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고 차분한 화법

 

▲ 영화 ‘다크 워터스’.

 199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농장주가 로펌의 기업 법무담당 변호사인 롭 빌럿(마크 러팔로)을 찾아온다. 농장주 윌버 테넌트(빌 캠프)는 자신의 농장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화학약품을 마시고 젖소가 떼죽음을 당했다며 하소연한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려던 빌럿은 자신이 태어나서 뛰어 놀던 곳이기도 한 이곳을 방문해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농장엔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암에 걸리거나 기형아를 낳은 산모도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내막을 깊이 알게 될수록 빌럿은 사건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이 사건의 복판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화학 기업 듀폰이 있다. 빌럿은 이 기업을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다.

 그렇다. ‘다크 워터스’는 사회고발 영화다. 주인공이 거대 기업을 상대로 힘겹게 싸우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크 워터스’는 기존의 사회고발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그간 우리가 접해왔던 사회고발 영화는,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사회의 비리를 목격하게 되고, 이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장벽에 부딪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해 내며 끝내 승리한다는 식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크 워터스’는 주류 사회고발 영화의 패턴을 답습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화법은 차분하고 진지하다. 주로 겨울을 배경으로 삭막한 화면이 주를 이루며, 음악 역시 음산하다. 그리고 사회고발 영화라고 하면 역동적인 주인공이 등장할 법도 하지만 영화 속의 주인공인 빌럿은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토드 헤인즈 감독은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이 사건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느릿하지만 치밀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확실히 ‘다크 워터스’는 토드 헤인즈의 이전 영화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영화다. ‘벨벳 골드마인’(1998)과 ‘파 프롬 헤븐’(2002) 그리고 ‘캐롤’(2015)에서 보여 주었던 화려한 색감이나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감각적인 연출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전달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다크 워터스’는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로 주인공의 느릿하지만 묵직한 투쟁의 시간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주인공의 활약을 영웅적으로 묘사할 생각이 없다.

 빌럿은 추적을 통해 듀폰사가 코팅 프라이팬 등에 사용하는 물질이 유독 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PFOA(과불화옥탄산·Perfluorooctanoic Acid)는 군과 우주개발에 쓰이는 방수 코팅용 화학 물질이었다. 그런데 듀폰은 음식을 조리해도 눌러 붙지 않는 코팅 프라이팬을 개발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PFOA는 인체에 치명적이었으며, 듀폰 역시 실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숨겼다.

 그렇게 빌럿은 7년이나 걸린 역학조사를 통해 PFOA의 해악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승기를 잡는다. 하지만 빌럿이 거대 기업인 듀폰의 악행을 고발해 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듀폰은 자신들의 막대한 자본을 이용해 사실을 은폐하고 진실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을 탄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빌럿은 투쟁의 시간 동안 가족들을 힘들게 했고, 다니던 회사에서는 감봉을 감수해야 했다. 여기에다 자신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그러니까 ‘다크 워터스’는 빌럿이 투쟁을 해 나가는 과정이 삶의 위기를 동반하는 것이었음을 그저 무덤덤하게 보여준다.

 이렇듯 ‘다크 워터스’는, 빌럿이 거대 기업을 상대로 힘겹게 분투하는 지난한 과정을 극적인 장치 없이 따라간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관객들은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묵묵히 부당한 악에 대항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작은 감동을 선물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토드 헤인즈의 진정성 있는 연출은 관객들의 마음을 동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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