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버스 요금이 680원(현금 700원)에서 800원(현금 900원)으로 올랐습니다. 현금으로 낼 경우 무려 200원 정도가 오른 셈이지요. `700원 여행’으로 시작했던 이 버스여행기도 버스요금 인상에 따라 부득이하게 `800원 여행’으로 제목을 바꿉니다. 버스 요금이 오르면 오른만큼 `버스타기’도 더 편해지고 좋아지는 세상에 대한 바람을 담아서요.

“103번은 좀체 잘 안온디, 고서까지 가믄 303번이 더 자주 온게 같이 가면 쓸 것인디.”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장을 보고 온 아주머니들이 인도에 털썩 주저앉아 있다 힐끔 쳐다본다. 여름 한낮의 햇볕은 화살같다. 정수리에 내려꽂히는 햇볕에 1초, 1초가 한시간처럼 더디게 느껴진다.
정류장 차양도 뙤약볕을 가리기엔 너무 길이가 짧다. “버스비 오른게 돈이 줄줄 새는 거 같네.” “내가 아는 사람은 버스 승차권 60장이나 샀다네. 1000원 내놓고 타믄 예전엔 20원만 손해였는디 지금은 100원이나 손해라고 몽땅 사놨다네.”
보따리에서 짐을 풀듯 옆집 아들 취직 걱정에서 버스비 인상, 오늘 장 본 과일들까지 말을 주고받다 참외를 꺼내든다. “이거 잡숴봐, 모냥이 맘에 안드믄 내 꺼랑 바꿈세” 장바구니에서 주섬주섬 참외를 꺼내든다. 좀체 안 오는 버스 덕분에 참외 인심을 맛본다.
“버스 운전하면서도 어디 갈 생각을 못했네”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지나 고서사거리를 지나친다. 길 옆으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어딘지 생뚱맞다. 한쪽은 분명 높게 솟아있는데 다른 쪽은 중간이 댕강 잘려져 있다. 가만보니 전선이 통과한 쪽은 일제히 나무가 잘려져 있다. 마주보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다 멈칫해진다. 가로수는 살아있는 `나무’가 아니라 인위적인 `경관’이었던 셈이다. 버스 승차권만 내면 종점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을 너무 믿었나보다. “어디까지 가신가?”라고 기사가 묻는다. 뒤를 돌아봐도 승객은 나 혼자 뿐.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종점까지요.”
기사는 “에고 640원 더 내야한디 600원만 내소”라며 허허 웃는다. 종점에 이르자 버스 기사는 버스 안을 돌아보며 의자 틈새 구석을 찬찬히 훑어본다. 그의 손에 꼬깃꼬깃해진 아이스크림 봉지가 있다. “차내에 버리지 마십쇼, 이러면 `네∼알겠습니다’ 하고 곧잘 대답들 해. 그러면서도 보면 이런 혀를 끌끌 찬다.
종점에 내려 몽한각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버스 기사가 한숨을 내쉰다. “103번 버스를 운전하면서도 여기 담양을 다녀봤어야제. 한번 가봐야지, 맘만 먹었지 실상 중간에 내려서 가본 적이 없네. 버스 타면서 여행갈 생각이라도 했겄어? 이게 밥벌이다본게 그럴 틈이 없제” 내내 그 말이 뒤에 따라붙는다. 어떤 이에게 버스는 밥벌이지만, 어떤 이에게 버스는 이동수단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마냥 먹먹해진다.
이서의 `낙지가’는 담양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가사문학
종점에서 오른쪽으로 10여 분 정도 걸음을 옮기면 몽한각을 찾을 수 있다. 몽한각(夢漢閣). 담양군 대덕면 매산리에 있는 전남유형문화재 제54호 재실이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태종의 5세손이며 양녕대군의 증손인 이서를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이서는 양녕대군의 증손으로 중형 이과(李顆)의 왕위 추대 사건에 연루되어 무고로 담양 명양현(鳴陽縣, 지금의 대덕)에 유배되었다. 14년 동안 귀양살이를 한 후 서울로 가지 않고 담양에서 일생을 마쳤다. 훗날 양녕대군의 후손인 담양부사 이동야와 창평현령 이훈휘 등이 관직 생활을 하다 이서의 재실이 없는 것을 알고 몽한각을 지었다고 한다.
이서가 지은 낙지가(樂志歌)는 담양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가사문학이다. 중장통이란 중국 처사의 삶을 흠모하여 세속의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자연 속에서 살겠다는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이 가사는 《몽한영고》(夢漢零稿)에 수록돼 전해지고 있다.
송순이 〈면앙정갠를 짓기 전 이서의 〈낙지갠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다. 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한국 고시가의 대표적 장르로, 조선 사대부 시가문학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가사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인 송순의 〈면앙정갠와 정철의 〈성산별곡〉〈관동별곡〉등에서 드러나듯 속세를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안빈낙도’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몽한각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다 발걸음을 옮긴다. 조선시대 이서는 권력을 벗어던지고 귀향지에서 여생을 마쳤다.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며 자족적인 삶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이서가 `양반’이란 계급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버스 기사의 한숨이 잊혀지질 않는다. 정현주 기자 ibox@gjdream.com
103번 버스 대인광장→대덕방면 노선=대인광장→수창초교 후문→문병원→현대백화쥘광주역→순복음교회→시청→서방사거리→서방시장→동신고→말바우시장→무등도서관→광주병원→동광주진입로→농산물공판장→도동고개→도선사→장등동→용호→공원묘지 입구→보촌삼거리→보촌2구→보촌1구→해평리→고서사거리→고서중→교산→산덕→장덕리→오강리→보평리→창평 중앙교회→창평초교→훈련장→신갈→대덕
▲시간대(대인광장 기준)=첫차 오전 6:30/ 7:35 / 8:40 / 9:45 / 10:50 / 11:55 / 오후 1:00 / 2:05 / 3:10 / 4:15 / 5:20 / 6:25 / 7:30 / 8:35 / 막차 9:40
▲버스 운행 여건 상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