이었다.

 이 관장은 “한참 내려가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위에서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밑에서 다시 등반해 와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이 관장은 나와 동반 하강을 하기로 결정했다. 등반 때와 달리 하강 때는 조금만 실수해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옆에서 코치를 받아가며 하강하는 와중에도 또 한 번 하강기에 장갑이 말려들어갔다. 하강 연습을 좀 더 많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를 포함, 모든 일행들이 하강을 완료했다. 이제 진짜 긴장이 풀어졌다. 오전에 시작한 등반이 거의 해질무렵이 돼서야 끝났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정제 포도당’ 몇 알로 등반을 완료한 셈이었다. 다들 배가 고픈 상황. 내려와 안전한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삼겹살을 굽고, 라면을 끓여 함께 먹는 시간. 인생에 꼽을 만찬일 수밖에 없었다.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피어올랐다. 도움 주고 도움 받으며 힘든 일을 함께 해냈다는 묘한 감정. 세상도 달라 보였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내 안에 싹을 틔운 것 같았다. “고생을 사서 하면서 힘들게 등반을 왜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며칠 후 몇 가지 등반장비를 ‘질렀다’. 고난이 계속될 운명인가보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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