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 타고 원효사 가기

▲ 낯선 이들도 자연스레 길동무가 된다. 원효사에서 약수터 가는 길.
아이는 자리에서 좀체로 가만 있지 못한다. 고개를 빼꼼이 들어 차창 밖 건물이며 간판을 따라 가더니 뒤에 앉은 형에게 “다 왔어? 다 왔어?”하며 치근댄다.
안절부절 못하는 동생과 달리 형은 잠을 쫓기가 버겁나 보다.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다.
대인광장에 이르자 18번은 절반의 승객을 비우고 지산사거리로 향한다. 그 동생이 옆에서 툭툭 건드린다. “외할머니댁에 가야 하는데, 장원초등학교 지나갔어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형은 단잠에 빠져있다. 여섯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는 말에 금세 얼굴이 풀리다 “몇 번만 더 세면 돼요?” 재차 확인한다.
6학년인 형과 달리 올해 2학년이 된 지민이는 형제들끼리 버스를 처음 타 본단다. 지민이는 까치발까지 하며 정류소 표지판을 내다보며 손까지 꼽는다. 어린 아이에겐 어른들 없이 버스를 탄다는 건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겠다. 마음 졸이며 정류장 이름만 확인하다 하차 벨을 눌렀을 때의 그 안도감과 성취감이란….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일상의 짐 잠시 내려놓고
18번을 타는 승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산에 가거나 혹은 산 아닌 다른 곳에 내리거나. 전남여고를 지나 산수오거리를 거치면 더욱 뚜렷해진다. 등산하러 가거나 그 곳에 살거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버스가 시원스레 달린다. 무등산 전망대, 사수원지를 지나자 더욱 속력을 낸다. 원효사 계곡에 이르자 그 좁은 2차선이 주차장이 돼 버린다. 급회전을 해야 하는 도로에 일렬로 주차된 차량들을 보자니 순간 화가 난다. 10분 정도만 올라가면 주차장이 있는데 그 몇 걸음을 못 참는다. 자연을 찾은 이들의 모습이 결코 자연스럽지 못하지만 다수의 동참은 `관례’가 돼 버린다. 종점에 이른다. 버스는 정차한 후 출발하기 전까지 잠시 숨을 고른다. 종점은 출발선이 된다.
“초행길이라 잘 모르는데 어디까지 가요? 약수터로 가야 한디…” “저도 그 짝으로 갑니다.”
한적한 등산길에 길동무가 되어 약수터로 향한다. 나무가 우거진 이 길에 말장난을 건다. 수풀, 숲, 산…. 서로 닮은 듯 다른 단어들이 입안에 맴돈다. 아스팔트길에 드리워진 나무 그늘에 잠시 흐뭇해지다 `공원’이 돼 버린 산을 바라본다. 명소로 자리할 정도의 정경이 있는 것도 아닌, 기괴한 암석이 있는 것도 아닌 이 길을 걸으면서 마음이 풀어진다. 평범해서 익숙해져 버린 그 길에 무겁게 짓누르던 짐들을 잠시 내려놓는다.
내 집같은 휴식처, 원효사
문을 활짝 열어둔 절은 사람을 느슨하게 만든다. 수학여행 답사 코스로 자리한 여느 절과 다르다.
무등산 속에 들어 있는 원효사는 신라 말기 원효대사가 작은 암자로 세운 것을 고려 충숙왕때 사찰로 중건했다. 한국전쟁으로 원효사가 전소되기 전까지 지역 신도들의 불심으로 건물의 보수를 거듭하며 절을 유지했다.
신법타 주지스님이 80년대 초반 대웅전, 지장전, 요사채 등을 복원하였고 1989년 현지스님이 원효대사의 영정을 모시는 개산조당, 삼성각, 성보각, 누각 등을 신축했다. 요사채인 신검당은 2층 건물로 지었으며 종각, 수각, 봉향각, 5층석탑, 석등을 지었다.
화순 동복 출신 화가 오지호가 그린 탱화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웅전에 있는 탱화는 가로 198㎝, 세로 152㎝ 크기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뒤쪽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을 담고 있다.
대웅전 바로 아래 자리한 `문수동자 약수’를 찾는 이들이 많다. 약수터 안에 소원을 담은 동전들이 쌓여있다. 지난해 모아진 돈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왔다고 한다. 소원을 담은 동전이 다른 이의 소원을 들어준 것.
지장전 뒤쪽 축대 위에 석조지장보살입상이 있다. 높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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