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번 버스로 떠난 소풍 '송산유원지'

유원지(遊園地): [명사] 유람이나 오락을 위하여 여러 가지 설비를 한 곳. 사전에서 찾아 본 유원지의 의미다. `~랜드’ `테마파크’`∼어드벤처’ `∼월드’에 익숙해져서인지 영어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유원지가 영 촌스럽게 느껴진다. 한 음절씩 읽어보자 초등학교 시절 비 올까 마음 졸이며 밤을 지샜던 기억이 되살려진다. 단 하루 공부를 안한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던 그 때. 앨범을 넘기듯 그 시절이 머리속에 후두둑 지나간다. 새파란 하늘을 보다 가방을 챙긴다.
자로 잰 듯한 버스 시간표
`10분 후 도착합니다’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적힌 60번 버스 도착시간을 보다 시계를 들여다본다. 분명 숫자는 줄어드는데 도통 올 기미가없다. 버스 운전을 컨베이어 벨트에서 물건을 만드는 것마냥 시간을 딱 잘라 할 수 없겠지. 승객의 편의를 위한 `알람’이지만, 혹시 운전기사에게는 제 시간에 맞춰야 하는 `적색 경보’로 작용하는 건 아닐까? 5분 정도 지나자 버스가 온다. 분, 초 개념이 생기면서 우리는 시간에서 좀더 부자유해진 것은 아닐까?
대인광장을 지나 버스는 양동시장으로 향한다. 인도를 따라 쭉 자리를 편 노점상들. 좁은 통로에 파라솔들이 `앉아만 있어도 등짝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게 하는’ 햇볕을 가리고 있다. “아따 징그랍게 끕끕하네∼에어컨 좀 틀어주쇼.” 버스에 오르자마자 한 승객은 연신 땀을 훔치다 에어컨이 나오자 “으메∼이제야 살 맛 나요”하며 웃는다.
상무지구를 지나 영광통에 이르자 버스에 승객이 없다. 운전기사의 잔기침 소리도 크게 들릴 정도로 이내 정적만이 감돈다. 차창 너머 광주와 무안 신공항을 잇는 고속도로 공사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승객이 없는 버스정류장을 눈치껏 통과하면서 속력을 낸다.
황룡강 자락에 떠있는 삼각주
황룡강이 보인다. 유유히 백로 한 마리 날아다닌다. 건너편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비늘을 세우고 올라갔다는 어등산이 버티고 섰다. 어등산 서쪽에 있는 박메마을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제주양씨 일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상감문이 있고, 남쪽 골짜기에 자리한 절골마을에는 연화약수라는 돌샘이 있는데 위장병과 성인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 외지인들이 자주 찾는다. 산세가 깊어 한말 의병활동의 전적지였던 어등산은 패러글라이딩 동호회가 즐겨 찾는 곳이 됐다.
황룡강 자락에 이뤄진 삼각주. `이름도 없던’ 섬에 잔디를 깔고, 플라타너스를 심고, 나룻배를 놓았다. 99년에 여기저기 손을 댄 그 곳이 2001년 `송산유원지’로 사람들을 맞았다.
한적한 오후를 즐길 수 있는 송산유원지에 부쩍 가족들이 눈에 띈다. 황룡강을 가르는 다리를 건너 유원지에 도착하면 플라타너스가 심어진 자갈밭에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잔잔한 물살을 앞에 두고 다들 자리를 펼치고 앉아 대화를 나눈다. 크게 웃다가 소곤대다 잠시 눈을 붙이며 휴식을 취하는 가족들. 취사행위가 허용된 자갈밭에서 집에서 가지고 온 먹거리들을 풀어놓는다. 아이들은 그 옆 잔디광장에서 뛰어다니느라 신이 났다. 잔디구장에 푸른 하늘이 바로 이어진다. 탁 트인 정경에 마음이 풀린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야생화들이 곳곳에 있다. 자동차 경적 소리, 어디서나 울리는 호객 행위 등 시끄러운 도시 소음에 벗어난 자리에 바람과 물결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채워진다.
줄배도 타고 `물방석’에서 수영하고
걸음을 옮기면 나루터가 있다. 오후 6시 이후에는 탈 수 없지만 열아홉명까지 탈 수 있는 줄배에 타면 모두들 선원이 된다. 탑승한 이들 전부가 줄을 당기며 나룻배를 이동시킨다. 한 아이가 선장이 되어 선두에 서서 줄을 끌어당긴다. 힘에 부치는지 잔뜩 표정을 구겨보지만 줄을 놓지 않는다. 나룻배 너머에는 커플들이 발을 동동 굴리며 오리보트를 끌고 간다. 송산유원지에서 유일하게 돈을 받는 `오리보트’. 1시간당 2인용 7000원, 4인용 9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아저씨 사진을 제때 못 찍어서 그러는데 잠깐 더 타게 해주세요”라는 손님의 애교어린 요청에 관리인은 눈을 꿈벅거리며 OK 사인을 한다.
물방석(야외풀장), 잔디구장, 나룻배 등 `놀거리’를 경제적 부담없이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상수도 보호구역인 송산유원지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소독한 물을 이용해 가족들이 놀 수 있도록 장마가 지난 다음 한 달여간 `물방석’(야외 풀장)을 무료로 개장한다.
10분 정도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가며 투덜거려야 하는 유료 놀이공원의 위락시설들은 분명 좀더 세련되고 편리하다. 하지만 한가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유원지’의 하루는 평범하나 각박한 삶에서 `정지(pause)’가 된다. 정현주 기자 ibox@gjdream.com
60번 버스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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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차 05:30 막차 22:37, 배차간격 9∼11분.
송산유원지로 가는 버스는 60번 외에도 21, 50, 115, 777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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