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들이 한창 잘 나가던 80년대 초반만 해도 서방시장에는 20여 곳 가까운 한복집이 몰려 있었다.
충장로 상권과 함께 광주의 한복시장을 석권했고, 한창 결혼 시즌인 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재래시장이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매출은 끝없는 하향곡선을 그렸다.
현재 서방시장은 거의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나마 한복집들은 예전의 명성에 힘입어 선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한복집도 7곳으로 서방시장에서 단일 업종으로는 가장 많은 점포 수를 유지하고 있다.
서방시장 골목에서만 25년을 견딘 선화주단은 한복집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 오랫동안 가게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인 고승남(60)씨의 솜씨 덕이었다. 고씨가 처음 한복집을 열었던 시절만 해도 대부분의 주단들이 옷감만을 팔았다. 그러나 고씨는 한복학원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옷감 파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한복을 만들어 팔았다.
더구나 당시에는 결혼이나 회갑, 칠순 등 집안의 경사가 있으면 일가족이 모두 한복을 맞췄다. 때문에 한 명의 고객이 찾아오면 최소 서너 벌은 기본이었다. 특히 추석 명절에는 발 딛을 틈이 없었다. 명절 한 복을 사러 오는 사람과 연휴를 이용해 결혼식 예복을 맞추려는 고객들이 더해져 최고의 시즌으로 꼽혔다.
“진짜 80년대에는 가만 앙거서 돈 벌었제. 손님이 어치게나 많이 와 불던지 하루에 서너 건은 기본이었제. 옷감값에다가 한복 만드는 품까지 더해진께 손님 한 사람한티 받는 돈이 모도 이백만원이 넘제.추석 때는 너무 바뻐서 돈 셀 틈도 없었어.”
90년대 중반까지도 명성은 여전히 유지됐다. 그러나 IMF 이후 상황이 반전됐다. 안 좋아진 경기 속에서 실용적 측면이 강조됐고, 더 이상은 집안 잔치에 한복이 등장하지 않았다. 판매 자체가 급감하면서 가격도 대폭 떨어졌다.
“옷감만 팔아도 50만원이었는디 지금은 다 만들어서 한 벌 30만원이문 많제. 가격은 떨어져 불고 얼매 팔리도 안항께 죽을 맛이제. 한 달에 너덧 명이나 올까말까 혀.”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모두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다. 고씨의 솜씨를 이전부터 알고 찾아오는 단골인 것이다. 단골 장사만으로는 운영 자체가 힘들어 몇 년 전부터는 이불 집을 병행하고, 한복 대여업도 겸했지만 그 역시 손님이 많지는 않다. 때문에 그가 가장 아끼는 재봉틀도 쉬는 날이 부지기수다.
“저 놈이 세 번째 산 재봉틀인디 처음하고 두 번째 것은 손님이 많고 날마다 부려먹은께 금방 고장이 나 부렀어. 근디 저 놈은 15년을 썼는디도 짱짱하네. 인자 저 놈 고장나 불면 나도 요 장사 치워 부러야제. 벌어갖고 포도시 밥 묵고 용돈 쓰문 없어.”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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